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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숨어있는 디자인의 가치, 플리마켓

조상우 | 2017-08-09

 


 

플리마켓(flea market) 혹은 앤틱마켓(Antique market)으로 불리는 벼룩시장은 유럽여행을 다니다 보면 종종 만나게 되는 익숙한 풍경 중 하나이다. 현지인들과 여행객이 어울려 북적이는 분위기도 흥겹고 저렴하고 유니크한 제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늘 즐거운 곳이기도 하다. 또한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지역의 꾸미지 않은 문화와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라마다 그 풍경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곳 스웨덴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곳 스웨덴에서는 플리마켓을 ‘로피스(LOPPIS)’라고 칭한다. 대부분은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들고 나와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하는데, 지역단위로 마켓이 열리기도 하고 시에서 큰 규모의 축제처럼 주최하기도 한다. 과거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가 목적이었다면, 지금의 플리마켓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장이 되어가고 있다. 마켓 내에서 카페나 공연 같은 행사가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그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은 정보를 미리 찾아 방문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온라인 중고나라’나 ‘아름다운 가게’, 혹은 ‘아나바다 운동(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등을 통해 중고시장이나 벼룩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 북유럽에서의 중고품(second-hand products)은 이미 시장 경제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와 더불어  “플리마켓을 통해 재활용과 환경문제에 기여한다.”,  “평상시 사용하는 물건도 플리마켓을 위해 깨끗하게 관리하며 쓴다.”, “타인이 쓰던 물건도 깨끗하게 관리했을 것”이라는 신뢰가 함께 한다. 이러한 마인드를 기본 바탕으로 마켓이 진행되니 판매자나 구매자 모두 만족할 만한 경험이 된다. 이 중고 마켓에 대한 스웨덴의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가 바로 아래 사진에 보이는 브랜드 뮈루나(MYRORNA)와 엠마우스(EMMAUS)이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세컨핸즈 브랜드 뮈루나의 광고

스웨덴을 대표하는 세컨핸즈 브랜드 뮈루나의 광고

 

 

모두 세컨핸즈 전문 매장으로 쇼핑몰과 다운타운 중심 거리에 단독 매장을 두고 있을 정도로 인정받는 하나의 정식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매장 규모도 상당하고 물건의 종류도 가구부터 의류, 식기,  잡화까지 광범위하다.

 



세컨핸즈 전문 브랜드인  뮈루나와 엠마우스는 쇼핑몰과 시내 중심가에 단독 매장이 있을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세컨핸즈 전문 브랜드인 뮈루나와 엠마우스는 쇼핑몰과 시내 중심가에 단독 매장이 있을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이곳은 보물이 가득한 창고에 들어가 유니크하고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을 것 같다는 기대감마저 들게 한다. 

“이 가방 세컨핸즈에서 찾아낸 거야. 독특하지?”, “이 모자 60년대 레트로풍인데?” 주변 지인들에게서 쉽게 듣는 말이자, 세컨핸즈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뒷받침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순히 저렴하고 질 좋은 물건을 구매하는 것과 더불어 클래식하고 빈티지한 디자인 제품들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인 것이다.  필자에게도 앤틱마켓에서 구입한 1960년대 레트로 디자인의 오디오가 있다. 음질도 훌륭하고 보존 퀄리티도 좋은 편이다. 당연히 최신 블루투스나 디지털 기능은 없지만,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희소가치와 유니크함은 최신 제품을 한 번의 클릭으로 손쉽게 구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동네 지역주민들의 커뮤니티를 통해 활성화되어있는 플리마켓 풍경

동네 지역주민들의 커뮤니티를 통해 활성화되어있는 플리마켓 풍경

 

 

앞서 언급한 대로 이곳에서 보이는 플리마켓의 종류는 다양하다. 특히 지역 단위의 커뮤니티 행사로 이뤄지는 소규모 플리 마켓은 상업적이라기보다는 가족적이며 친근하다. 판매자로 참여하는 가족들에겐 즐거운 이벤트와도 같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된다. 더 이상 쓰지 않는 장난감, 옷, 가방 등을 깨끗하게 닦고 정리해 들고 나와, 스스로 가격을 정하고 손님들에게 판매한다. 대부분 부모들이 관여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가 이 판매행위를 책임진다. 아이들끼리도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집에서 만들어온 쿠키와 주스를 파는 아이들, 수줍게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는 아이들도 가끔 보인다. 이러한 경험들이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훌륭한 배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직접 진열하고 가격을 정해 판매하는 키즈 플리마켓

아이들이 직접 진열하고 가격을 정해 판매하는 키즈 플리마켓

 

 

플리마켓, 앤틱마켓, 벼룩시장, 로피스 등 다양한 이름 아래 형성되는 이 중고시장(Second-hand market) 은 이제 유럽 관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관광상품이 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이러한 마켓을 통해 북유럽의 고가구(古家具)와 인테리어 소품 등을 전문적으로 아시아로 수입해가는 비즈니스도 활발하다고 한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이제는 ‘커뮤니티 활동(Community activity)’으로 자리 잡고 있는 플리마켓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이제는 ‘커뮤니티 활동(Community activity)’으로 자리 잡고 있는 플리마켓



건강한 소비, 일상 속으로 들어오다

스웨덴을 비롯한 이곳 북유럽에서는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이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브랜드를 알 수 없는 패션을 완벽하게 그들만의 느낌으로 소화해 낸다. 아마 플리마켓에서 구매한 옷들도 많을 거라 추측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의 미니멀하고 감각적인 패션 트렌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지 오래다. 물론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처럼 패션에 민감한 문화의 나라와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들에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시대를 반영하는 트렌드나 컬러 등에는 민감하지만 유독 브랜드(Brand)에는 둔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필자의 이곳 지인들 중에도 (패션에 민감한) 디자인 관련 종사자가 많지만 이러한 흐름에 함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브랜드에 무지(無知) 한 것은 아니다. 바로 똑똑한 소비를 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소비를 피하고 현명한 소비가 생활화되니 소비의 질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나면 진정으로 원하는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것’. 바로 건강한 소비다.

 

이러한 건강한 소비문화는 패션뿐 아니라 자동차, 인테리어 등의 일상의 소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디자인의 잠재력은 여기서 커다란 힘을 발휘하게 된다. 브랜드, 가격, 인지도 등을 떠나 오로지 디자인 요소로만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러한 기회의 무대를 통해, 앞서 언급한 세컨핸즈 브랜드가 화려한 다른 브랜드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장에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늘 새것, 첨단의 최신 제품들, 트렌드 등을 쫓기만 하는 사회적 흐름들이 부차적으로 생산해내는 부정적 요소들이 플리마켓이라는 조금은 올드하고 투박한 흐름에 조용히 부서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친환경 소비습관이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재활용의 생활패턴이 선진문화의 지표가 된다면 진정 건강한 소비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글, 사진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 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sangwoo.cho.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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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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