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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동물을 관람한다는 것

서울대학교 미술관 | 2017-07-25

 


 

지금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는 ‘미술관 동물원’이라는 전시가 개최되고 있다. 어린이들 보기 좋은 귀엽고 순수한 전시 겠거니 했는데 웬걸, 내내 씁쓸하고 가끔은 슬프기도 했다. 

 

 

 

존 버거(John Peter Berger)는 <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라는 글에서 동물을 본다는 행위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펼친 적이 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동물을 구경한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발달, 산업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역사적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과 맞물려 발생한 것이다. 하나둘씩 일상에서 자취를 감춘 동물들은 일반 가정의 애완동물로 흡수되거나 동물원에 갇히게 됐다. 

 

동물원은 호기심의 방으로 포장된 채 진귀한 것들을 수집하여 보여주는 교육과 엔터테인먼트적 기능을 담당하게 됐다. 사람들은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구경하기 위해 동물원에 가지만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동물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다. 인간이 제공한 ‘가짜’ 자연에서 무기력하게 보여지는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번 전시는 동물에 대한 인간중심적 태도를 비판하는 작품들과 동물의 응시를 통해 환기된 인식의 변화를 다루는 작품들, 예술가들이 창조해낸 동물과 새로운 종에 관한 담론을 제시하는 작품들로 이뤄졌다.

 

박승원, 시아람 1장, 2008, 6분 15초, 싱글채널비디오

박승원, 시아람 1장, 2008, 6분 15초, 싱글채널비디오

 

박승원, Gut gebrullt, lowe!, 2011, 10분 39초, 싱글채널비디오

박승원, Gut gebrullt, lowe!, 2011, 10분 39초, 싱글채널비디오

 

 

박승원 작가의 <시아람 - 1장, SiaraM - part.1>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독특한 작품이다. 영상 속에서 침팬지와 작가는 서로 상호 모방적인 행동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교감한다. 반면, <멋지게 울부짖는 사자여!>에서는 작가의 소리에 사자가 응답하지 않는다. 이는 동물과 인간 사이의 간극은 결코 좁힐 수 없음을 나타낸다. 

 

손현욱, Connection, 2015, 혼합재료, 155x350x60cm

손현욱, Connection, 2015, 혼합재료, 155x350x60cm

 

 

손현욱 작가의 동물 조각 시리즈 <Connection>은 본능적인 인간 욕구의 알고리즘을 담고 있다. 동물은 음식을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의인화한 동물들을 통하여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이선환, 데드라인, 2014, 혼합재료, 가변크기

이선환, 데드라인, 2014, 혼합재료, 가변크기

 

 

벽에 걸린 이선환 작가의 <데드라인>에는 여러 종류의 가축, 닭이 되지 못한 병아리, 버려진 애완동물, 로드킬을 당한 새 등 동물의 내장과 피부가 엉켜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을 위해 죽음을 강요당한 동물에게 연민과 위로를 건넨다.

 

이동헌, Plastic Bag Dog, 2012, 레진에 우레탄도색, 80×60×50cm

이동헌, Plastic Bag Dog, 2012, 레진에 우레탄도색, 80×60×50cm

 

 

이동헌 작가의 동물을 전부 검은 비닐 봉투와 연결돼 있다. 비닐봉지는 주로 일회용으로 편하게 물건을 담거나 쓰레기를 모아 처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편의를 위한 도구다. 작가는 비닐봉지와 동물을 합체하여 생명의 가치를 동일화함으로써 ‘산업물=동물 변종’들을 만들어냈다. 

 

최민건, Genome project - Lost time 12-301, 2012, 캔버스에 유채, 91x65cm

최민건, Genome project - Lost time 12-301, 2012, 캔버스에 유채, 91x65cm

 

 

최민건 작가의 <잃어버린 시간>은 이번 전시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또렷하게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는 개의 시선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림 속 개의 눈빛은 더 이상 구경거리나 소유물이 아니라는 듯 당당하고 공격적이다. 그제야 인간은 ‘부끄러움’과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동물원이라는 공간의 잔혹함과 폭력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고, 나아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진지한 물음을 던져 보기를 바란다. 전시는 8월 13일까지.

 

에디터_ 추은희(ehchu@jungle.co.kr)

사진제공_ 서울대학교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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