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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며드는 북유럽의 디자인 문화

조상우 | 2017-07-12

 


 

북유럽의 선진 복지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복지정책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투명한 관리와 철저한 운영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해오고 있다. 필자가 이러한 복지강국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범용(汎用) 디자인’이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을 과연 이곳 북유럽에서는 어떻게 풀어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선진복지로 유명하다. 복지강국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선진복지로 유명하다. 복지강국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필자가 스웨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느낀 점 중 하나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 보행기를 미는 노인들,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이 거리에 유난히 많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이유를 눈치챌 수 없었지만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휠체어를 타고, 보행기를 밀고, 커다란 유모차를 거리에 끌고 나온다면 상당히 많은 제약이 따를 것 같다. 당연히 개인 자동차가 필요하고, 넓은 주차장이 확보되어야 하고,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 모든 것이 필요한 곳에 있어야만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 자, 이쯤 되면 거리에서 그들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이유를 눈치챘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배려들이 필요한 곳, 적재적소에 완벽하게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용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소위 ‘누구나’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유니버설 디자인이 이들을 거리로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아래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 (Louisiana art museum)에 설치된 리프트(lift)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Louisiana art museum)에 설치된 리프트(lift)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Louisiana art museum)에는 불과 계단이 4-5개밖에 되지 않는 높이지만 당연하게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고 작동법도 아주 간단하다. 이 친철한 리프트는 전시를 보러 온 휠체어, 유모차, 보행기 등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요긴하게 사용된다. 불과 4-5개의 계단에 굳이 이렇게까지 설치해야 할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왜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해 되묻지 않는다. 

 

이러한 작은 배려들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밖으로 나와 다른 이들과 어울려 문화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자엽스럽게 제공해준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기회를 누릴 권리가 있으므로.

 

대부분의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자동문 개페기

대부분의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자동문 개페기

 

 

대부분의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자동문 개페기의 큼지막한 이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기능들이 아무리 오래된(심지어 100년이 더 된) 건물에도 어김없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클래식한 버전으로 잘 어우러지도록 디자인되어.

 


틸팅(tilting) 기능이 기본으로 장착된 시내버스들

틸팅(tilting) 기능이 기본으로 장착된 시내버스들

 

 

시내버스에는 틸팅(tilting) 기능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휠체어나 유모차가 탑승 시 인도 쪽으로 버스가 기울어 수월한 승하차를 돕는다. 버스, 기차 안에도 이들을 세워 놓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들이 버스에 올라타면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들에게 쏠린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아닌, ‘내가 뭘 도울 일이 있을까’ 하는 시선이다.

 

마트에 마련된 아이들을 위한 공간

마트에 마련된 아이들을 위한 공간

 

 

은행, 마트, 병원 등 어떤 공공장소를 가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반드시 마련되어 있다. 마트에는 지루해지기 쉬운 아이들에게 과일 등을 나눠주는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는 자전거 도로와 인도 그리고 차도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는 자전거 도로와 인도 그리고 차도

 

 

자전거 도로와 인도, 차도는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북유럽은 자전거의 천국으로 알려진 만큼 다른 운송수단보다 월등히 쾌적하고 편리하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나와 다르지 않은 그들

하지만 이러한 편의시설이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어도 휠체어를 타고 거리에 나오길 꺼려한다면, 유모차를 끌고 눈치 보며 다닌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디자인일지도 모른다.  특히 타인의 ‘불편한 시선’도 이들의 외출을 막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 이들의 비밀이 숨어있다.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말로 정의해본다. 이곳 북유럽 사람들은 이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거리에 사람도 많은데 저렇게 휠체어를 타고 나오다니, 다니기 불편하네.”, “버스에 사람도 많은데 큰 유모차를 밀고 들어오다니.” 이들에게 이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아예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내 자리를 비켜주는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자리를 비켜준다. 처음엔 필자도 그저 ‘친절한 사람이 많은 나라’ 정도로 생각했지만 생활하다 보니 이들의 기본적인 마인드가 아주 여유롭고 관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시민의식과 이들만의 문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착되어 온 듯하다.  필자가 동네를 산책하다가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Hej!(안녕)”하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처음에는 이러한 인사를 받으면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인가? 언제 본 적이 있나? 한참을 고민했었던 듯하다. 심지어 거리에서 구걸하는 노숙자들과 커피를 나눠 마시며 서로 안부를 전하는 이들의 모습도 종종 본다. 마치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한사람 정도로 보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가식적인 친절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을 대한다는 것이다. 진심은 대화하는 그들의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쯤에서 이곳 사람들의 ‘직업’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직업이 있고 그것엔 귀천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이 논리는 실제 사회에서는 실효성이 없어 보이는 것이 현실인 듯했다. 가령 예를 들어, 사람들이 멋진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어느 회사의 사장과, 공사현장에서 먼지투성이의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인부를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가 같지 않은 것을 우린 암묵적으로 느끼고, 본다.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그 어리석은 시선들이 이곳에 와서 여지없이 깨지는 것을 목격했다. 

 

예를 들어 종종 공사현장에서 20대의 젊은 여자들이 작업복을 입고 큰 덤프트럭을 몰고 포크레인을 운전하는 것을 본다. 대형버스를 운전하는 이들 중에는 여성 혹은 나이가 지긋한 드라이버도 상당히 많다. 선입견을 가질 만한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일이 좋고 본인들의 적성에 맞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일을 한다면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소비적인 생각이 없다. 이러한 배경에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배어 있다. 그저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인 것이다. 당연히 보이는 것만으로 선입견을 갖거나 그 사람에 대한 섣부른 판단도 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러한 이들의 문화를 경험하며 스스로 반성하고 또 다른 건강한 삶의 시선을 갖게 되었다. 결코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커다란 자산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몸에 밴 자연스러운 이러한 시선으로 행하는 이들의 ‘유니버설 디자인’ 에는 당연히 진정성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진심으로 그들의 입장이 되어 디자인을 하는 것. 물론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도 단점은 존재하겠지만,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이들의 문화가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삶에 대한 만족도가 기본적으로 높다 보니 타인에 대한 시선과 배려도 조금 더 여유로운 것일까? 필자도 아직 그 확실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삶에 대한 여유로운 태도가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앞서 언급한 공공시설에 적용된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들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우리 아파트는 이런 기능도 있어!’, ‘우리 회사는 장애인을 위하는 버스도 운영하지’ 이런 식의 광고나 표현 등은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그들도 모두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므로 필요한 부분을 위해 사려 깊은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 자연스럽게 장애인들을 위한, 노인들을 위한, 아이들을 위한 디자인 배려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사려 깊은 디자인이 일상적인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스며든다(permeate)’는 것이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있는 것. 바로 이것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사회적 시스템이 뒷받침이 되어주는  ‘문화의 힘(culture power)’에 기반을 둔다고 보여진다. 세심한 디자인의 배려는 반드시 발견되기 마련이고, 이렇게 발견된 것은 더 가치를 발하게 된다. 이곳 북유럽의 ‘스며드는 디자인’은 지금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똑똑하게 진화 중이다.  

 

글, 사진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 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sangwoo.cho.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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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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