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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빅데이터, 21세기 디자인을 변화시킬수 있을까?

박진아 미술사학자, 디자인평론가(jina@jinapark.org) | 2015-07-31


‘정보 혁명’이니 ‘디지털 시대’라는 개념은 구미권에서는 벌써 1960년대부터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최근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을 근간으로 한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선언하는 오늘날 현대인들은 ‘스마트 시대’의 여명기에 와 있다. 미국에서 말하는 ‘인더스트리 3.5’ 또는 독일에서 말하는 ‘인더스트리 4.0’ 개념도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를 통해 축적한 빅데이터를 실생활 속 제품과 서비스로 구동시킨 것이다. 가령 소비자 디자인 제품, 서비스 시스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또한 빅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

글 ㅣ 박진아 미술사학자, 디자인평론가 (jina@jinapark.org)


비즈니스계는 점점 소비자 또는 유저(user)의 의사를 이해한 결과를 비즈니스 성공 전략으로 삼고 있는 추세다. 디자이너-소비자 인터랙션을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응용하려는 시도는 아니지만, 실시간 단위의 디지털 기술을 매개로 소비자들의 참여를 유도해 시시각각 데이터를 구축해 나가는 밀착형 정보수집 방식은 비교적 최근 현상이다. 이른바 ‘빅데이터’를 디자인 제품과 서비스에 도입해야 한다는 자각은 디자인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이 열기를 반영하듯, 숫자에 기반해 순수한 양적분석(quantitative analysis) 만으로 인간 행위와 문화 트렌드를 이해하는 ‘컬쳐로믹스(Culturomics)’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도 생겼다.
 

일찍이 ‘트렌드는 당신의 친구(The trend is your friend)’라는 잠언은 복잡한 시세와 차트를 상시 주시해야 하는 뉴욕 월가의 트레이더들 사이에서나 오가던 은어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제 일반 비즈니스계에서도 트렌드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빅데이터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져 어느새 비즈니스 성패를 좌우하는 비밀의 성배(聖杯, holy grail)로 부상하고 있고, 국제적 컨설팅 업체들과 광고대행사들도 비즈니스 우위를 점하고 싶다면 빅데이터를 도입하라 조언한다. 지난 십여 년 전부터 등장한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담론 후로 산업디자인과 디자이너는 보기 좋은 물건을 고안하는 자가 아닌 현대사회에서 빚어지는 여러 문젯거리를 덜어주는 해결사의 업(業)으로 전환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빅데이터가 일상생활에서 실용화되기 시작한 때는 2000년도 이후부터다. ‘빅데이터’ 의 대중적 실용화와 범일상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초기 발생 단계이지만, 오늘날 비즈니스 리더들 대다수는 빅데이터를 기업운영 전략에 포함시키겠다고 할 만큼 바짝 다가왔다. 그럼에도 빅데이터가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고 빅데이터 수집방법과 이를 의미 있게 분석할 데이터 과학은 아직도 진화발전 중이다.

실제로 이미 현대인들 혹은 ‘사용자(user)’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소한 일상생활 속 일거수일투족이 빅데이터로 만들어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GPS 나비의 안내로 자동차 운전을 하고, 손안의 작은 컴퓨터가 되다시피 한 이동 스마트폰 스크린을 손끝으로 밀고 당기고 두드려가며 가족 및 친구와 대화하고, 좋아하는 TV 연속극, 유행음악, 웹툰을 감상하며, 철마다 바뀌는 유행에 맞춰 새 옷 쇼핑을 하는 등 사소한 일상 활동을 데이터화하고 있다. 즉, 디지털 모바일 제조업체, 인터넷 서비스 제공 업체, 인터넷 포털과 검색업체에 ‘빅데이터’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만족스런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정부기관과 기업은 소비자들이 구축하고 부풀려주는 이 빅데이터의 가치를 한껏 활용하는데 눈독 들이고 있다.
 

특히 세계 최고 검색엔진이나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들이 축적해온 빅데이터를 공공 보건 및 의료 서비스 업계서 질병관리 및 보건서비스 측면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빅데이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은 〈빅 데이터: 우리가 살고 일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뒤바꿀 혁명(Big Data: A revolution That Will Transform How We Live, Work and Think)〉(한국어판 제목은 〈빅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 빅토르 마이어 쇤버거와 케네스 쿠키어 공저, 2013년 5월, 21세기북스 출간)이다. 이 책의 제1장 도입부에 따르면, 2009년 세계 곳곳에 창궐한 H1N1 독감 바이러스 위기를 예로 들어 빅데이터가 인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긴요한 자료임을 역설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와 미국 검색엔진 구글은 2009년 미국서 H1N1독감이 확산되기 1, 2년 전부터 앞서 미국인들의 검색어 빈도, 검색 시기, 횟수 등에 나타난 여러 상관관계(correlation)를 분석한 끝에 이 H1N1독감이 창궐할 것임을 미리 예측했다고 한다. 이는 구글이 미래를 훤히 꿰뚫어보는 신비의 예지력이 있는 오라클이어서가 아니라 이 검색엔진 데이터베이스에 쌓인 검색어휘에 대한 분석결과였다.

이에 미루어 볼 때, 지난 5월 말부터 한 달여 동안 우리나라를 전염위기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사태 또한 보건 관련 부처와 빅데이터 분석•예측이 미리 이루어졌었더라면 질병을 관리 통제하는데 도움이 됐을지 모른다. 흔히 전염성 질환이 돌 경우, 환자들은 바이러스에 감염 후 잠복기를 거쳐 여러 증상을 앓고, 최소 일주일 이상이 지나서야 병원 진찰을 받으러 간다. 그리고도 병원이나 정부 보건당국이 예외의 전염성 질병을 규명하고 대책을 강구하기까지 또다시 시일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자칫 위험한 전염병이 급속도로 확산되지 않게 감염피해자 수를 최소화하고 예방대책을 세우는 데에 빅데이터 분석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빅데이터는 오늘날 인터넷이 중대한 역할을 하는 서비스 업계에서 사업의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최첨단 무기가 되었다. 대중 관광업계는 그런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여행이나 관광을 계획하며 항공권, 기차나 버스표, 숙소 예약을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여행 예약 검색 사이트를 방문한다. 실시간으로 업체마다 경쟁하며 최저가대 기획상품을 시장에 쏟아내고 예약과 취소 현황을 실시간으로 매출에 연결시켜 소비자가 가장 저렴한 제품을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해주는 인터넷 여행 사이트들도 다름 아닌 빅데이터 기술에 힘입고 있다.
 

건축과 도시개발업 분야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공 공간, 시스템 디자인 분야에서 빅데이터를 포용하는 데 한창이다. 최근 에미레이트의 두바이 국제공항은 연간 항공이용객 1억2천만 명이 거쳐 가는 중동지역 항공 허브로서 항공기 교통량과 환승객 소통의 최적화 시도에 나섰다. 가까운 미래, 이 공항의 중앙행정실에서는 개별 항공기 탑승객들의 출발지와 목적지, 여행시간, 여행자 개인정보 등을 총괄 계산해 이동 동선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탑승 게이트를 시시때때로 이동 배치하고, 환승객이 공항 내에 머무는 동안 면세품 쇼핑 정보와 항공기 탑승시각을 놓치지 않도록 수시로 경고해주는 개인화 정보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 한다.

사용자들이 만드는 빅데이터는 건축 설계 과정에도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핵심 의사결정 요소가 되고 있다. 예컨대 작년 미국 브라운 대학 공학대학 건물 신축 설계를 수주받은 키란팀버레이크 건축사무소는 이 대학에 근무하는 교직원, 학생, 직원, 방문객들의 거주지, 업무 동선, 협력활동 행태를 빅데이터로 분석한 후, 그에 기반해 신건물을 설계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건설업체 아룹(Arup) 역시 그같은 건축계 신추세에 앞서 올해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와 손잡고 ‘데이터를 통한 디자인)’선언을 했다. 공공공간이나 교통시설을 지을 때 실시간 이용객, 이용동선 및 행태, 심지어는 기상 예보, 역 주변 공공 자전거 활용도 같은 주변 환경 요인까지 참작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공공설비 설계과정에 표준절차로 포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여러 사람이 모이고 효율적이고 순조로운 업무 흐름이 생명인 공공기관을 꼽으라면 병원 혹은 보건기관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스타트업체 아디타즈(Aditazz) 같은 기업은 카이저 퍼마넨테 산하 소 병원을 위한 건물 디자인 공모전에서 알고리즘에 기반한 건축 디자인을 제시해 최우수상을 받았고, 같은 컨셉으로 중국 광동 산터우 대학병원 내 암병원 설계 수주도 받았다. 건축이란 더 이상 건축가 개인의 감성과 육감에 따라 착상되는 한 편의 조형작품이 아니라 이 건물을 들고 나는 의사, 간호사, 직원, 환자, 방문객들이 가장 손쉽게 효율적으로 의료처지와 행정적 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는 기능 공간이어야 한다는 이 새로운 실용주의 건축의 응용도 빅데이터 덕분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현 디자인계는 빅데이터의 장점을 얼마나 활용하고 있을까?

빅데이터 복음자인 올레그 실레비츠키는 “기업들이 빅데이터에 담긴 잠재력은 알고 있지만 디자인에 바로 응용하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몇몇 업계의 긍정적인 사례에도 불구하고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 빅데이터의 활용도는 아직도 낮다. 우선적인 이유를 꼽으라면 우선 여전히 대다수 기관이나 기업체가 고객들에 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하여 유용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관행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이유로 지적된다.
 

소위 지금 미국 실리콘밸리에 우후죽순 운영 중인 빅데이터 스타트업 업체들이 클라이언트에 제공하는 서비스는 기업들이 구축해놓은 다량의 테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여 고객이 원하는 측면에서 해석 및 보고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앞으로 빅데이터 관리 및 응용과정이 제품 디자인 개발 과정 속 표준 절차로 확립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신속하며 우수한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빅데이터 옹호자들의 주장이다.

서스테너블 디자인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높아진 요즘, 소비자들의 생각을 읽어 그에 맞는 신소재, 생산방식, 유통, 광고 및 마케팅을 제공하는 것이 대세다. 마케팅의 귀재 나이키 운동화의 경우, 소비자와 디자이너 간 정보교환과 제품평의 피드백 순환고리를 강화하는 식으로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미국 포드 자동차의 경우, 이미 판매된 자동차들을 통해 GPS 시스템은 물론 엔진과 전자제어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운전자 고객과 자동차 사용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그로부터 얻은 통찰을 차기 신제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 두 업체는 모두 서스테너블 디자인에 관심 많은 소비자 트렌드를 겨냥해 환경친화적이고 연료절약에 도움이 되는 소재개발과 생산방식과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빅데이터로 승부하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수집된 정보와 피드백을 제품 생산과정으로 재입력해 개선된 제품으로 생산해내는 것이 성공 관건이다. 과거 데이터는 IT 부서의 과학자와 전문가에게 맡겨 분석결과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디자이너가 데이터를 한시라도 빨리 분석해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일례로, 제품을 통해 전 세계 고객과 디지털로 직접 연결된 시장을 꿈꾸는 P&G 사는 실시간 디자인 예측용 시뮬레이션 모형과 시뮬레이션 분석법으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분석한다. 세탁용 세제가 세탁 시, 헹굼 시, 탈수 시 다른 향기를 제공해 소비자가 후각적 쾌감과 안심을 하도록 제품의 경험적 측면을 디자인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소비자 마다 소비 이력을 디지털로 실시간 파악해 소비자가 제품을 필요로 할 적기를 파악해 제때 무료 샘플과 할인쿠폰을 제공한다. 심지어는 여성소비자가 다음 임신할 시기까지도 미리 예측해 신제품을 추천하는 예측분석(predictive analysis 마케팅 실험도 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경우, 매출 3분의 1이 추천 시스템에서 발생한다고 발표했듯이 데이터는 소비자를 사로잡는 데 유용한 전략무기임이 틀림없다.

빅데이터에는 어두운 이면도 있다. 빅데이터는 숫자를 통한 결과와 현상을 보여줄 뿐 현상에 대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과관계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데이터베이스의 크기 또는 표본은 크면 클수록 더 정확한 분석과 예측에 도움이 되는데, 그렇다 보니 빅데이터를 응용하고 싶어하는 사업자가 빅데이터를 구축하려면 막강한 데이터 저장용량, 프로세싱 능력, 분석 툴 같은 설비에 투자를 해야만 한다. 또 빅데이터는 한계수치 이상의 크기여야 의미가 있기 때문에 중소규모 업체는 덩치 큰 업체에 흡수되거나 작은 업체를 흡수해 중간크기 사업층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성향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
 

〈습관의 힘(The Power of Habit)〉의 저자 찰스 두히그도 지적했듯, 오늘날 유저들이 인터넷과 개인용 모바일 기기로 내주는 사용자 클릭 행태, 취향, 눈동자의 움직임 등은 모조리 빅데이터로 저장되고 있다. 빅데이터 기술이 더 고도로 발달할 미래, 디지털로 기록된 일거수일투족 과거사에 근거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행동까지 미리 통제당하게 될 인류의 미래를 그린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경고하듯, 빅데이터는 ‘만물만사의 데이터화’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감시와 통제를 하는 빅브라더가 될 수 있는 윤리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업계의 빅데이터를 둘러싼 사용자 데이터 포획 경쟁과 알고리듬 분석 전쟁은 이제 막 항해의 닻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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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지털 #건축 

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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