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라이프(Life)〉의 편집장은 앙드레 케르테츠(André Kertész)의 사진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말한다”고 평가했다. 이 말은 케르테츠의 사진이 번잡스럽다는 뜻이 아니다. 사진 한 장에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의미다.
앙드레 케르테츠(1894-1985)는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7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진작가로서 활동했다. 그의 사진 인생은 사진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특정 예술 사조나 유행에 얽매이지 않았던 그의 사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브라사이 등 많은 현대 사진가에게 영향을 줬다.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앙드레 케르테츠’ 전은 원판으로 프린팅한 사진을 그가 머물렀던 세 도시(헝가리, 파리, 뉴욕)를 기준으로 나눠 전시한다. 흑백사진으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삶의 후반에 작업한 컬러 프린팅도 볼 수 있어 앙드레 케르테츠의 작품세계 전반을 훑을 수 있다.
〈자화상, 파리(Self-Portraits, Paris)〉, 1927.
헝가리 시기(1912-1925)
헝가리 출신인 앙드레 케르테츠는 1912년 처음으로 카메라를 구매하여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일기를 쓰듯이 가족과 친구의 모습, 헝가리 전원의 목가적 생활을 촬영했다. 특별한 기교나 철학적 의미는 없지만, 앙드레 케르테츠의 따뜻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앙드레 케르테츠의 휴머니즘적 감성은 1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군인을 촬영한 사진에서도 나타난다. 전장의 참혹한 실상보다 군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찍은 사진은 전쟁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한다.
〈수영하는 사람, 헝가리(Swimmer Under Water, Esztergom, Hungary) 〉, 1917 - 하이앵글과 대각선 구도, 물의 반사로 인한 왜곡 등 아방가르드 예술의 실험적 요소가 보인다.
파리 시기(1925-1936)
1925년, 앙드레 케르테츠는 당시 예술의 본거지인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등 여러 예술가와 교류하던 앙드레 케르테츠는 그 어떤 사조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다.
이 시기에 앙드레 케르테츠는 사진의 기술력과 표현력을 연구, 실험한다. 명암을 세밀하게 담아내 흑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깊이가 느껴지며, 거울 반사, 그림자, 명암 대비 등 다양한 효과를 통해 실험적인 사진을 선보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업으로는 〈왜곡(Distortions)〉 시리즈가 있다.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Mondrian's Glasses and Pipe)〉, 1926 - 화가 몬드리안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물을 찍은 사진이다. 기하학적 구성과 사물의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풍자극 무용수(Satynic Dancer)〉, 1926 - 신체 왜곡에 관심이 많았던 케르테츠는 어려운 자세를 취한 무용수나, 거울을 이용한 왜곡된 신체를 촬영했다.
〈포크, 파리(The Fork, Paris)〉, 1928 - 일상적인 사물을 클로즈업으로 촬영함으로써, 독특한 정서가 느껴지는 사진이다. 또한, 뚜렷한 그림자와 명암대비로 빛을 잘 이용한 사진으로 꼽히기도 한다.
뉴욕 시기(1936-1985)
파리에서 마음껏 사진적 실험을 전개하던 앙드레 케르테츠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다. 여러 잡지사가 그에게 관심을 가졌지만, 감성적이고 이야기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앙드레 케르테츠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한다”고 말할 정도로 사진에 자신의 감성을 솔직하게 담아낸 작가다. 특히 사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사진을 찍었다. 그의 사진 속 꽃병, 의자, 빌딩 등은 살아있는 생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길 잃은 구름, 뉴욕(Lost Cloud, New York)〉, 1937(좌), 〈우울한 튤립, 뉴욕(Melancholic Tulip, New Youk)〉, 1939(우) - 건물과 부딪칠 것 같은 구름, 축 처진 튤립은 뉴욕 시절 길을 잃고 고독했던 작가 본인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파리에서와 달리, 인정받지 못했던 앙드레 케르테츠는 우울증을 겪는다. 자신이 추구했던 사진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사진 사이의 괴리감에 힘들었던 그는 1961년 은퇴를 선언한다. 그러나 우습게도, 은퇴 후 재평가되어 미국에서도 명성을 얻게 된다. 1985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앙드레 케르테츠는 모든 원판과 작업을 프랑스에 기증했다.
〈깨진 원판, 파리(Broken Plate, Paris)〉, 1929 - 앙드레 케르테츠는 뉴욕에서 늦은 성공 이후, 파리에 두고 온 원판 필름을 가져왔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 사진은 깨진 원판을 그대로 인화한 것으로, 우연에 의한 미학적인 효과가 나타난 작품이다.
정보보다 정서를 전달하는 앙드레 케르테츠의 사진은 관람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피사체에 담긴 뒷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자극적인 사진에 지쳐 있는 우리에게, ‘앙드레 케르테츠’ 전은 사진의 순수함과 낭만을 상기시키는 전시가 될 것이다.
앙드레 케르테츠
2017.06.09-09.03 (월요일 휴관)
성곡미술관
일반 10,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