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서울관)은 국가에서 설립한 미술관이라는 점 외에도, 한국 현대미술과 세계 미술의 교류 활성화 등 복합적인 이슈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최근 미술계 내, 외부에서 서울관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관심을 반영한다.
서울관의 건축은 ‘랜드마크’가 되기 보다는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쪽을 택하면서, 대중과의 소통을 지향하는 미술관의 목적을 명확히 보여준다. 미술관의 입구와 출구뿐 아니라, 내부 동선을 정해놓지 않음으로써,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관람할 수 있게 만든 것도 그중 하나다. 또한 지하 3층, 지상 3층의 규모로 만들어져 높이 19m 이르는 벽면이 있는 전시장내부, 빛과 주변 풍경이 투과되는 전시장의 모습 등은 서울관만이 가진 특징이다.
현재 서울관에서는 각각의 볼륨과 주제가 모두 다른 개관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모든 전시 디자인을 총괄 진행한 김용주 국립현대미술관 디자인 매니저는 국내에서 다소 낯선 전시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선보이며, 그동안 ‘한국의 단색화’ 전을 시작으로, ‘올해의 작가상 2012’,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전으로 레드닷, IF 어워드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새로운 서울관의 공간에서 그녀의 전시 디자인 비전을 만나봤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국립현대미술관
김용주 디자인 매니저에게도 서울관의 첫인상은 낯섦, 그 자체였다. 그래서 서울관에서 근무하게 된 직후 전시장을 찾아가는 것부터, 화장실과 편의 시설의 위치까지 익히고 경험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하게 됐다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이것 역시 전시 동선을 정하고 전시 디자인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였다고 한다. 어디로 들어와도 자유롭게 전시를 볼 수 있는 공간. 어쩌면 혼란스럽고 복잡함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녀는 이를 전시로써 이어주려고 했다. 그 첫 번째로는 전시장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벽면을 넘버링으로 채운 것이었다. 전시제목이나 작품으로 전시장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 보든 쉽게 알 수 있는 숫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전시 포스터나 티켓과 같은 홍보물에 사용한 붉은 선을 미술관 외부 벽면, 전시장 입구, 전시 동선에 배치했다. 공간의 일체감을 부여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서울관을 조금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관람객이 자율적으로 전시를 관람하는 분위기인 만큼, 공간에 익숙해져야 전시에 집중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번 개관전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은 기획자만큼이나 전시 디자이너에게도 어려운 과제였다. 국내외 7명의 큐레이터가 선정한 7명의 작가가 함께한 ‘연결_전개’ 전을 비롯해 현장 설치 작품인 장영혜중공업과 최우람, 서도호의 작품을 비롯해 소장품 기획전인 ‘자이트가이스트 • 시대정신’과 뉴미디어 아티스트들의 복합예술 프로젝트 전시인 ‘알레프 프로젝트’ 등 총 8개의 전시의 그 면면 역시 다양하다. 김용주 디자인 매니저는 어느 한 전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개관전’이라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었다. 전시 디자이너로서의 욕심도 조금 덜어냈다. 가벽을 설치하거나, 임의적으로 공간을 구분하는 등의 디자인적 요소를 줄이고, 전시장과 전시에 공간과 전시를 효과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한국의 단색화’, ‘올해의 작가상 2012’,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전 등으로 김용주 디자인 매니저는 전시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선보여왔다. 서울관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뿐 아니라, 이곳만이 갖고 있는 공간적 특성을 전시와 작품에 적극적으로 녹여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미술관과는 다른 건물 자체의 특성과 외부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 등은 전시 디자이너에게 한계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에게는 새로운 도전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서울관은 수직적인 공간의 활용이 가능한 곳인 만큼 시선의 이동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 등을 다양하게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작품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단을 놓는 등 관람자가 직접 움직이면서 작품의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그녀가 주어진 화이트 큐브 안에서 전시 디자인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시 디자인이 무엇인지’, ‘전시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질문하면서 찾아낸 답이다. 그녀의 질문이 향하는 곳은 단순히 화이트 큐브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 스스로 공간과 작품 간의 접점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전시장 벽면에 붙어 있는 글이나 순간적인 반응과는 다르다고 했다. 작품을 보면서 직접 움직이고 생각할 때 만들어지는 경험이야말로 전시와 관람자가 감응할 수 있는 길이다.
국내 미술관에서 전시 디자인의 개념을 이끌어내고, 해외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지만, 김용주 디자인 매니저는 여전히 디자인 분야에 대한 인식은 낮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특히 전시 디자인의 경우, 미술관보다는 컬렉션이나 대규모 박람회 등에 적용되는 사례만을 생각한다고 한다. 그녀가 처음 국립현대미술관에 왔을 때만 해도, 미술관 내부에서도 전시 디자인의 필요성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전, 현직 관장들의 신뢰와 학예팀과의 협력을 통해 한국 전시 디자인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녀의 작은 바람이라면, 전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어나고 그래픽부터 상품, 공간 등의 모든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내의 전문 디자인 인력이 늘어났으면 하는 것. 개관전 이후 서울관에서는 또 어떤 전시를 보게 될까. 중요한 것은 지금의 전시와는 또 다른 모습의 전시를 그녀와 디자인 팀원(송혜민, 김현숙)들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