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3
2011년 오늘을 사는 이 나라의 소비자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리뷰를 하고, 함께 모여 정보를 공유하며, SNS를 통해 불만 사항을 이야기한다. 기업이 아닌 소비자, 고객, 그리고 사용자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진 시대에 브랜드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에 따른 디자인 역시 달라져야 함은 물론이다. ‘브랜드 아이디어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을 지향하는 온라인 사이트, 아이디어크림(www.ideacream.com)의 양선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새로운 플랫폼과 소셜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강연 | 양선혜 나인후르츠미디어 소셜미디어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오늘날 소비자들의 힘은 막강해졌다. 웹과 함께 SNS와 같은 개인 미디어들이 발달하면서, 소비자들은 귀찮게 콜센터에 전화하지 않아도 브랜드에 직접적으로 의견을 말할 수도 있고, 소비자들끼리 함께 모여 컴플레인을 걸 수도 있게 되었다. 때론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표출해 브랜드 가치를 창조하는데 영향력을 펼치고 싶어하기도 한다.
한편, 브랜드는 이제 소비자와의 깊은 관계를 원하고 있다. 제품 판매가 원 목적인 브랜드라지만 이들은 이미 제품 판매만으로는 소비자를 오랫동안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브랜드와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싶은 소비자, 둘 모두를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종합 광고 대행사 나인후르츠미디어(9FRUITSMEDIA)는 이 둘의 욕구를 어떻게 연결시켜주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브랜드와 소비자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브랜드 가치를 공동 창조(co-creation)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가 지속적이고 생산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판매와 구매라는 물리적 수요, 광고에 의한 감성 충족 단계에서 벗어나 서로 신뢰하며 함께 결과물을 만드는 단계에 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소비자들만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지만, ‘집단 지성’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집단 지성이란 특별히 박식하지 않은 개인이라도 집단으로 모이면 놀라운 지적 능력을 발휘해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이론으로, 쉽게 말하면 대중이 현명한 판단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시스템화 시킨 것이 바로 크라우드 소싱이다.
크라우드 소싱(crowd sorcing)이란 의뢰자가 상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의 개인 또는 그룹이 해결책을 제안하는 문제해결 시스템이다. 한 마디로 브랜드가 브랜드 개선이나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를 의뢰하면, 그 의뢰를 본 소비자들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얻는 것이다. 보상은 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아이디어가 채택된 데 따른 포트폴리오로써의 가치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자기 발전을 위해, 또는 사회에 돌아갈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한다.
크라우드 소싱은 국내에선 아직 흔치 않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큰 성공을 거둔 경우가 많다. 던킨 도너츠는 작년, 창립 60주년 기념으로 도너츠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크라우드 소싱 프로모션을 벌이고 출시까지 마쳐 TV광고보다 더 큰 성과를 냈으며, 펩시 콜라는 자사의 ‘refresh’ 라는 슬로건을 이용, 콜라와는 전혀 관계 없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크라우드 소싱으로 공모해 기업 이미지를 좋아지게 할 수 있었다. 해외의 디자인 크라우드 소싱 사이트인 crowdSpring은 로고 디자인이나 웹 디자인에 기업들이 몇 천 만원이 넘는 상금을 내걸기도 해 가장 활발한 참여가 이루어지는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으로 유명하다.
이런 다양한 성공 사례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이들이 크라우드 소싱에 필요한 조건 3가지를 모두 만족시켰다는 것이다. 브랜드가 소비자를 협력자로 인정하고,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소비자의 책임감 있는 참여 의식, 브랜드와 소비자가 공동 창조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시스템적으로는 브랜드-소비자 사이에서 중립적인 공간과, 편의성, 신속성, 아이디어 집행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투명성, 브랜드와 소비자, 소비자와 소비자 간 네트워킹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연구와 분석에 의해 지난 2010년 오픈한 아이디어크림은 일명 ‘브랜드 아이디어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을 지향한다. 브랜드에 관련된 총체적인 아이디어를 다루기 위해 그 카테고리도 기획 아이디어부터 카피, 디자인, 영상까지 마케팅 분야 전역에 걸쳐 브랜드가 직접 아이디어를 의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브랜드는 아이디어크림에서 ‘피치’라 부르는 아이디어 의뢰를 한 뒤, 소비자가 브랜드의 제안 가이드에 적합한 아이디어를 업로드 하면 평가자가 해당 기간 동안 브랜드가 설정한 평가기준에 맞춰 점수를 주게 된다. 이 때, 평가 총점을 기준으로 1~3위까지 정한 후 아이디어 제안자에게 보상을 하는데, 아이디어크림에서는 다른 플랫폼들과는 달리 평가에 참여한 사람에게도 보상을 한다. 지금까지 약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아이디어크림에는 총 27번의 아이디어 피치가 올라왔고, 아이디어 제안 건수는 5천여건에 달한다.
양선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디자이너 출신으로 플랫폼 사업을 진행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웹디자인이 예쁘게 꾸미는데 집중하는 1차원적인 디자인이었지만,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소셜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기존에 만들어진 요소들을 사용자에게 맞게 얼마나 잘 조립하냐에 가깝다.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이런 맥락에서 중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소셜 디자인이 중요해질수록 개인을 뚜렷이 나타내 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그래야만 개개인들을 엮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SNS가 개개인을 강조하는 것, 로고를 누르면 전체 홈페이지가 아니라 메인인 ‘나’의 페이지로 이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선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심리학자 레빈의 방정식인 ‘B = f(PE)’, 즉, “행동은 사람과 환경의 함수”라는 그의 이론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행동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환경뿐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디자이너는 사람을 바꿀 수는 없지만, 환경을 디자인함으로써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디자인의 큰 역할이라는 것이 디자인을 이용해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찾아낸 그녀의 지론이다.
* 디자인으로 사는 세상(기획: 정소익 도시매개프로젝트 소장)은 구 서울역사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에서 진행중인 ‘카운트다운’ 프로젝트의 강연 프로그램이다. 디자인, 건축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디자인과 건축의 역할은 무엇인가. 또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단순히 ‘디자인 만들기’에 머무르지 않고 다학적인(interdisciplinary) 방법, 다각적인 대상과 연동하는 디자이너와 건축가들과 함께 이들이 어떻게 과거와 현재 사이의 사회, 디자인, 도시의 변화를 읽고 있는지 들어 본다. 또한 공유, 소통, 참여, 자발적 움직임 등과 같은 오늘날의 주제에 대해 이들이 디자인을 접목시키는 방식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마지막 강연은 12월 6일 4시, 문화역서울284 RTO 공간에서 열린다.
http://www.countdown2011.org/kr/LecturePro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