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미(美)를 쫓고, 이야기한다. 특히 미술(美術)은 그 뜻처럼 아름다움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술만큼 추함’이라니. 예술-미술은 원래 추했다는 이야기일까?
미술관에는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전시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예술만큼 추한’ 전(展)의 작품들은 인상을 찌푸리게 하거나, 심지어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전시 제목에도 나타났듯이, 이 전시는 아름다움보다는 ‘추함’을 다룬다. 추함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는 해외에서도 사례가 별로 없다. 그래서 정영목 관장을 비롯한 모든 큐레이터는 ‘추함’에 대한 정의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린 결론은 ‘추함’이란 상대적인 가치이며, 단순히 외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결과에 따라, 전시는 추(醜)를 여러 각도로 다룬다. 그중 서용선과 오치균은 인간의 내면과 감정의 추함을 강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서용선은 하찮으며 참담한 인간의 본성을 빨간색과 거친 붓터치로 표현했으며, 오치균은 뉴욕에서 유학하던 당시 외롭고 방황하던 자신을 홈리스(노숙자)에 대입하여 어둡고 무거운 화면으로 묘사했다.
이와 달리 심승욱은 일상의 추함을 이야기한다. 작품 외형은 우리가 흔히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작품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작품이 말하는 내용은 이기주의와 정치적 고립, 세월호 등 우리 사회의 추한 모습이다. 작가는 “겉모습의 추함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추한 내용을 말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전시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은 추함을 통해 자기 자신을 고백한다. 이근민은 꾸겨지고 뭉개진 살의 형태로 환각 경험을 이야기하고, 최영빈은 타인의 시선에 갇혔던 자신을 머리가 없는 이미지로 표현한다. 함진은 주변에서 발견한 쓰레기로 귀여운 조각을 만드는데, 자신이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느끼는 쓰레기를 선택하여 자신만의 아름다운 형태로 재탄생시킨다.
이근민, 〈The Portrait of Hollucination〉, 2015
올리비에 드 사가장, 〈Transfiguration〉, 2011
한편, 전시장에서는 장 뒤뷔페(Jean Dubuffet)와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 Portoles),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같은 유명 해외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 특히 올리비에 드 사가장(Olivier de Sagazan)의 〈Transfiguration(2011)〉은 충격적이다. 작가 본인 얼굴에 진흙 및 모래를 던지고 꼬챙이를 꽂는 자학적인 모습은 섬뜩하다.
과거 여러 작가들이 전통적인 미의 기준에 도전하며 하나씩 쌓은 노력의 결과로, 이제 추함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편견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아름다움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인간 사회의 모순과 심리의 깊은 곳을 드러낸다. 바로 이것이 예술의 역할이라면, 추함은 아름다움과 함께 예술의 또 다른 조형적 기준으로서 충분하다.
예술만큼 추한(Ugly As Art)
2017.03.07 - 05.14
서울대학교 미술관 및 야외광장
월요일 휴관
자료제공_ 서울대학교 미술관(
www.snumo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