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현대사진작가들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성곡미술관이 올 해의 첫 번째 전시로 마련한 독일 현대사진전 ‘프레젠테이션/리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representation)’이다.
알브레히트 푹스(Albrecht Fuchs, 1964년 벨레펠트 출생, 현재 쾰른에서 활동)
〈다니엘 리히터, 베를린〉 2004, 53.3 x 43.4cm, C-Print
Courtesy Frehking Wiesehöfer, Köln
예술가들의 초상 사진으로 유명해진 그는 피사체가 누구인지 찾아내려는 기대를 이용하면서도, 촬영 대상의 전형적인 포즈가 아닌 사적인 순간을 포착, 사려깊고 성찰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프레젠테이션과 리프레젠테이션’은 사진의 ‘제시’와 ‘재현’이 아닌, ‘제시된 이미지를 다시 제시한다’는 ‘재 제시’를 뜻한다. 바로, 독립된 이미지로서 현실과 이미지의 관계, 현실과 언어, 의미와 언어 간의 이분법적 분할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들 사이의 경계를 흐트러트리는 ‘이미지 자체로만 존재하는 이미지’를 의미한다.
카린 가이거(Karin Geiger, 1966년 도르트문트 출생, 현재 뒤셀도르프에서 활동)
〈라이프치히 (활기넘치는)〉 2005, 100 x 300cm, C-Print ⓒ Karin Geiger
도시와 지역 사이의 경계를 보여주는 세 장의 대형사진은 모호하게 정의된 영역들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지만 관람자들은 그것이 다큐멘터리인지 연출된 무대인지 알 수 없다. 그는 흑백과 컬러 프린트의 적절한 사용으로 현재의 상황을 과거와 결합시키면서 이러한 양면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독일국제교류처와 괴테인스티튜트의 세계 순회전인 이번 전시에는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의 베른트 베혀 교수에게 수학한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마스 슈트루트, 칸디다 회퍼의 다음 세대들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참여한다. 라우렌츠 베르게스(Laurenz Berges), 알브레히트 푹스(Albrecht Fuchs), 카린 가이거(Karin Geiger), 클라우스 괴디케(Claus Goedicke), 우쉬 후버(Uschi Huber), 마티아스 코흐(Matthias Koch), 비프케 뢰퍼(Wiebke Loeper), 니콜라 마이츠너(Nicola Meitzner), 하이디슈페커(Heidi Specker), 페터 필러(Peter Piller) 등이다.
클라우스 괴디케(Claus Goedicke, 1966년 쾰른 출생, 현재 베를린에서 활동)
〈달로의 여행〉 2006, 가변매체, Pigment print on wallpaper ⓒ Claus Goedicke
다양한 크기의 벽지형태로 작품을 제시하는 그는 사진을 프레임 속의 오브제로 보여주는 일반적인 전시형태에서 벗어나 디지털 합성을 통해 신체 부위를 하나의 장식 패턴으로 만들어 여러 다른 사진들과 함께 배치한다. 마치 오브제 앞에서 흔들리는 커튼처럼 보이는 이러한 작업은 추상적으로 배열된 장식 패턴,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 대조를 통해 관람자의 감수성을 고조시킨다.
통일된 독일 전역에서 20년 이상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10인의 작가들은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모티브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비교, 분석하는 ‘다큐멘터리 언어’를 공통으로 구사하지만 1990년대의 ‘뒤셀도르프 학파’과 같이 동질적이거나 지리적인 특정 스타일을 형성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역사적, 사회적 부수물 혹은 작가 개개인의 표현 방식을 통해 예술창작의 매체로서의 현대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우쉬 후버(Uschi Huber, 1966년 브르크하우젠 출생, 현재 쾰른에서 활동)
〈정면〉2006, 37 x 37cm, C-Print ⓒ Uschi Huber
그는 예외적 상황에 놓인 도시 건축물을 보여준다. 카니발 행렬에 대비해 일종의 보호막으로 큰 나무 널빤지를 두르고, 이중문과 입구를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도록 한 월요일 쾰른의 상점과 주택들. 그의 사진에서는 일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건축적 형태들이 조각처럼 단순화돼 명확하게 제시된다. 또한 그의 사진은 다가올 사건과 그 영향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남기지 않은 채 섣부른 해석을 지연시킨다.
페터 필러(Peter Piller, 1962년생 프리츠라르 출생, 현재 라이프치히에서 활동)
〈구멍 들여다보기 (아카이브의 일부 Archiv Perter Piller)〉 1999-2006, 37 x 33cm, Pigment Print
VG Bild-Kunst, Bonn, Germany, 2007. Courtesy Frehrking Wiesehöfer, Köln. Barbara Wien, Berlin
이미 언론에 널리 유포된 사진을 이용하는 그는 일간지에서 얻은 일상적인 이미지로 거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한다. 그가 차용한 장면들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본래의 맥락에서 분리되고 새로운 크기와 배열로 제시돼 관람자가 각자의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그의 작품은 사진이라는 매체, 즉 대중 매체에서 사진에 통용되는 코드에 대한 연구이다.
사진은 ‘상상’ 보다는 ‘현실’에 가까운 매체다. 하지만 이들은 컬러사진, 대형출력, 디지털이미지 제작 등 다양한 기술을 통해 자유로운 이미지를 구성하고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를 창조해 개념적 사고에 기반을 둔 시각적 이미지의 메타포로 사진을 제시한다.
하이디 슈페커(Heidi Specker, 1968년 다메 출생, 현재 베를린에서 활동)
〈엘시에 대하여 - 엘시 1〉 2007, 85 x 56cm, Pigment Print
VG Bild-Kunst, Bonn, Germany, 2007. Courtesy Fiedler Contemporary, Köln. Galerie Barbara Thumm, Berlin
그는 엘시(Elsi)라는 여성의 복합적 초상을 일련의 컬러사진으로 담아낸다. 엘시의 생활환경, 알프스의 풍경, 집안의 모습이 그녀의 뒷모습과 함께 이미지의 모자이크를 형성한다.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과 잉게보르크 바흐만(Ingeborg Bachmann, 1926~1973)의 문학작품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일련의 이미지들은 관람자 개인의 연상과도 상호작용 한다.
전시에서는 연출 및 디지털 이미지 보정 등과 같은 기술을 활용해 제작된 작업들과 전통적인 젤라틴 실버 프린트부터 디지털 프린트에 이르기까지, 독일 현지에서 프린트된 2000년대 전후의 대, 소형 사진작품 153점을 볼 수 있다.
현실을 대하는 작가들의 시각과 사진 매체로 표현하는 그들의 방식을 보여주는 전시에서는 보여주는 이미지 표현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유연한 사고에 기반을 둔 시각적 이미지들을 통해 현대 기술과 예술의 관계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5월 28일까지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성곡미술관(www.sungkok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