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6
이번 전시는 뭔가 좀 다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전시의 모티프가 된 동화 <비밀의 정원>) 주인공 메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이 눈으로, 코로, 마음으로 들어온다.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비밀의 화원’ 전은 동명의 동화 <비밀의 화원>을 기반으로 전시를 내레이션화 한 것이 특징이다. 동화는 관람객에게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동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매개체로, 전시를 보다 쉽고 친숙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동화 <비밀의 화원>은 고집스럽고 폐쇄적인 성격의 주인공인 메리가 부모의 죽음 이후, 고모부 댁에 머물면서 버려진 화원을 가꾸며 그로 인해 그녀 주변이 행복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관람객은 비밀 속 화원을 가꾸며 사람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소녀 메리의 이야기와 함께, 미술 작품으로 꾸며진 화원에서 치유와 휴식을 경험하게 된다.
전시는 동화 <비밀의 화원>의 내용을 기반으로 총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24명의 젊은 작가가 회화, 사진, 설치 등의 작품으로 각 섹션을 꾸몄다.
Part 1.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인도에서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 자라온 10살 소녀 메리 레녹스는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소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염병으로 부모님과 하인 모두가 세상을 떠나면서 메리는 영국의 고모부 집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어른들의 사랑은 없었다. 메리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Part 1은 윤병운, 김유정, 염지희, 반주영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무관심 속에 자라온 소녀 메리의 우울함과 적막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유정 작가는 캔버스에 석회를 입힌 후 석회를 긁어내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온기> 시리즈를 선보였다. 원래 검은색은 죽음의 색깔로 인식되는데, 작가는 검은색 안에 생명이 살아 숨쉬는 정원의 모습을 그려 넣어 상처받은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했다. 반주영 작가의 작품은 모노톤으로 이루어진 Part 1에서 가장 화려하다. 이 작품을 통해 관람객은 무력하고 외로운 삶을 벗어나게 해줄 새로운 희망이 도래했음을 눈치챈다.
Part 2. 문은 열렸다. 천천히
딕콘은 메리에게 정원 속 동물들과 자라나는 식물들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중 메리는 붉은 울새를 가장 좋아했는데 자신을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고 생각했다. 붉은 울새를 따라가던 메리는 10년 동안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비밀의 화원’을 발견하게 된다.
Part 2에 들어서는 관람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프리지아 향이다. 싱그러운 프리지아 향과 알록달록한 그림이 반전된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한다. 박종필, 마크 퀸(Marc Quinn), 정원, 이명호, 이슬기의 순으로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박종필 작가는 생화와 조화를 한 화면 안에 그림으로써 실제와 허구를 이야기하고, 마크 퀸 작가는 화면을 가득 채운 꽃과 과일의 아름다움 속에 삶의 여러 가치를 담아냈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메리가 동화 속 새로운 인물인 딕콘과 함께 처음으로 만난 비밀 속 화원의 모습을 함께 상상해볼 수 있다.
Part 3. 비밀스런 연극놀이
콜린은 태어나서 한 번도 집 밖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을 아픈 콜린을 집에 가뒀고, 고모부는 고모의 죽음 이후 아들을 멀리했다. 하지만 메리는 콜린의 등을 쓰다듬고 치료해주었다. 그런 메리에게 콜린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Part 3에서는 무나씨, 김태동, 전현성, 안준, 그레이스 은아킴이 현대사회에서의 다양한 관계의 모습을 각자의 시선으로 표현했다. 무나씨 작품에는 주로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나타내는데, 여기서 타자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작가는 관계를 맺을 때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나의 모습, 그런 나와 또 다른 내가 관계하는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안준 작가는 자화상을 담은 사진을 통해 경계에 선 인간의 아찔함을 표현했는데, 새로운 관계를 맺기 직전 메리가 느끼는 두근거림, 설렘, 긴장감이 전해진다.
Part 4. 환상의 뜰
콜린, 메리, 딕콘은 힘을 합쳐 비밀의 화원으로 갔다. 셋은 자신들만 아는 비밀의 화원을 매우 사랑했고 더 아름답게 가꾸었다. 콜린은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했고, 메리는 어느덧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예쁜 소녀가 되어 있었다.
이야기의 행복한 결말을 담아내는 Part 4 역시 향기로 시작한다. Part 2보다 진하고 화려하다. 진현미, 신소영, 최수정, 전희경, 원성원, 이정, 이재형, 한승구 작가의 몽환적이고 이상적인 시선이 담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진현미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조합된 산수화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최수정 작가의 콜라주 사진 작품에서는 현실에서 벗어나 위로와 편안함을 주는 상상의 공간을 느끼게 된다. 이정 작가는 버려진 땅이나 눈밭에 이야기하고 싶은 단어, 문장을 네온사인으로 표현했다. 완전히 비어 있는 땅을 보면서 관람객은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다.
한편, 2층에는 SPECIAL GUEST ZONE이 마련돼 있다. 미국의 사진작가 앤 미첼(Ann Mitchell)은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순간을 포착하여 재창조한 작품을 선보였으며, 일본의 대표 작가 히로시 센주(Hiroshi Senju)는 깊은 자연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힘이 넘치면서 서정적인 작품을 공개했다.
이로써 동화보다 더 쉬운 전시 ‘비밀의 화원’이 끝이 났다. 동화 <비밀의 화원> 이야기를 쭉 따라가다 보니 미술관 관람이 끝나는, 정말로 신기한 전시 구성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쉬운 미술전시라면 그 어떤 미알못(미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 더 소개하고 싶은 전시가 있다. 석파정 야외공원 내 물을 품은 길에 조성된 조각 전시 ‘거닐다, 숲’ 전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놓인 감각적인 작품들은 힘을 주는 문구와 함께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한 템포 쉬어가기를 제안한다. 김우진, 정진호, 전용환, 김원근 작가의 작품 5점의 길 곳곳에 놓여 있는데, 종종 포토존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특히 지금은 절정에 이른 단풍 덕에 금손, 곰손 누구나 2016년 인생사진을 찍어갈 수 있다.
서울미술관 제1, 2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비밀의 화원’ 전은 2017년 3월 5일까지, 야외공원에서 관람객을 기다리는 ‘거닐다, 숲’ 전은 11월 27일까지다.
에디터_ 추은희(ehchu@jungle.co.kr)
사진제공_ 서울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