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달라 독일 통신원 | 2016-11-11
독일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쾰른(Cologne)에 즐비한 맥주 바(Bar)들을 둘러보면 얇고 긴 잔을 단숨에 들이켜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슈탕(stange)이라 불리는 200ml의 좁고 긴 잔에 쾰른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아 마시는 그들에게 맥주는 하루의 피곤을 달래주는 비타민이자 지역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다. 과거 쾰른의 상인들과 노동자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잠깐의 앉을 시간도 없이 장시간 힘든 노동을 해야 했는데 일을 마친 후 들른 술집에서 작은 잔을 가볍게 한두 잔씩 비우곤 했던 습관이 이 작은 잔을 만들어 냈고 이 한 잔의 맥주는 그들의 힘든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어내기에 충분했다.
한 잔에 약 1.30유로, 우리 돈 1500원 정도로 쾰른 시민들에게는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소셜 비어(Social Beer)는 어느 음식과도 궁합이 맞아 가볍게 마실 수 있다. 1918년 쾰른에서 인정받은 지역 맥주를 쾰쉬(Koelsch)라 지칭하기 시작했고 1995년 쾰쉬 규약(Koelsch-Konvention)을 통해 어떤 맥주가 쾰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지 규정되었으며 현재까지 쾰쉬라는 이름으로 여러 브랜드(Brand)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시즌에 맞게 다양한 브랜드 마케팅(Marketing)을 선보이고 있다.
중세 길드 정신으로 무장한 가펠(Gaffel)
요즘 국내에서도 착한 가격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펠(Gaffel) 또한 쾰쉬 브랜드 중 하나이다. 1302년에 시작된 가펠 쾰쉬는 오랜 양조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펠은 1396년 쾰른의 무역 상인들의 정치적인 조직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독일어로 ‘두 갈래로 갈라진 포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의미처럼 로고의 폰트(font)는 세워 놓은 두 개의 포크와도 닮아있다. 1908년 비커(Beeker) 형제가 양조장을 인수하면서 중세 시대의 상인 정신을 닮고자 하는 마음으로 브랜드 이름을 가펠이라 지었다고 한다. 쾰른의 대표 색이라 할 수 있는 붉은색을 버리고 보라색에 가까운 짙은 푸른색을 브랜드 색으로 꼽아 신선한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다.
그때그때 다른 가펠 쾰쉬(Gaffel Koelsch)의 로고
가펠은 브랜드의 고유 로고를 유지하는 다른 브랜드와 다르게 용도와 상황에 맞게 용이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로고를 디자인하여 트렌드(Trend)의 흐름을 마케팅에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프리미엄 맥주의 대표주자, 프뤼(Frueh)
쾰른의 대표 프리미엄 맥주답게 쾰른 카니발의 상징인 3개의 왕관을 모티브로 한 빨간색 로고가 특징이다. 쾰른 카니발은 11월 11일 11시 11분에 시작되는 이 도시의 가장 큰 연중행사다. 로고를 둘러싼 금색과 은색의 아웃라인(outline)이 고급스러운 브랜드의 이미지를 더 해 주고 있다. 프뤼 역시 가펠과 함께 수입되어 국내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1894년 지어진 양조장에서는 조세프 호프브뢰이(P. Josef Frueh)의 쾰쉬 맥주를 만드는데 잔 위로 코를 가져가면 향긋한 과일 향과 꽃 향을 은은하게 느낄 수 있다. 프뤼 쾰쉬는 독일 쾰른의 대표 축구선수 루카스 포돌스키(Lukas Podolski)를 광고모델로 내세우면서 다른 마케팅은 필요 없을 정도로 모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짧고 굵은 프뤼(Frueh)만의 고급진 한 마디!
프뤼는 붉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광고를 채우는 것이 특징인데, 보는 사람을 움찔하게 만드는 이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독특한 그들의 광고 문구는 보수적일 정도로 쾰쉬만을 고집하는 쾰른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무알코올, 레몬맛, 오리지널 등 종류별로 병을 늘어놓고 ‘과해도 걱정’이라는 문구 하나만 크게 적어 둔다거나, 작은 맥주잔 하나를 세워 놓고 ‘올해는 이거면 됐어’, ‘끝내주는 걸 어떡해’, ‘절대 현혹되지 않아’, ‘즐거움을 위한 투자’ 등 비 대중적인 정통 독일식 유머가 담긴 문구들로 캠페인을 이어나가고 있다.
여자를 위한 맥주, 라이스도르프(Reissdorf)
다른 쾰쉬와 같이 알코올 도수는 4.8%이지만 목넘김이 가볍고 부드러워 여성 소비자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으며 프뤼, 가펠과 함께 쾰쉬 소비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하인리히 라이스도르프(Heinrich Reissdorf)가 1894년에 상면 발효 양조장을 설립한 것으로 시작된 이 브랜드는 현재 라이스도르프 쾰쉬의 판매지역을 생산지로부터 100km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이 외에도 길덴(Gilden), 시온(Sion), 뮬렌(Muehlen), 쥬너(Sünner) 등 다양한 쾰쉬 브랜드들이 소비되고 있지만 요즘 들어 새 브랜드의 탄생은 보이지 않고 있으며 양조장의 수는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해 가고 있다. 몇몇 큰 양조장마다 더 많은 브랜드를 생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지만 대체적으로 이미 자리 잡은 큰 브랜드들에 비해 소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모금의 시작’이 되는 병뚜껑 디자인
맥주를 사려 할 때 병뚜껑이 축구공으로 변해 있거나, 각기 다른 국가의 국기 또는 피에로로 변해 있다면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 축구와 맥주는 한 쌍의 연인과도 같아서 뭔가 중요한 축구 행사가 다가올 즘에는 맥주들도 연인을 반갑게 맞이하고자 꽃단장에 들어간다. 지난 월드컵에 가펠(Gaffel)은 전 세계의 모든 국기로 병뚜껑을 디자인해 쾰른에 사는 모든 외국인 소비자들을 ‘자기 나라의 국기를 보면 꼭 한 병 사고 마는 애국자’로 불러들였다.
받침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우리도 디자인이다!
독일에서는 맥주를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잔 아래 깔려있는 받침의 비중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 ‘비어 데켈(Bier Deckel)’이라고 불리는 맥주 받침은 가장 마지막에 맥주 값을 계산하는 데 있어 계산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아주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숫자를 셀 때 ‘바를 정(正)’자로 표기하는 것처럼 이들도 작은 용량의 쾰쉬를 단숨에 들이키는 사람들의 잔의 개수를 일일이 표시하고 있다.
또한 더 이상 맥주를 마시고 싶지 않다는 표시를 위해 맥주잔 위에 이 받침을 올려놓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서빙을 하는 직원은 끊임없이 당신 앞에 새로운 쾰쉬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 받침 역시 각 브랜드마다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디자인을 때마다 바꿔 선보이고 있다. 라이스도르프는 쾰른 대성당, 카니발, 라인강변 등 쾰른의 상징들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받침에 그려 넣기도 하고 사소하게는 쾰른에서 발행된 동전의 무늬를 그대로 입혀 넣기도 한다. 독일 여행을 하면서 이 맥주 받침을 모으는 것 또한 쏠쏠한 재미가 된다.
쾰쉬의 역사가 100년이 지나 쾰른이라는 도시를 생각했을 때 신선한 맛의 작고 긴 황금빛 맥주 한 잔이 떠오르기까지는 그들의 수많은 열정이 필요했다. 알코올 도수부터 색상, 맛의 특징, 지나칠 정도로 섬세한 부분을 위한 디자인. 이 사소하지만 기본이 되는 작은 조약과 규칙들에 대해 혹자는 유난스럽다고 하겠지만 이는 자신의 것을 역사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모두의 약속이며 자존심이다. 마트에 진열된 많은 수입 맥주들 중 쾰쉬를 만난다면 반가운 마음으로 당장 데려와도 좋다. 그들의 황금빛 자존심을 우리는 아낌없이 마셔야 할 의무가 있다. 프로스트(Prost)!
글_ 남달라 독일통신원(namdalr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