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3
좋은 신발은 그 주인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고 했다. 디토레 구두가 그렇다. 디토레를 신으면 마냥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추억 속 엄마의 구두, 디토레
올해 여름 론칭한 브랜드 ‘디토레’는 몸은 어느새 훌쩍 커버렸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소녀인 이 시대의 모든 여성의 마음을 대변한 디자인을 주로 선보인다. 어린 시절 엄마가 신었던 꽃자수 구두, 동화 속 공주가 신었을 법한 사랑스러운 메리제인 슈즈, 좀더 활동적인 소녀를 위한 동그란 앞코의 새들 슈즈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디토레는 이태리어로 손가락을 뜻하는 ‘디토’와 디자이너 어머니의 이름 마지막 글자인 ‘레’를 합쳐 만들었다. 풀이하자면 ‘엄마의 손가락, 엄마의 딸’ 정도가 된다.
그런데 사실 디토레가 나오기 전에 이미 ‘미시리코드’라는 브랜드가 있었다. ‘미시리’는 아름다운 시간의 진리라는 뜻으로, 10년 이상 경력의 슈즈 디자이너 윤미라와 40년 이상 경력의 신발 장인들로 구성된 국내 최고의 슈즈 레이블이다. 라스트와 발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정의, 수준 높은 재료를 선별하는 노하우, 섬세하고 과학적인 분석과 정통 수제작 기법의 완성도를 가지고, 시대와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묵묵히 제 위치에서 빛을 발하는 클래식 슈즈를 지향한다.
“디토레는 제가 여자로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전부 표출한 브랜드라고 보시면 돼요. 앞서 언급했다시피 미시리코드는 매우 클래식한 슈즈 브랜드예요. 최대한 절제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야 하죠. 기본적으로 이런 디자인을 가장 좋아하긴 하지만, 저도 여자인지라 가끔은 여자로서의 욕망을 표출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꽃 자수를 넣는다든지, 화려한 색을 사용한다든지, 반짝이는 스팽글을 붙인다든지 하는 것처럼이요. 디토레는 제가 동화적인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터이자 돌파구인 셈이에요.”
낯익지만 어디에도 없는 디자인
디자이너 윤미라는 디토레의 가장 큰 특징으로 ‘현 시대의 트렌드와 동떨어지지 않으며, 유행을 타지 않아 두고두고 신을 수 있는 디자인’, ‘어딘가 낯익지만 어디에도 없는 디자인’을 꼽는다. 그녀의 이러한 디자인 철학이 가장 잘 반영된 제품이 바로 꽃자수 슬링백이다.
“사실 꽃자수 슈즈는 미시리코드 때부터 지금까지 시즌마다 진행하는 디자인이에요. 신발을 가지고 실험을 많이 해본 편인데, 그중에서도 자수는 단순한 디자인도 입체감 있게 살려주는 매력이 있어요. 올 여름에는 ‘몬스테라’라는 꽃으로 자수를 놓았고요. 가을/겨울 라인에는 ‘핑크 장미’를 선택했어요. ‘행복한 사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방송에서 많은 연예인이 신고 나와 찾는 고객들이 많아졌어요.”
실제로 TV 드라마나 행사, 잡지 화보 등 다양한 매체에서 디토레 슈즈가 소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명 연예인이 개인적으로 쇼룸을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전부 브랜드 론칭 1년도 안돼 이룬 일이다. 이제 한시름 놨겠다 싶었는데, 그녀는 요즘 브랜드 홍보, 마케팅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한다. 소규모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어떻게 하면 브랜드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 문제로 정말 많이 방황했어요. 저는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13년간 줄곧 슈즈 디자이너로서 일해왔어요. 슈즈 공장에서 일한 적도 있어서 현장 경험도 풍부해요. 미시리코드나 디토레 제품 역시 이 같은 경험에서 비롯된 과학적인 디자인들이고요. (너무 자랑 같지만) 형태만 흉내 내는 몇몇 브랜드와는 차원이 달라요. 그런데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홍보나 마케팅이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는 주변의 좋은 아티스트들과 협업해서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제작하는 등의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어요. 단편영화 <일편단심>도 그래서 만든 거예요.”
구두를 향한 단 하나의 마음
<일편단심>은 2015년 브랜드 미시리코드가 이원준 감독과 함께 제작한 20분짜리 단편영화다. 국내 패션브랜드로는 최초다. 디자이너 윤미라가 제작자인 동시에 영화의 의상과 미술 등을 맡아 브랜드의 감성이 더욱 녹아 들었다. 영화는 환생을 위해 다음 저승으로 넘어가야 하지만 미련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집스럽게 수제 구두를 만드는 소녀 ‘이든’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펼쳐지는데, 뚝심 있게 신발을 만들어온 디자이너 윤미라의 모습과 꼭 닮았다. 구두에 정성을 담아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이든처럼, 윤미라 역시 새 구두를 신게 될 사람을 상상하며 공정 하나하나에 온 마음을 기울인다.
“미시리코드나 디토레 구두를 신는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구두를 만드는 제가 행복하니까, 그 구두를 신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구두를 만들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디자이너 윤미라. 어린 시절 그녀의 꿈은 빨리 어른이 돼서 예쁜 구두를 마음껏 신는 것이었고, 어른이 된 후엔 예쁜 구두를 직접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신고 싶었다. 문득 그녀의 다음 꿈이 궁금했다.
“저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신발을 만들고 파는 게 아니에요. 1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발을 천직으로 여기며 일을 해오고 있어요. 그래서 우선은 디토레, 미시리코드 브랜드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게 목표예요. 금방 빵 떴다가 사라지는 브랜드가 아니라 묵묵히 그 자리에서 소비자와 함께 늙어가는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바라요.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신발과 함께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싶어요. 빨간 립스틱, 흰 셔츠에 청바지, 가죽 앞치마를 입고, 거기에 아주 클래식한 태슬 로퍼를 신은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훗날 제 손녀딸이 우리 할머니는 정말 멋진 신발 디자이너였다고 기억해줄 만큼이요.”
디토레 www.ditole.com
미시리코드 www.misiricode.com
에디터_ 추은희(ehchu@jungle.co.kr)
사진제공_ 미시리코드, 디토레 홈페이지, 스트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