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진 | 2016-07-21
김옥선 사진가는 공간과 인물을 향한 섬세하고도 특별한 시선을 갖고 있다. 그녀와 늘 동행하는 카메라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기사제공 | 월간사진
작업의 시작을 함께하다, 핫셀블라드 503CX
첫 만남은 10년도 더 된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원에 다니던 중 결혼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결혼 준비 비용으로 표준, 광각렌즈와 함께 이 녀석을 덜컥 구입한 것. 본격적으로 인물을 주제로 작업했던 1996년부터 2000년까지 <Woman in a Room>, <Living Room> 등, 초기 작업 대부분을 핫셀블라드 503CX와 함께 했다. 소형 카메라만을 사용해오던 때와는 다르게 포트레이트 작업에 대한 자신감을 안겨준 카메라이기도 하다.
그녀는 첫 중형 롤 필름을 사용했을 때의 설렘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일정한 계층에 속하는 가족을 대상으로 작업한 <Living Room>은 제주대학교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가족들의 초상이다. 온전히 카메라를 바라보고 포즈를 취한 인물을 마주하는 작업이었기에 소형 카메라로 작업할 때에 비해 좀 더 세밀한 이야기를 담기에 효과적이었다.
사진 한 장 남기고 떠나간, 홀스만 45HF
인물 위주로 촬영을 해오던 그녀의 작업은 2001년에 이르러 더욱 확장된다. 인물이 속한 공간까지 함께 보여주고자 한 것. 2001년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삶의 시간 시간의 얼굴>을 준비하던 때였다. 전시장에서 관객과 사진 속 인물의 눈높이를 맞추고자 대형 카메라가 필요했던 차에 선택한 카메라가 바로 홀스만 45HF였다. 스튜디오 촬영이 아닌, 인물과 공간을 찾아 움직여야만 하는 작업의 특성상 가볍고 휴대가 간편한 필드 카메라가 필요했던 것이다. 6×6의 중형 포맷인 핫셀블라드보다 가볍고 다루기 수월해서 여러 공간을 옮겨 다니며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Woman in a Room 2>, <Happy Together>, <You and I> 연작, 그리고 <Hamel’s Boat>까지 대부분의 작업을 함께해 온 카메라이건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녀 곁에 없다. <함일의 배>로 다음작가상 수상전을 준비하던 2008년, 외국인 친구 프린세스와 서귀포 용머리 해안에서 촬영을 하다가 강한 바람에 트라이포드와 함께 카메라가 넘어지며 깨지고 만 것이다. 바로 그 직전에 프린세스의 모습을 담을 수는 있었지만 더 이상 촬영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깨지기 직전, 홀스만이 남긴 프린세스의 사진 한 장만이 그녀의 곁에 남아 있다.
위기의 상황에서 만나다, 린호프 테크니카 마스터 3000
<함일의 배>로 다음작가상 수상전을 준비하던 2008년 당시, 몇 년을 함께한 홀스만을 한순간의 사고로 잃은 터라 급하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카메라가 필요했다. 또 다시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튼튼하고 묵직한 것을 찾던 중 우연히 충무로 카메라 매장에서 발견한 이것. 린호프 테크니카 마스터 3000이다. 그녀의 첫 대형 카메라였던 홀스만이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촬영에 대한 진지함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면, 두 번째인 린호프는 작업 외에도 부모님의 기념사진이나 딸의 졸업사진 등을 담당할 정도로 그녀에게 더욱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독특한 디자인과 부족함 없는 기능으로 아직까지도 그녀에게 딱 맞는 최고의 필드 카메라지만, 이전 카메라들보다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있어 간혹 손목에 무리가 가기도 한다. 구입 이후부터 최근작인 <The Shining Things>까지 줄곧 사용되었다. 갖고 있는 몇 개 안 되는 카메라 중 단연 그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며 기대 이상의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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