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16
빵굽는 노릇한 내음이 풍기는 맛있는 문학, 고소한 아몬드 향과 시원한 솔잎향이 맡아지는 드로잉이 있다면 어떨까? 한남동에 자리한 카페 레지던시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벌이는 ‘키오스크 쿠키-잉’은 이런 엉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실험적인 콜렉티브 쇼이다.
에디터 | 이안나(anlee@jungle.co.kr)
자료제공ㅣ테이크아웃드로잉(www.takeoutdrawing.com, www.kit-toast.com)
테이크아웃드로잉은 한남동에서 유일하게 초록 잔디가 깔려있고 널찍한 통유리문이 손님을 반기는 카페이다. 언뜻 보기에는 여느 카페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이곳은 기획자, 작가, 파티쉐, 바리스타가 모인 대안적인 창작스튜디오이기도 하다. 이들은 작가를 두어 달 동안 카페에서 작업을 하게끔 만들기도 하고 한남동 인근에 거주하는 문화인들을 한데 모아 기가 막힌 전시를 열기도 한다. 여름 더위에 지친 이들을 카페로 불러 모으기 위해 시작한 7~8월의 전시는 이름만 들어도 배가 고파지는 ‘키오스크 쿠키-잉’이다. 전시는 소설이나 시에서 발췌한 몇 줄의 문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작가들의 상상력이 보태어져 카페라는 공간은 풍성해진다.
우선 기획자는 문학에서 맛, 향기, 냄새 등의 표현을 채집해 그의 ‘창의적인 요리사’들에게 넘긴다.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의 죽음』에서 건져진 싱싱한 감각의 재료들은 작가 심래정의 거침없는 손끝에서 축축하고 습기 찬 드로잉으로 요리된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속 달콤한 향기는 파티쉐의 오븐 안에서 독서용 간식으로 변모하고, 시인 김승희의 「레몬즙을 쥐어짜는 시간」의 레몬-타임은 ‘글래머러스 레몬타르트’로 구워진다. 이러한 ‘요리 드로잉’은 무더위에 지쳐 카페를 찾은 손님 혹은 전시를 보러 온 관객에게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되고, 뱃속 가득 문학의 에너지로 불어 넣어 더위와 갈증 배고픔까지 모두 잊게 만들어준다. 물론 관객 또한 스스로 요리사가 되어 카페 공간에 펼쳐진 드로잉과 텍스트, 키오스크를 맛있게 버무릴 수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전시 기획은 A’ Kiosk라고 불리며, 네 개의 카테고리 artist, around, acid, avec로 구성돼 있다. 우리의 삶은 사물을 통해 연결되고 기억된다는 전제 하에 이들은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사물을 주로 모은다. 지금까지는 주로 책이 수집되었지만, 작가 김을의 경우는 자신의 드로잉 북과 오브제 작업을 소개했으며, 작가 장박하는 자신이 추천한 책을 여러 사람이 낭송하는 미디어 작업을 보내주는 등 조금씩 다양한 형태의 키오스크가 구성되는 중이다. 광고나 케이블 방송을 통해 익히 알려진 셰프 에드워드 권은 얼마 전에 한남동 주민이 되면서, A’ Kiosk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한남동의 레스토랑 더 스파이스(The Spice)의 에드워드 권의 요리책과 유니폼, 명소가 된 꿀풀을 만든 아티스트 최정화의 배추 두 포기, 최근에는 디자이너 김보민과 젊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운영되는 꽃땅의 음악 리스트도 추가되면서 이들의 모임은 지역과 업종을 넘나들며 점점 넓어지고 있다. A’ Kiosk 중 최근에 새로 문을 연 Acid Kiosk는 말 그대로 ‘시큼한 키오스크’이다. 탈 경계적인 문화예술인을 소개하는 일환으로 첫 번째로 초대된 주재환은 현재 가장 열심히 읽고 있는 책 목록을 주었다.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의 내공과 삶과 사회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음악가 원일은 자신이 즐기는 존 케이지나 쇤베르그의 음악극 영상과 CD, 드로잉을 소개한다. 파트타임스위트는 최근에 발매된 앨범이 포함된 책과 책 속에 인용된 원본을 (제본된) 책을 함께 전시하여 풍부하게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A’ Kiosk는 단순한 사물의 진열장이 아닌 개인의 이야기와 경험이 스며든 의미 있는 사물의 집합체다. 이를 매개체로 다양한 참여자에 의해 키오스크는 계속 진화될 것이다. 그리고
<키오스크 쿠키-잉>
은 그 첫 번째 진화태다.
키오스크>
지금 전시 중인 작품 중 안규철 작가의 드로잉을 살짝 엿보았다. 작가가 들려주는 작품의 스토리는 마치 어릴 적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안규철의 키오스크)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작품은 시작됐어요. 이 소설에는 “달의 궁전”이란 중국 레스토랑이 등장해요.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세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달이란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데, 물질에 빠진 현대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애타게 찾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호기심이 생겼죠. 소설 속 달 사람들은 냄새를 먹고 詩가 곧 돈인 세상이라 슬몃 흥분이 되더라고요. 만약 우리가 시를 주고받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연이지만,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에서도 사과가 등장해요. 영화를 본 사람을 알겠지만 김용탁 시인(김용택 시인)과 미자가 주고받는 대화에서 사과라는 물질은 이미 존재하지 않잖아요. 어떻게 사과를 시적으로 음미하는지를 얘기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작품에 종기스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여행을 떠나게 만들었어요. 자신을 찾기 위한 탐험이지요. 작업은 ‘종기스-오딧세이’라고 해서 드로잉 설치인데 테이크아웃드로잉 1층에서 볼 수 있으니, 오셔서 보도록 하세요.”
시>
배부른 전시, 키오스크 쿠키-잉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새로운 공간 한남동에서 선보이는 그들의 첫 번째 쇼로, 한 달의 전시 기간 동안 선보인 특별 메뉴를 모아 드로잉 북으로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