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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유명’, ‘무명’한 ‘지금’, ‘여기’

2016-07-07

 


 

한때는 유명해지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어떤 일을 하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두려워졌다. 주목은 고사하고 의도치 않게 공개되는 나의 흔적들이 혹여나 비난의 대상이 될까 모든 행동들이 조심스러웠다. ‘유명한 무명’이라는 전시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땐 유명을 원하면서도 무명을 선호하는 것이 혼자만의 심리는 아닌 것 같아 반가웠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유명한 무명>은 화려한 라인업으로 또 한 번의 반가움을 선사했다. 디자이너 출신의 혹은 디자이너로서 활동 중인 ‘알만한’ 작가들이 여럿 참여한다는 소식에 ‘그래서 <유명한 무명>인가보다’ 했다. 이번 라인업에 대해 ‘국제갤러리가 그동안 선보였던 ‘유명’ 작가들과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작가들’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들은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알려진’ 작가들이다. 

 

이번 전시는 국제갤러리가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초빙 큐레이터 기획전으로 김성원 교수가 기획하고 작가들을 선택했다. 그가 전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유명한 무명’, 그리고 그가 선택한 작가들의 ‘유명한 무명’에 대한 생각들은 어떤 것일까. 

 

<유명한 무명> 전시 전경. 김영나 디자이너(좌)와 베리띵즈의 설치작업(우)

<유명한 무명> 전시 전경. 김영나 디자이너(좌)와 베리띵즈의 설치작업(우),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유명한 무명>은 유명을 향해 질주하는 현상과 함께 유명해지지 못하면 사라지는 것, 혹은 유명해지고 나면 곧장 사라져버릴 것에 대한 공포 등 유명에 대한 강박을 다루는 전시로 출현과 소멸, 등장과 은둔, 유명과 무명의 가치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김영나, 오민, 베리띵즈, EH, 김희천, 남화연, 이윤이 등 7인의 작가들은 디자인뿐 아니라 사진, 설치, 미디어 등의 매체를 통해 유명과 무명에 대한 생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펼친다. 

 

디자이너이면서 작가로 활동하는 김영나 디자이너는 일찍이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SET>는 자신의 디자인을 담은 도록 <SET>의 이미지를 개별적으로 선택, 벽화로 제작해 설치한 작업으로 지난해 뉴욕 두산갤러리에서 선보인 <SET>의 연작이다. 과거에 진행했던 커미션 디자인, 개인 작품, 자신이 기획한 전시 이미지 등을 재조합· 재배열하고 각 개체에서 발견되는 시각적 요소들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베리띵즈의 설치작품 <베리키피디아>

베리띵즈의 설치작품 <베리키피디아>,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모던 유토피아 리빙’을 콘셉트로 도시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온 베리띵즈는 그동안 펼쳐온 도시 생활 속 식물 이야기를 <베리키피디아>를 통해 선보인다. 2013년 온라인상에서 ‘베리키피디아 프로젝트’를 시작, 테크놀로지, 라이프스타일, 패션, 리빙, 디자인 등 광범위한 콘텐츠를 수집해온 베리띵즈는 최근에 들어 전시, 교육, 워크숍 등의 형태로 <베리키피디아>를 이어왔으며 ‘힐링’을 위한 소재로써의 식물이 아닌, 더 다양하고 넓은 의미를 지닌 존재로서의 식물을 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 진행해왔던 <베리키피디아>의 아카이빙을 오브제로 설치, 자연과 식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남화연 작가는 지난해 5월 후쿠시마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기형의 데이지 사진에 의해 식물의 ‘대화현상(fasciastion)’에 주목하게 됐다. 단순한 방사능 때문만이 아닌 호르몬 불균형, 물리적 손상, 바이러스 감염 등의 여러 원인에 의한 자연적인 현상인 ‘대화현상’은 아름답지만은 않은 거대한 꽃의 이미지를 생산한다. 자연적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형태인 이미지를 통해 자연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가는 지난해 선보인 영상작업 <욕망의 식물>과 함께 거대 백합 조각인 신작 <White Madonna>와 <Black Madonna>를 선보인다. 

 

남화연 작가의 거대 백합 조각작품(좌)과 오민 작가의 영상작업 <Daughter>(가운데), EH의 <Printed Matter HW> 시리즈(우).

남화연 작가의 거대 백합 조각작품(좌)과  오민 작가의 <Daughter>(가운데), EH의 <Printed Matter HW>  시리즈(우),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오민 작가는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서울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던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음악적 배경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적용하는 작가는 청각정보들을 기하학적 도형으로 전환, <ABA Video Score>와 <ABA Diagram>을 선보인다. ABA는 소나타 형식을 의미하는 작업 구조의 기본 골격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1악장을 디자인적,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통제를 통한 질서가 담긴 영상작업 <Daughter>(2011)와 <Banana>(2011) 등도 함께 전시된다. 

 

건축을 전공한 김희천 작가는 2015년 6월부터 1년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1,600개의 영상을 스크린세이버로 제작한 <Savior>를 선보인다. 문화예술기관에 취직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전시를 통해 데뷔한 작가는 두 자아에 동시에 로그인, 1년으로 시간을 제한하고 ‘정방형, 최장 15초’라는 당시 인스타그램의 조건을 바탕으로 틈틈이 영상을 업로드했다.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사라지는 스크린세이버처럼 작가의 작업은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작가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자 그의 모습이기도 했다. 사라지고 싶을 때 사라지기 위해 현실세계를 스크린 속으로 백업하는 비디오 작업 <Soulseek/Pegging/Air-twerking>(2015)의 스크린세이버이기도 한 <Savior>는 작품 속 작품으로 등장한다.

 

김희천 작가의 <Savior>

김희천 작가의 <Savior>, 2016 스크린세이버, 4시간 5분 52초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건축사진가 EH 역시 디자인을 전공,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12년 사진작가로 전향했다. 라인, 면, 조명만으로 모든 입체구조물을 평면화하는 작가는 서울 외곽 모텔 건물의 선을 장식하는 조명들을 포착한 시리즈 작업 <Model Line>(2012~2013)을 통해 도면화된 이미지로써의 모텔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에서 정지된 영상작업으로 모텔을 선보이는 그는 석회물이 증발하면서 남긴 침전물, 물의 끓는 형태가 담긴 흔적들을 담은 사진 작업 <Printed Matter HW> 시리즈 등을 함께 선보인다. 

 

EH의 <Model Line>

EH의 <Model Line>. 서울 외곽 모텔 건물의 선을 장식하는 조명들을 포착한 시리즈 작업이다.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이윤이 작가의 <재생 시간>

이윤이 작가가 텍스트와 이미지, 사운드를 혼합, 기억과 이야기를 펼친 <재생 시간>

 

 

문학을 전공한 이윤이 작가는 텍스트와 이미지, 사운드를 혼합해 자신의 기억과 이야기들을 펼쳐왔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설치 및 영상작품 <재생 시간>은 목재 하모니움에 얽힌 이야기다. 뉴욕의 스튜디오, 여주의 컨테이너, 여러 전시장 및 레지던시를 이동하며 퍼포먼스 오브제로, 프리마켓 빈티지 상품으로, 전시장 출입구로 기능했던 하모니움은 노동, 연주, 놀이이자 이 모든 것의 결합으로 작업의 완성을 위한 조건인 동시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유명한 무명>은 전시의 기획의도에서 언급된 유명에 대한 욕망, 무명에 대한 가치를 친절하게 드러내진 않지만 각기 다른 전공, 배경에서 작업을 펼치는 개성 있는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작가이면서 동시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작가들의 유명과 무명에 대한 생각들은 결국,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변화의 가능성을 수용하고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지금’, ‘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전시는 7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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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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