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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인클루시브 디자인을 아시나요?

2010-04-14


지난 3월 31일, 성남에 위치한 코리아디자인센터에서 '65+인클루시브 디자인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한국디자인진흥원과 주한영국문화원이 공동주최한 이번 세미나는 영국왕립예술학교 헬렌 함린 센터(Royal Collage of Art Helen hamlyn Centre)의 수석 연구원 줄리아 카심(Julia Cassim)과 와이어 디자인(Wire Design)의 존 코코란(John Corcoran) 대표가 강단에 올라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개념과 비전을 역설했다.

에디터 | 이상현(shlee@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아직까진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인클루시브 디자인’에 대한 국내 디자인계 일각의 관심은 이미 뜨거울 대로 뜨겁다. 빈 좌석을 찾아볼 수 없게 세미나 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만으로 그 열기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강연자로 나선 줄리아 카심은 먼저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세미나의 포문을 연다.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과 유사 개념으로서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의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제품과 건물에 한정해 북미에서 널리 사용되는 용어라면,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과 서비스 등의 디자인을 아우르는 보다 광의의 개념으로서 유럽 등지에서 활발한 논의와 활동이 전개된다고.


줄리아 카심은 지난 10년 간 진행해온 관련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사회적 맥락(Context) 안에서 대안을 찾아야 하는 점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단순히 새로운 기능을 고안하는 차원이 아니라 먼저 “관계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할 것”에 방점을 찍는다. 이를테면 잘못된 약품 사용으로 비롯된 여러 의료 사고를 개선하기 위해 엇비슷한 모양새의 패키지를 분별이 쉽도록 새롭게 디자인하거나 40여 년 동안 변하지 않은 채 사용되는 복잡한 트롤리를 편리하게 재편함으로써 심폐 소생술의 시간을 단축, 인명을 구하는 등의 사례들은 먼저 그 맥락을 이해했기에 가능한 대안이었다는 것. “사람들은 사용 설명서대로 물건을 쓰지 않는다. 물건을 사용하는 방식, 맥락,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영국과 독일의 진공청소기가 각각 투명과 반투명인 점(영국인들은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독일은 정반대다), 사라예보에 도로용 재떨이가 설치되는 점(사라예보는 건물 내 흡연이 전면 금지되어 옥외 흡연 인구가 많기 때문에 담배꽁초 쓰레기 발생량이 무척 많다) 등 그녀가 언급한 위의 사례들 역시, 디자인이 생활 패턴과 법규, 사람의 습관과 취향에 따라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대해 어렵지 않게 납득시킨다(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승용차 문의 파란색 스티로폼 역시 지극히 한국적 맥락의 디자인이라고 그녀는 언급했다). 따라서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를 알게 한다”는 말은 여러모로 곱씹을만하다.



이어 줄리아 카심은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크리에이티브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타자기는 맹인 여성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은 주류를 위한 혁신을 가능케 한다. 디자이너가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질문을 그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특정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이 창의력에 있어서는 제한을 준다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 이를테면 마돈나와 믹재거와 같이 청춘을 사는 노년층 일명 요요(YO-YO)족은 젊은 층보다 훨씬 경쟁력 있는 타깃이 될 수 있음을 역설시킨다. “인클루시브 디자인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두 번째 강연자인 존 코코란 역시 인클루시브 디자인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깬다. 트렌디한 그래픽 작업을 선보여온 와이어 디자인의 대표인 그는, 인클루시브 디자인을 가까이에서 찾는다. 그는 “색상과 서체, 정렬, 행간 등 기본적인 것에서조차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고 말하며 “뭔가를 빨리 인지시키는 것, 주목하게 하는 것, 차별화하는 것도 인클루시브 디자인”이라고 역설한다. 색맹 또는 색약인 사람들을 위해 컬러 사용에 주의하는 것에서부터 가독성을 높일 수 있도록 레이아웃을 조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존 코코란이 생각하는 인클루시브 디자인을 멀리서 찾지 않는다. 줄리아 카심에게 인클루시브 디자인을 공부했던 그가 발견한 ‘맥락’이었던 것. 전직 뮤지션이었다는 그는 “디자인이란 사람들이 삶을 완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명쾌한 말로 강연을 마무리한다. 줄리아 카심이 “이미 시작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출발해야 하고, 이는 물리적 다양성이 아니라 타인의 취향과 소망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라는 말과 통하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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