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1
어린이가 어른과 다른 것은 몸집만이 아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만의 세계가 있다. 어른과는 다른 생각에서 비롯되는 다른 움직임. 그래서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은 반드시 필요하다. 행동이 미숙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린이의 발달과 성장을 위해서는 상황과 목적에 맞는 디자인이 요구된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 | 금호미술관(www.kumhomuseum.com)
금호미술관에서는 국내 최초로 어린이 가구 디자인 전시 ‘big: 어린이와 디자인’이 열리고 있다. 피터 켈러(Peter Keler), 루이지 콜라니(Luigi Colani), 장 프루베(Jean Prouvé), 레나테 뮐러(Renate Müller) 등 국제적인 디자이너의 오리지널 의자, 테이블, 장난감 등 20세기 유럽 빈티지 어린이 가구 25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각 층별로 공간을 구성했다.
3층에서는 ‘유아용 놀이 가구’가 전시된다. 250여 점에 달하는 금호미술관의 20세기 유럽 어린이 빈티지 가구 컬렉션으로 만1세에서 5세를 위한 가구들은 놀면서 학습하고 성장하는 유아들의 놀이의 도구이자 학습의 도구다.
나나 디첼(Nana Ditzel)의 유아용 식사의자, 토넷(Thonet) 의자,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의자, 마르코 자누소(Marco Zanuso) & 리처드 자퍼(Richard Sapper)등이 디자인한 90여 점의 유아용 의자 및 가구는 유아용 가구의 기능적, 조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 카펫과 함께 모듈화된 판들을 자유롭게 조립해 가구로 만들 수 있는 모빌릭스(Mobilix), 퍼즐 장난감으로 유명한 엔조 마리(Enzo Mari)의 시소로 구현되는 대형 퍼즐과 함께 장난감 자동차, 수레, 흔들의자 등 유아의 신체발달을 돕는 움직이는 기능을 지닌 장난감들도 설치돼 있다.
20세기 빈티지 가구전시는 지하 1층으로 이어진다. 무대처럼 꾸며진 지하 1층 안쪽 공간에서는 상상력과 창의력 발달을 위해 디자인된 엔조 마리(Enzo Mari)의 소형 퍼즐, 장난감인 동시에 치료용으로도 활용되는 레나테 뮐러(Renate Muller)의 삼베 인형, 찰스와 레이 임즈(Charles and Ray Eames) 부부의 합판 코끼리 모형, 선명한 색과 견고함이 특징인 코 베르쥬(Ko Verzuu) 디자인을 선보이는 ADO사의 장난감 등 동물을 모티브로 한 장난감과 어린이 가구들이 전시된다.
어른용 가구도 볼 수 있다. 어른용과 어린이용이 함께 전시되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의자와 비슷한 디자인의 성인용 의자와 함께 전시되는 예술가 트리오 베르+크넬(Bär & Knell)의 유아용 의자 등이다.
바깥쪽 전시장에서는 역사의 흐름에 따른 아동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가구들이 전시돼 있다. 만6세에서 11세 어린이를 위한 학습용 가구들은 산업의 발전,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 변화, 의무교육제도 도입을 통한 가구의 발전 등, 다양한 요소에 따른 디자인 변화를 보여준다.
‘재료’도 가구의 디자인과 생산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무와 철로 이루어졌던 초기 학교 가구들은 대량생산에 적합한 스틸 파이프(tubular steel)와 알루미늄과 같은 주요 재료에 의해 1930년대부터 크게 변화했다.
폴리에스테르 섬유(polyester fibers)와 같은 합성수지와 합성섬유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1950년대에는 가구와 부품의 심미적 조형성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이 더욱 활발해졌다. 루이지 콜라니의 1970년대 디자인 작, 여닫이 상판을 갖춘 학습용 책걸상은 플라스틱의 도입 이후 새로워진 디자인의 조형적 시도를 보여준다.
2층에서는 국내 가구 디자이너 서현진, 양승진, kamkam, MAEZM, 하지훈, 황형신이 선보이는 어린이를 가구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각자의 조형 언어로 ‘어른과 어린이’의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에폭시를 이용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풍선 형태의 가구를 제작한 양승진, 렌티큘러 소재를 활용해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색을 경험시켜주는 가구를 만든 서현진, 섬유의 부드럽고 포근한 촉감을 활용해 어린이용 의자와 캐비닛을 만든 Kamkam, 어린이의 낙서를 연상시키는 자수가 놓인 천으로 생기와 온기를 전하는 가구를 만든 하지훈, 어른을 위해 디자인한 소품을 어린이용 가구로 변형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황형신, EVA를 이용해 물결 모양의 율동감이 있는 바닥 조형물을 설치하고 원형의 놀이가구를 제작한 MAEZM 등의 작품이 전시됐다.
기존의 가구들을 업사이클링해 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로 만든 설치작품도 눈에 띈다. 스틸 파이프와 합판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지닌 대학교 강의실의 학습용 의자들이 시소, 구름다리, 흔들의자, 철봉, 원형벤치 등 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로 새롭게 탄생했다.
임자혁 작가의 벽 드로잉 작업 <벽의 꼬리>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들과 연결된다. 2층 전시공간의 7개의 코너를 활용한 작업은 ‘벽, 이미지, 상상’ 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에서 출발한 것으로 작가는 코너를 서로 다른 면들의 겹친 지점으로 가정하고 가려진 나머지 부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도록 벽면을 디자인했다.
국내 작가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꾸민 놀이공간도 있다. 1층 라운지 공간은 공간디자인 그룹 힐긋의 설치 작업으로 볼풀로 꾸며졌다. 전시제목의 ‘big’이라는 입체적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는 이 공간을 아이들은 마음껏 누빌 수 있다. 양쪽 벽에는 이정민 작가의 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이 상영된다. 두 편의 영상 속에는 전시중인 가구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3층부터 지하 1층까지의 계단복도는 전시에서 하나의 큐브가 됐다. 박미나 작가는 3층부터 지하 1층까지의 12개의 면을 다양한 색을 가진 면으로 꾸몄다. RGB 기본 색상에서 파생된 12가지 색들은 돌아가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전시된 가구들과 조화를 이루며 또 다른 전시공간으로서의 계단복도를 보여준다.
아동과 교육, 인권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디자인의 역사를 함께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준다. 놀이, 성장과 발달, 교육 등 다양한 기능을 포함하는 어린이를 위한 가구처럼 다양한 디자인 이야기를 들려줄 ‘BIG: 어린이와 디자인’은 9월 11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