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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날것 - 날 것

타이포그래피서울 | 2016-05-25


 

타이포그래피는 오직 가독성이 유일무이한 목적이 되어야 할까? 개성 넘치는 디자인 조형성을 갖출 순 없을까? 이에 대한 답은 위트 넘치는 타이포그래피 전시,<Type Scape: 국내작가초대전 2016(1월 18일~3월 10일, 삼원페이퍼갤러리)>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초대 작가로 참가 중이며 전시 포스터 작업을 맡은 ‘스튜디오 dogs’의 권기영 디자이너를 만났다.

 

기사제공 | 타이포그래피서울

 


 

스튜디오 이름이 신선하달까(웃음), 어떻게 나온 이름인가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좋아해서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서 따왔는데 다들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바꿀까 생각 중이에요(웃음). 타란티노 감독을 좋아한다고 하면 스타일리시한 감각을 기대하기도 하는데 저는 B급 정서나 병 맛 코드를 좋아하거든요. 작업도 그런 면이 있고, 스스로 놀이처럼 하기도 하고요. 


본인의 작업 스타일은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벌써부터 내 작업은 이런 스타일이라고 얘기하진 못할 것 같아요. 그만큼 작업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보통은 평소에도 말장난을 많이 해요. 음악도 힙합을 좋아하는데 언어유희적인 측면이 있잖아요. 친구들과 놀 때나 작업을 할 때 말장난을 하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시각화하려고 해요. 모두 재미있게 느끼진 않겠지만 제 논리대로 되면 만족스럽고, 위트 있다고 봐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말장난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에서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말장난을 어떻게 작업에 연결하세요?

최근에 하고 있는 작업 하나를 보여드리자면 황푸하 씨의 정규 1집 앨범 디자인인데 타이틀이 ‘칼라가 없는 새벽’이에요. 생명과 삶과 죽음을 얘기하고 있어서 어떻게 풀어볼까 생각하다가 자연과 삶, 죽음의 경계에 선 노래라고 해석을 했어요. 자연을 '새', 경계를 '벽'으로 가져오고 칼라는 흑백으로 했죠. 그래서 ‘칼라가 없는-새-벽’이 됐는데 일단 시안으로 만들고 있어요. 서체도 새의 부리를 고려해서 ‘아리따부리체’를 썼어요. 생뚱맞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게 재미있더라고요. 


황푸하 정규1집, b컷, 2016

황푸하 정규1집, b컷, 2016

yellowmonsters cover rework, 2014

yellowmonsters cover rework, 2014


 

말장난 수준이 아닌데요. 언어에 대한 관심이 타이포그래피로 연결되기도 하나요?

대학 때부터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아직 부족하지만 어쨌든 작업을 할 땐 타이포그래피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어요. 지금 삼원갤러리에서 하고 있는 전시회 <Type Scape: 국내작가초대전 2016>의 오프닝 토크쇼가 있었어요. 참여 작가들과 대중이 함께 소통하는 시간이었는데 그때 제게 주어진 질문이 지극히 주관적인 디자이너가 선호하는 서체였어요. 저는 “다 다르다”고 얘기했거든요. 이상형은 시대나 상황,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다만 그것을 크게 아우르는 어떤 맥락이나 큰 취향, 틀은 있겠지요. 선호하는 서체가 따로 있진 않고 작업에 맞춰서 그때그때 선택해요. 예전엔 별로였던 것이 최근 좋아지거나 반대인 경우도 있고요. 

 

성수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드라마 <미생>의 모티브가 되었던 ‘잉창치배’(4년마다 열리는 바둑올림픽)의 주인공인 한국 바둑계의 살아 있는 전설 조훈현의 집이다. 극한의 정신력을 지닌 생각의 고수가 살던 곳을 작업실로 쓰는 기분은 어떨까? 공간에는 머물던 사람의 기가 모여 있기 마련일 터, 그래서일까? 그의 생각도 어쩐지 남달라 보인다.

 

아이디어, 리서치, 표현 방법 등 디자이너마다 어려움을 겪는 점이 다를 텐데 어떠세요?

음…. 아이디어는 막 뱉는 편이라서 그것 때문에 어렵진 않은 것 같아요. 아, 막 뱉는 게 뭔지 하나 보여드릴까요?(웃음) 아직은 시안이지만 의상디자인학과 졸업전시회 포스터인데 주제가 ‘긱(괴짜)’이거든요. 의상 디자인에서는 흔한 주제지만 촌스럽진 않았으면 하더라고요. 그래서 긱, 이니까 손톱으로 끼이익, 긁는 이미지를 생각했어요. 처음엔 동판에 포스터를 인쇄할까 싶었는데 제작도 어렵고 단가도 세서 그만뒀죠. 친구 손을 벽에 대고 사진 찍어서 작업했어요. 어떤 과정을 거치든 소통의 문제라고 보는데 제 눈엔 재미있어도 코드가 다르면 공감대 형성이 어렵잖아요. 결국엔 설득이죠.

 

주변에 다양한 사람들이 친구로 있는가 봐요.

네. 디자이너도 있지만 음악, 의상 등 창조적인 자기 작업을 하는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요. 저도 음악을 좋아해서 인디 락 밴드를 했었거든요. 중학생 때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드럼을 쳤는데 작은 데모 앨범도 내고 그랬어요. 밴드 활동을 같이 하던 멤버 중에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도 생기면서 저도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음악을 좋아하지만 취미 이상으로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밴드 활동 접고 디자인에만 집중했죠. 뒤에 빡빡머리 형 사진 보이죠?(웃음) 그 형이 보컬로 있는 밴드가 ‘문 댄서즈(Moon Dancers)’인데 첫 번째 정기공연을 한다고 해서 포스터를 만들어줬어요. 

 

thekoxx cover rework, 2014

thekoxx cover rework, 2014


 

‘문 댄서즈’​ 포스터는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셨나요?

정말 제 멋대로 했어요. 이름을 풀면 ‘달에서 춤추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잖아요. 락 밴드니까 굵직한 느낌이 나게 하고 싶어서, 두께감 있게 빈 공간이 없게끔 했어요. 로고타입을 먼저 레터링 하고 그걸 기반으로 다른 텍스트를 발전시켰죠. 평소엔 모듈화에 맞춰서 작업하고 시각 보정하는데 이번엔 자유롭게 레터링을 해봤어요. 일부러 균형을 깨면서 늘리기도 하고. 단순히 달을 이미지로 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발음이 같은 문(door)을 프레임으로 삼고 내용을 안에 넣었죠. 그런데 정작 그들은 사각 프레임이 문인지도 모를 것 같은데(웃음). 

 

디자이너로서 본인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예전엔 몇 가지 생각하던 것도 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시각보정에 집착을 느끼는 건 있어요. 어디 한 군데라도 자간 폭이 좁거나 넓으면 막 견디기 힘들고(웃음). 마이크로한 부분에 신경 쓰는 성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떨어진 것 같아요. 좀 더 크게 보려고 하긴 하는데 성향이 아주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아요. 제 취향 안에서 자유롭게 하되 지나치게 경직된 틀을 가지면 갇히게 되니까 깨어 있기 위해 공부해야죠. 

 

[좌] panic bottom rework, 2014 [우] panic seawithin rework, 2014

[좌] panic bottom rework, 2014 [우] panic seawithin rework, 2014

MDSZ Poster, 2015

MDSZ Poster, 2015

jot, 2013

jot, 2013

typescape poster, 2015

typescape poster, 2015


 

그의 작업에는 어딘가 손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 살아 있다. 날것은 보는 자의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미숙함이고 누군가에겐 가능성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다 보면 날개를 달기 마련. '날것'이 '날 것'이 되었을 때, 지금보다 넓고 깊고 높은 곳을 경험한 후, 그는 우리에게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주변에서 받는 피드백과 본인이 추구하는 성향이 잘 맞나요?

조금 괴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그래도 조금은 정제되어야 할 것 같아요. 작업을 보고 날것 느낌이 난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하는데 그게 꼭 나쁘다고 생각되진 않거든요. 취향과 감정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아까도 B급에 대한 애정이 있다고 말했지만 시안을 볼 때 개인적으로는 B안에 더 마음이 갈 때가 있어요. 시각적으로 뛰어나지 않고 누구나 쉽게 구현하고 작업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표현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면 작업하기도 해요.

 

생각이나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유연해 보여요.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일이나 사람이나, 세상에 전적으로 틀린 것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를 뿐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저 스스로도 확신이 생겨요. 지금 당장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답게, 내 식대로,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하고 있다고. 아직은 디자인 경력이 많지 않으니 할 말도 많지 않네요. 작업 자체는 재미있으니 더 겪어봐야 알 것 같아요.


Typescape poste b, 2015

Typescape poste b, 2015

가죽전, 2015

가죽전, 2015

kuid poster b, 2015

kuid poster b, 2015


 

본인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아는 모든 사람이 다 저한테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한 사람한테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보긴 어려운데 질문을 받으니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아버지에요. 아버지가 좀 유하시고 아저씨 개그 같은 말장난을 많이 하시거든요. 아버지 보면서 나도 둥글둥글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버지한테 저는 그냥 철없는 아들이지만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건 든든하게 지원해주셨고 많이 믿어주셨어요. 정말 감사드리고 최고라고 생각해요.

 

최근 성수동에 디자인 스튜디오가 많이 생긴 것 같은데 올 해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올해도 작년처럼 즐겁게 작업할 생각이에요. 전 제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데 게으른 게 꼭 나쁘다고 여기진 않거든요. 그래도 작년보다는 조금 더 부지런히 작업을 하고 싶어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고요. 가까운 곳에 겨울엔 토스트가 좋아-림파림파 등 좋은 작업을 하는 소규모 스튜디오들도 있으니 기회가 되면 전시도 같이 하면 좋겠고요. 더 많은 분들과 교류를 늘려가고 싶어요. 같이 만나서 밥 먹고 술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조만간 작업실에서 파티를 할 예정인데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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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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