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 2016-05-16
2001년부터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가 무려 103명이 목숨을 잃게 했다고 추궁받고 있는 전 한국 옥시레킷벤키저(2011년 유한회사로 전환 후 현재 레킷 벤키저 코리아) 사가 드디어 지난달 4월 29일 정식 대국민사과와 피해 보상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시중에 팔리고 있는 데톨 비누와 세제도 바로 레킷벤키저사의 오랜 클래식 브랜드 중 하나였음을 깨닫게 된 것은 최근. 그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데톨 비누향은 유아시절 런던에서 클 당시 유치원에 가면 늘 맡았던 물감과 크레파스의 냄새로 기억되어 있다. 누구에게는 죽음과 상실을 의미하는 고통의 냄새가 또 다른 누구에게는 순진무구했던 아동기 시절의 추억이라니…. 냄새의 세계는 모순과 아이러니란 말인가?
글 | 박진아 (디자인평론가·미술사가, jina@jinapark.net)
“향기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추억은 즐거웠던 옛날을 되돌이켜 준다.” 영국의 전설적인 정원사 고 탈라사 크루소(Thalassa Cruso)는 그녀의 저서 <모든 것에는 제철이 있다(To Everything There is a Season)>(1973년 출간)에서 썼다. 또 19~20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였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그 유명한 초장편 자전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1913~27년, 총 7권)에서 서술한 어린 시절 추억도 바로 냄새와 연관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어린 소년이던 프루스트는 집에 손님이 찾아오자 얼른 방에 가서 잠에 들라는 부모의 명령을 받았다. 늘 엄마로부터 잠자리 직전 받던 취침 전 뽀뽀까지 거부당한 어린 프루스트는 엄마의 관심을 빼앗겼다는 상실감과 질투로 심통이 났지만 곧 마들렌느라는 조개 모양의 작은 스폰지 케이크를 한 잔의 차에 적셔 먹었고 이 때 느꼈던 마들렌 케이크의 냄새, 맛, 감촉은 그 후 마냥 행복하고 유복했던 어린시절의 추억의 상징물로 응축되어 프루스트의 뇌리에 영원히 간직되었다는 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에피소드의 골자다.
시각과 청각은 타고난 감수성과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이른바 ‘지성적’인 감각이라고 여겨져 온 반면, 후각은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이라고 여겨졌다. 그런 한편, 프랑스의 전설적인 음식평론가 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 Savarin)은 “후각은 늘 탐색한다. 해로운 물질은 거의 언제나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고 써서 향기와 반대로 악취는 인간에게 원초적으로 해로운 것이라고 취급되었다. 특히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개인위생 수준이 개선된 근현대에 와서 냄새의 사회적 의미는 더 위축되었고 여간해서는 입에 담지 않는 터부가 되었다.
“냄새만큼 과거를 완전하게 돌이켜 주는 것도 없다”고 문호 블라디미르 나보코브는 썼다. 수많은 소설 속에 등장한 냄새에 대한 묘사는 실감나고 생생하게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풍겼다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냄새특유의 순간성과 재생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갈피 잡기 어려운 감각세계로 남아 있기도 하다.
그렇게 외면당하던 냄새와 인간의 후각이 최근들어 마케팅 업계와 제품 디자인이 유독 주목 받고 있다. 후각만큼 본능적으로 인간의 감성에 즉각적으로 호소하는 감각도 없다. 노골적으로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자로 하여금 은근하게 감성을 유도하는 법은 없을까?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 덕분에 현대인들을 시각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도록 만드는 요즘, 이른바 디지털 혼돈(digital chaos)이 초래한 시각적 과부하 상태(visual overload)로 표현되듯, 대중은 무분별해지고 식상해진 대중 시각 문화로부터 갈피 잡지 못한 채 피로에 허덕이고 있다. 그에 대한 대안이자 해결책으로써 보다 세련되고 보다 은근한 마케팅 수법으로써 향기 마케팅이 주목받는 이유다.
뉴욕 파슨스 뉴 스쿨에서는 이미 2010년에 석사과정에 향기 디자인 세미나 수업을 했다. 이어서 2013년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디자인 대학에서는 에이미 래드클리프(Amy Radcliffe)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느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씹는 순간 그 특유의 향에서 무의식 속에 깊이 파묻혀 있던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렸다는 소설 속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아서 ‘센토그라피(Scentography)’라는 프로젝트를 시도해 기억하고 다시 경험하고 싶은 냄새를 잡아 저장해 뒀다가 다시 경험할 수 있는 추억의 향기 포착기 프로토타입을 고안해 소개하기도 했다.
디자인계 보다 앞서서 미술계에서 냄새 감각을 예술적 창작과 접목시켜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본 전시회는 2013년 미국에서 처음 열렸다. 뉴욕 아트 앤 디자인 뮤지엄(Museum of Art and Design)은 ‘향기의 예술(The Art of the Scent, 1889~2012)’전(2012.11.20.~2013.3.3)에서 인간의 후각은 대뇌 변연계(limbic system)에서 처리되는 정보로 인간의 기억과 가장 밀접히 연관된 가장 본능적 감각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전시 주제로 삼아 기획된 전시다.
인간의 두뇌에 여러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이 향기 또는 냄새의 잠재력을 소비재로 보기 이전에 한 편의 순수한 예술적 매체로 실험해 본 이 전시를 통해서 냄새는 분명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영역을 자극하고 무의식 속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인 감각계임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지적인 사고를 유도하고 깊은 내용을 전달하거나 비평적 사고를 이끌어 내는데에는 가장 무능력한 감각 또한 후각임이 입증 되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일찍이 호텔업계에서는 컨퍼런스실, 비즈니스 미팅실, 객실, 리조트 등 장소와 목적에 따라 적합한 분위기 조성용 향기(ambient scenting)를 뿌려 고객을 환대하는 법을 활용해왔다. 삼성은 향수전문가 파스칼 고랑(Pascal Gaurin)의 컨설팅을 받아 특별 고안된 분위기 조성용 향기를 미국에 있는 스마트폰 매장에 뿌려서 방문객들이 브랜드로부터 깊이 인상 받고 기억하게 돌아가게끔 유도하는 고도의 향기 마케팅 전략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애버크롬비 앤 피치는 이 피복업체가 특수 개발한 향수향을 매장 주변에 뿌려 고객을 유혹하는 방법 외에도 여러 번 세탁해도 향수 냄새가 없어지지 않는 반영구 향기 T셔츠를 판매하기도 했다.
미국의 쇼핑몰이나 공항에 가면 의례 찾아볼 수 있는 시나본(Cinnabon) 시네먼 롤 빵 체인은 계피향이 가미된 구운 빵 냄새를 퍼뜨려서 고객들의 구매를 촉진하는 이른바 “향기 마케팅(scent marketing)”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가하면 스타벅스 커피 체인은 커피향만을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음식냄새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과거 팔던 구운 샌드위치를 메뉴에서 없앴다. 최근에는 미국의 은행들까지 특히 프라이빗 뱅킹 개인고객을 상대로 브랜드 신뢰감과 고급스러움을 주도록 은행만의 고유 디자이너 향기를 개발해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며 향기 마케팅 트렌드에 본격 합세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제 디자인계는 조명 디자인에 열광했다. 실내 공간 내에서 인공 빛으로 실내 분위기를 다양하게 조성하고 그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혁신적인 조명 디자인과 더불어서 색채로 인간의 심리상태와 정신건강을 조절해 주는 색채 테라피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러나 최근, 디자인계도 공간 연출과 향기를 접목시키는데 한창이다. 작년 파리 메종 에 오브제(Maison & Objet) 페어에서 영국 디자이너 톰 딕슨(Tom Dixon)이 실내용 향기를 앞서 선보였다.
작년 2015년판 밀라노 가구 박람회는 주로 실내장식용 가구와 조명에서 집중해 오던 관심사를 돌려 향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소재를 전문으로 하는 이탈리아 가구사 카르텔(Kartell)은 디자이너 페루쵸 라비아니(Ferrucio Laviani)와 스위스 향수 제조사 피르메니히(Firmenich)의 협력으로 ‘암브라 오이스터(AmbraOyster)’ 향기 양초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네덜란드 출신 스타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가 이끄는 디자인 회사 모오이(Moooi)는 럭셔리 호텔에 비치될 고급 화장품과 향기 시리즈를 소개했고, 덴마크에서 결정된 아웃 오브스탁(Outofstock) 디자인 컬렉티브는 세라믹 소재와 자동차 배기시스템 기술을 결합한 향기 디퓨저를 제안했다.
그같은 추세를 포착해 최근 국내에서도 향기를 이용한 제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은 경험 디자인(Experience Design)과 손잡고 소비자들에게 호소한다. 이미 힐링 트렌드와 결합해 향수, 향초, 디퓨저 생산과 판매 시장은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단순히 제품에 향기를 입혀서 부가적으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대중음악 콘서트나 공연, 심지어 전시회에서도 ‘향기 마케팅’을 가미하여 기획하는 추세다. 공연 공간 속에 콘텐츠와 연관된 향기를 방사하면 관객들은 콘텐츠에 더 몰입하여 실감나는 감상 경험을 느낀다는 이치를 활용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해외에서는 향긋한 향기뿐만 아니라 음식 냄새를 이용한 다소 엽기적인 냄새 마케팅도 실험되고 있다. 2013년 미국에서는 피자 냄새가 담긴 오 드 피자헛(Eau de Pizza Hut)을 내놓고 페이스북 마케팅을 시도했다. 이미 2008년 미국에서 불에 구운 고기 냄새가 살짝 풍기는 남성용 향수를 내놓은 버거킹 햄버거는 작년 2015년 4월1일 만우절 특별 광고 캠페인으로 일본 버거킹에 이 더 플레임 바이 BK(The Flame by BK) 향수를 소개해 음식냄새 향수 시장에 리트머스 테스트를 시도했다. 바로 최근인 5월초, 홍콩 KFC는 치킨 맛과 냄새가 나는 먹을 수 있는 매니큐어를 KFC 매장에서 판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오길비 앤 메이더 광고사가 기획한 KFC 매니큐어는 오리지널 맛과 매운양념맛 두 가지를 우선 판매할 계획이다.
냄새로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하여 매출을 올린다? 실제로 현재 구미권 몰에서는 인공 빵과자 냄새, 커피향, 음식 냄새를 매장 주변에 강하게 방사하는 향기 마케팅으로 무려 300% 가량의 매출증가 효과를 보고 있다고 보고된다. 인간 두뇌의 가장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려 매출을 올리는 이 마케팅 방식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속임수 혹은 조작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향기 마케팅의 성공 포인트다. 매장에서 풍겨나오는 갖가지 향이 주는 온갖 쾌감과 추억까지도 소비자는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시대로 우리는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향기 마케팅을 활용하고 싶어하는 업체는 어떤 상품을 판매할 것인가와 어떤 향기를 활용해 매출 성공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노하우가 필요함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 사이 소비자들은 향기와 냄새가 이끄는 과거의 추억이나 심리적 평안을 안겨주는 공간과 제품을 향해 후각을 한껏 북돋울 것이다. 전설적인 골프선수 벤 호건(Ben Hogan)이 말했듯 ”인생이라는 페어웨이를 걸을 때는 장미 향기를 느껴라. 인생의 페어웨어이는 단 한 번밖에 플레이할 수 있는 곳이므로.” 그리고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고 깊숙한 추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향기는 바로 다름 아닌 자연에서 옴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