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사진 | 2016-05-16
2012년 공직에서 은퇴 후 사진가의 길을 다시 걷고 있는 박신흥.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은 그의 사진에는 따뜻함과 유머러스함이 깃들어 있다. 그런 그와 함께 했던 카메라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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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해상도를 자랑하는, 니콘 F2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콘탁스 3a를 사용하다가 처음 바꾼 카메라다. 초점 맞추기가 쉽고, 헤드를 열면 중 형카메라처럼 로우&하이 앵글로 촬영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물론 렌즈도 교환할 수 있다. 40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날카로운 해상도를 자랑한다.
두 남자가 속옷 차림으로 탁구를 치는 장면을 포착한 작품 <이열치열>은 작가가 싱가포르에 근무할 때 촬영한 것이다. 속옷만 입고 있어도,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도 소용이 없을 만큼 더위에 시달리던 당시, 고육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탁구였다. 열을 열로써 다스린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싱가포르엔 탁구장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는 식탁 위에 카세트테이프를 네트로 세워 놓고 탁구를 쳤다.
그들은 과연 더위를 이겼을까? 사진 뒤편, 뜨거운 열을 내뿜는 밥솥이 그 해답이다. 사진 속 뒷모습 주인공은 작가의 첫째 아들이고, 라켓을 든 소년은 둘째다.
수동 기능이 많아 ‘야생마’로 불리다, 파나소닉 DMC-LC5
콤팩트하지만 하이엔드로 분류되는 전문가용 카메라다. 바디는 파나소닉에서, 렌즈는 라이카에서 만들었다. 수동 기능이 많아서 ‘야생마’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아마추어는 다루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신흥 작가에겐 익숙했다. 필름카메라를 사용했던 경험 덕분이었다. 접이식 후드가 장착되어 있어 밝은 대낮에도 LCD화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독특했다.
분홍 톱을 입은 금발의 여성과 그 옆으로 지나가는 차를 함께 포착한 작품인 <시선의 끝>은 스페인 출장 중 알함브라 궁전 앞에서 촬영한 것이다. 처음엔 분홍색과 금발의 조화가 이국적이어서 셔터를 눌렀는데, 후에 촬영한 사진을 보고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차 안에 있는 남성 둘의 시선이 일제히 여성을 향해 있었던 것. 그들의 시선이 머무른 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판단은 자유다.
뛰어난 순간포착 실력, 후지필름 X-T1
필름카메라에 익숙한 작가에게 딱 어울리는 디지털카메라다. 수동기능이 많고, 카메라 조작부위가 밖으로 노출되어 있다. 덕분에 노출 오버와 부족, 셔터스피드, 감도 등을 일일이 설정 메뉴로 조절할 필요도 없다.
어느 날 카메라를 들고 요세미티 공원을 걷던 작가는 회상에 잠긴 백발 할머니를 발견했다.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머릿결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자가 달려들더니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허겁지겁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눌렀다. 이때 탄생한 사진이 <회상>이다.
사진을 보면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남자가 청년인지 노인인지 알 수 없지만, 마치 무심한 여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분명 우연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사진인데 필연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