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9
아파트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항상 그 한계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꽉 막힌 공간, 확보되지 않은 천장고는 우리의 시야에 언제나 엉성하게 걸쳐있고 숨통을 막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공간을 가로막은 기둥, 틀에 잡힌 공간구획 그 안에서 디자이너가 친구인 건축가가 살게될 주거공간의 탈바꿈을 시도했다. 건축가를 위해 변화시킨 주거공간 디자인, 디자이너의 작업노트를 넌지시 들춰본다.
NOTE #들어가기: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깊숙이 그 사람의 삶을 듣고, 그 삶 그대로를 공간에 녹여야 한다. 다행히도 클라이언트는, 나의 대학교 동기다.
그의 성향, 삶과 꿈, 공간에 대한 로망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집을 설계할 때, 집을 가장 그(클라이언트)답게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이자 원칙으로 삼는다. 집은 곧 그 사람이다. 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을 잘 알 수 있다. 누군가 이 집을 방문했을 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친구 부부의 삶과 꿈들을 알아가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온전히 그 부부의 삶을 담아주고자, 3주간의 설계 기간 동안, 10번 이상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 공간에 대한 바람을 들었다.
‘답답하지 않고, 넓게 보이는 것’, ‘일상과 일탈이 공존하는 공간’, ‘외출 후 욕실에 들어가지 않아도 바로 씻을 수 있는 세면, 세족 공간’ 크게 이 세 가지를 공간에 풀어주길 요청했다.
먼저 ‘일상’과 ‘일탈’의 공존은 클라이언트가 첫 집을 맞이한 후 가진 가장 큰 바람이었다. 평범한 일상의 기반이 되어주는 집인 동시에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 ‘물’을 주요 매체로 사용했다.
욕조가 있는 데크 공간은 이 같은 사용자를 배려한 디자인 아이디어다. 평소에는 여느 거실처럼 누워서 TV를 보거나, 걸터앉아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는 일상적인 공간으로 활용한다.
몸이 나른해진 어느 날 욕조에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 데크는 바로 자쿠지로 변한다. 마치 일본의 료칸이나 휴양지 부티크 호텔에 있을 법한 반외부 욕조가 되는 것. 특히 몸이 꽁꽁 얼만큼 추운 날,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들어와 큰 창에 면한 히노끼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몸을 푹 담글 때, 따스함이 몸을 타고 오르는 느낌, 거기에 시원한 맥주 한잔! 상상만 해도 짜릿한 일상 속 일탈이다.
NOTE #시공일기1 : 변화의 첫 시작
지금 이 아파트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다. 거주자의 시선은 금새 벽에 가로막혀 답답하게 느끼기 일쑤다. 특별할 것 없는 소형 아파트. 이 공간이 주는 답답함은 오죽할까? 이를 없애기 위해 첫 단추를 끼는 일은, 이를 정리하는 것, 바로 대대적인 철거작업에 들어갔다.
노후된 아파트는 단열과 시설 보수만으로도 큰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친구로서 그의 자금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금 사정에 맞춰진 현실적인 설계는 그들의 살고 싶은 집의 바람과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었다.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이윤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집을 친구에게 주는 결혼 선물이라 생각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디자인 설계를 마치고 나서도 시공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비용은 인건비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디테일을 최대한 쉽게 풀고, 자재의 손실과 공정을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결심했다.
NOTE #시공일기2: 어려움에 봉착, 하지만 얻게 된 만족스러움
실내건축은 공정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다. 앞 단계에서의 공정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뒷부분의 공정에서 발버둥을 쳐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불변의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하나하나의 공정에 타협은 없어야 했다. 아쉬움과 후회를 남기지 말자 다짐하며, 오래된 집이 주는 공정 과정에서 전달받은 끔찍한 선물들을 기쁘게 맞았다.
25년 된 벽에 굳게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벽지, 이미 도장한 천장에서 베어 나오는 누런 얼룩, 바로 옆에서 연주하는 듯 고스란히 들려오는 옆집의 피아노 소리, 사용해야 할 곳에 설치되지 않은 콘센트, 새롭게 끌어와 입선해야 하는 인터넷과 TV, 건드리면 바로 부서지는 노후화된 설비 배관 그리고 안방 천장, 바닥과 벽의 엄청난 곰팡이, 장을 바로 설치할 수 없는 비뚤어진 바닥과 벽체 등, 그냥 쓸 수 있을 것 같이 판단되었던 기본 구조들 대부분을 공을 들여 다시 만들고 칠해야만 했다.
사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답답하지 않고 넓게 보이도록’ 공간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공간은 정말 비좁다. 사용감은 최대한 넓도록 반면 전체 디자인 톤을 맞추면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문의 손잡이, 수건 걸이 등 공간에 들어가는 모든 액세서리와 콘센트, 스위치 등의 선택을 고심했다.
집안 구석구석, 처음부터 끝까지 소홀함 없이 디자이너의 세세한 손길을 닿은 공간으로 변화를 준 것이다.
NOTE #마무리: 공간을 살리고, 살아보니
흠 잡을 때 없는 마감선과, 생활패턴을 그대로 읽고 연결된 공간의 동선, 부부가 소통할 수있는 공간들, 눈을 뗄 수 없는 깔끔한 주방, 가벽이 세워지지 않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선이 노출되지 않는 점, 부부의 스타일을 반영한 드레스 룸, 답답하지 않은 시선 등 이곳의 사용자인 부부는 생활 속 세밀한 부분까지 만족스러움을 전했다. 프로젝트의 규모와 상관없이, 수많은 공간 설계에 대한 생각들이 오고 갔고, 이 같은 사용자를 위한 사전 인터뷰가 디자인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획일화된 공간, 결국 살아있어도 죽어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공간은 디자인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삶을 찾았다. 지금 우리 집안에도 자신만의 순환동선을 만들어 보자. 사용자의 의지를 담은 소통은 결국 시각적 동선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열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