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4
우리는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다. 무엇이 더 앞서는 것인지 그 순서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먹기 위해 살든 살기 위해 먹든, 중요한 것은 이 안에 우리의 삶이 있다는 거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 | 서울시립미술관(sema.seoul.go.kr)
과거 사람들은 배 채울 걱정을 했고 요즘 사람들은 메뉴를 걱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잘 먹고 사는’ 모습을 드러내고 맛 집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며 특별한 음식을 만들기 위한 한두 가지 정도의 레시피는 기본으로 숙지하고 있다. 잘 먹고 살기 위한 이러한 노력들은 분투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과거에도 가진 자들은 더 잘 먹기 위한 고민을 했을 테고 지금도 끼니 해결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러한 근심은 모두 ‘먹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잘 먹고 살기위해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음식을 먹기까지의 과정은 중요하다. 식재료의 발견, 요리법의 발달 등 ‘먹는 것’과 관련된 음식의 역사는 우리가 더 특별한 음식을 원하게 된 현재에 대한 배경은 물론 문화의 발달, 사회의 변화 등을 포괄하는 인류의 역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먹는다는 것은, 요리를 하고 먹고 맛을 보며 즐기고 사는, 우리의 삶 그 자체다. 그 가운데에 있는 도구는 다양한 존재방식으로 먹는 행위를 가능케 한다. 음식의 종류, 목적, 장소와 사용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도구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디자인되기도 했으며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별별수저(別別匙箸, Eating Tools)’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우리가 ‘먹고’, ‘사는’ 삶과 깊은 연관이 있는 전시다. 윌리엄 모리스의 ‘삶 속의 예술, 일상과 예술의 통합’에 대한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별의별 수저를 모아 선보이면서 그 안에 담긴 먹는 도구(Eating Tools) 그 이상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뜻하지만 ‘별별수저’의 ‘수저’는 먹기 위한 도구를 대표하고 있다. 여기에는 포크와 나이프도 물론 포함된다.
수저에 대한 별의별 이야기를 하는 만큼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했다. 총 32인의 작가들은 공예, 디자인, 영상, 설치, 조각, 회화 등 자신만의 표현방식으로 식도구와 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전시는 모두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사람’, ‘만듦’, ‘멋’, ‘씀’, ‘삶’이라는 구성은 수저에 대한 사유를 순환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각 섹션에서는 비슷한 형식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전시되기도 하고 유사한 형태의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섹션은 나뉘어 있지만 각각의 작품들은 매우 넓고 다채로운 시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전시는 ‘사람’으로 시작된다. 수저의 자아성찰과 존재의 이야기가 ‘수저’라는 도구를 만들어낸 사람에 의해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먹어야 살고 또 누구나가 먹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음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모두에게 같은 식도구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에서 선보이는 ‘수저’들은 사람의 욕망을 반영한다. 수저를 주제로 한 설치작품들에서는 권력을 포함, 무언가를 탐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도 반영돼 있다.
두 번째 섹션은 ‘만듦’이다. 말 그대로 도구로서의 수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것으로 기능을 담보한 제작에 관한 집요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수저 제작을 위해 사용됐던 수저 제작 좌대, 전통방식으로 제작된 수저, 다양한 모양과 목적으로 제작된 수저 등이 전시된다. 전통방식으로 수저를 제작해오고 있는 이형근 공방도 재현돼 있다. 이형근 씨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보유자로 전통 수저 제작에 대한 영상도 볼 수 있다.
‘멋’은 미적 대상화로서의 수저를 보여준다. 질료와 기법을 넘어서는 수저들은 예술의지에 의해 유희적으로 표현된 작품들이며 목적성이 뚜렷한 수저들은 이곳에서 미적으로 기능이 확대된다.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예술성과 감성을 ‘멋’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완성된 색동 수저집, 수저의 기능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형태의 작품들, 여러 작가들의 수저를 디스플레이 한 스타일링도 볼 수 있다. 먹을 때 느껴지는 여러 감각을 강화시키는 공감각 식기 컬렉션과 공감각 식기들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작품도 눈길을 끈다.
‘씀’에서는 일상에서 쓰이는 대상으로서의 수저와 쓰임에 대한 반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 음식을 만들고 그릇에 담고 먹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통해 근면함, 노력, 조화와 같은 삶의 자세에 대한 메시지도 전한다. ‘헬조선’이라는 말에 빗댄 ‘헬스푼’도 있다. 숟가락의 가운데엔 ‘복’이라는 말 대신 ‘헬’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마지막 섹션 ‘삶’에는 우리 삶과 함께하는 수저, 우리의 생계를 위한 도구로서의 수저가 있다. 밥상을 나르는 여인의 조각상이나 깨진 그릇의 파편과 수저가 놓인 밥상이 그려진 회화작품 등은 빈곤했던 시절, 배를 채우기 위해 사용됐던 도구로서의 수저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에는 수저를 만들기 위한 작가들의 작업책상과 작업도구들도 옮겨져 있다. 각종 재료들과 오브제들은 먹는 도구를 만드는 또 다른 도구들이다.
지금 우리는 과학적 발견, 문화의 혼성을 통해 발전하고 변화해온 수저를 사용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사용하는 수저와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에 대해, 사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먹고 즐기는 매 순간과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전시는 5월 15일까지 열리며 5월 7일에는 체험프로그램 ‘장인과 유기수저 만들기’도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