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7
패션트렌드가 발표되면 그에 맞춰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디자인의 옷을 선보이고 수많은 사람들은 새 디자인의 옷을 구입한다. 유행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야말로 ‘패피’가 되기 위한 첫걸음인 듯, 우리는 ‘트렌드’에 몸을 싣고 새 옷을 맞이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새로운 시즌이 다가오면 또 다시 트렌디한 옷을 찾아 나선다. 시즌은 한 해에 두 번 돌아오지만 이 두 시즌을 위해 생산되는 옷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헌 디자인이 된 새 옷들의 최후를.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새로운 트렌드로 디자인된 따끈따끈한 ‘신상’은 매장에 멋스럽게 진열된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한 옷들은 시간이 지나면 1차 아울렛으로 이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곳에서도 선택을 받지 못하면 2차 아울렛으로 또 한 번 옮겨진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선택받지 못한 채 3년차 재고가 되면 ‘화형식’이라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래코드(RE;CODE)는 이렇게 판매되지 못한 재고를 활용해 새로운 옷을 만드는 국내 최초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다. 코오롱 인더스트리의 브랜드로 코오롱의 여러 브랜드의 재고를 활용해 옷을 만든다. 래코드의 디자이너들은 ‘거꾸로’ 디자인을 한다. 선택받지 못한 옷들의 마지막 길 ‘화형식’에서 이들을 구한 래코드의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이 구한 옷들과 대화하면서 콘셉트를 잡고 디자인을 한다. 옷으로 옷을 만드는, 옷 살리는 디자이너 래코드의 김수진, 박선주 디자이너를 통해 업사이클링 패션 디자인에 대한 모든 것을 들어보았다.
업사이클링 패션디자인, 일반적인 패션디자인과 어떻게 다른가?
업사이클링 디자인은 다 만들어진 옷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원단을 재단해서 만드는 일반 옷의 디자인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일반적인 디자인의 경우, 원단을 소재로 하고 원단을 재단하면서 디자인을 구현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옷에서부터 출발한다. 소비자한테 선택되어지지 못한 새 옷, 3년차 재고를 활용해서 그것을 재료로 쓴다. 해체를 하면서 디자인을 구상한다, 약간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옷을 해체하면서 본연의 옷이 가지고 있는 디테일, 즉 심지나 소매라인, 재킷 도련라인 등이 살아있는 디자인이 탄생하게 된다. 2차 아울렛인 코오롱 세이브프라자에서 3년차 재고를 셀렉하는 과정에서부터 디자인이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해체 작업이 필수적 요소인데 디자인에 따라 해체부위 및 해체 수위가 결정된다. 3년차 재고 셀렉-해체-디자인-패턴제작-샘플제작-품평회-디자인수정-패턴수정-제품생산-매장출고의 과정을 거쳐 제품이 탄생한다.
업사이클링 디자인, 어렵지 않나?
래코드의 디자인은 디자인을 하는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다. 일반 디자이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우리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일 래코드를 떠나야 한다면 어떤 브랜드에서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일반 브랜드에서는 디자인하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래코드에서는 매우 다양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디자인하는 자체가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고민이 많이 되는 부분이 있을 뿐이지 어려운 건 없다.
변수는 많다. 국내에는 매장이 한 곳이지만 수출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우리 옷은 많이 만들 수가 없다. 재고가 10벌밖에 없으면 10벌밖에 만들 수가 없는데 그 옷들이 모두 수출되면 국내에서 진행할 수 있는 수량이 없다. 그럴 경우엔 그러한 스타일을 채우기 위해 또 비슷한 디자인을 해야 한다. MD가 재킷 몇 벌, 원피스 몇 벌, 팬츠 몇 벌, 이런 식으로 스타일 구성을 하는데 그것을 충실히 따르려고 하지만 재고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상의가 부족하거나 하의가 부족한 경우 등이 생긴다. 그렇다고 스타일을 채우기 위해 예쁘지 않은 디자인을 할 수는 없고. 그런 변수들이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지만 지금은 탄력적으로 받아들인다.
가장 많이 나오는 제품은 몇 장이나 되나?
최대 20장. 처음에는 3~5장 정도였다. 정말 리미티드다. 20장 넘는 옷이 거의 없다. 샘플을 준비해서 해외 트레이드 쇼에 나가면 브랜드를 홍보하고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수주를 받는데 그 양을 감당하지 못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20장을 원하지만 15장 밖에 줄 수 없는 경우. 그럴 땐 5장에 대해 캔슬 요청을 하거나 그들이 받아들일 경우엔 비슷한 디자인으로 채우기도 한다. 재고를 활용해서 옷을 만드는 브랜드의 콘셉트를 설명하면 그들도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래코드 디자인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과 가장 어려운 부분은?
옷을 해체하면서 만나게 되는 뜻밖의 디테일이 가장 재미있다. 남성 재킷 안에 들어있는 계심이라고 불리는 심지라든지, 넥타이 안에 있는 심지 등 일반 디자이너들이 보지 못하는 요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새로운 소재에 대해 도전할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래코드에서 진행하고 있는 라인 중에는 버려지는 밀리터리 텐트, 백팩, 군복, 낙하산 등을 활용하는 밀리터리 라인과 작은 흠집이 있어도 안전상의 이유로 버려지게 되는 에어백, 카시트, 토목용 부직포 등을 활용한 인더스트리얼 라인이 있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소재들은 일반 디자이너들이 쉽게 다루지 않는 소재다. 이것들을 활용하는 자체가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고 디자인을 매우 흥미롭게 한다.
재미있는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되기도 한다. 옷 본연의 디테일과 히스토리를 살리면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디자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밀리터리나 인더스트리 라인에서 사용되는 소재들은 패션 시장에서는 새로운 소재들이기 때문에 각 소재의 특성을 연구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에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해야한다. 재료의 한계 속에서 디자인과 보유한 재료의 결합을 잘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가장 어렵다.
업사이클링 패션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을 땐 어땠나?
소재의 한계를 갖고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과연 디자인을 잘 풀어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동시에 설렘이 있었다. 업사이클링 패션 디자이너로 적응하는데 3~4개월은 걸린 것 같다. 처음엔 저 옷들로 어떻게 옷을 만들어야 할지, 디자인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뭔가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냥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 풀어내는 방법에 대해 훈련을 했던 것 같다. 디자이너의 생각 자체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 후에는 굉장히 재미있어졌다. 새로운 소재 및 디자인에 대한 욕심이 지금도 계속 생긴다.
업사이클링 디자인을 패션에 적용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업사이클링도 충분히 세련되고 트렌디할 수 있다. 패션적인 요소가 다소 약한 것은 한정적인 재료 혹은 부족한 인력 때문이라 여겨진다. 가격이 비싸지는 원인도 거기에 있다. 그렇다보니 소규모로 하는 분들이 일반 패션제품과의 경쟁에 있어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것 같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패션에서 에코, 업사이클링이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래코드 역시도 옷을 해체하는 것부터 전 과정이 손으로 이루어진다. 래코드의 옷은 안양 아뜰리에에서 만들어지는데 그곳에는 한 분의 패턴선생님, 두 분의 봉제선생님과 서브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곳에서 패킹, 라벨, 텍 작업까지 모두 이루어지는데 일일이 우리 손을 거친다. 옷을 해체하는 작업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옷을 어느 정도 알아야 어느 부분을 해체해야할지 안다. 바늘땀은 특히 굉장히 섬세하게 해체 작업을 해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일반 옷들은 디자인한 대로 패턴작업을 하면 되지만 래코드의 경우엔 옷으로 옷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 옷으로 이 옷을 잘 구현할 수 있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패턴선생님과 디자이너들이 같이 디자인을 해나가게 된다. 의견 조율을 통해 ‘절개선을 더 넣자’거나 ‘원단을 덧대자’ 하는 식으로 디자인 수정 작업이 이루어진다. 디자인 후 패턴선생님과 작업을 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옷을 디자인하는 과정과도 동일하지만 패턴선생님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되느냐에 대한 차이가 있다.
하나의 패턴이 나오기까지 패턴을 해체, 연구하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에서 옷 한 벌을 뚝딱 만들 시간에 우리는 하루 종일 시간을 투자해서 옷 한 벌을 겨우 만든다. 단가 상승요인도 여기에 있다. 그러다보니 소비자들에게 에코라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젊은 친구들, 특히 패션학도들이 우리 디자인을 참 좋아하지만 비싸니까 쉽게 사지 못한다는 의견도 많이 들었다. 사실 우리도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 선뜻 구매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이번 시즌에는 가격을 다운할 수 있는 라인을 선보일 계획이다.
래코드의 디자이너는 두 명인가?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둘이다. 매 시즌마다 한 두 명의 디자이너와 컬레버래이션을 한다. 약 10~20벌 정도 디자인하는 권한을 주고 같이 전개해 나간다.
독립 디자이너들과 컬레버래이션 많이 진행하는데 그 목적은?
1차적으로는 래코드 안에서 다양한 색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런칭 때부터 독립디자이너와 협업을 진행해왔다.
어떤 디자이너들이 선정되나?
초반에는 뉴라이징, 신진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래코드를 그들에게 알리고 또 그들을 알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 다음엔 중견, 전문 디자이너와 컬레버래이션 했다.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cov) 등 해외 유명 디자이너와도 작업한다.
협업과정에서 의견충돌은 없나?
각각의 독립디자이너들의 감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개성을 조율하는 작업은 결코 어려운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협업을 진행한 디자이너들 중에서는 래코드 입사 초반에 우리가 느꼈던 것처럼 래코드의 콘셉트를 다소 어렵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고 또 자신의 색깔에 충실한 디자인을 표현하다 보니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옷들이 탄생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디자이너들의 개성과 디자인 콘셉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율한다.
옷 말고도 여러 가지 아이템들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여러 제품들을 선보였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디자이너와 컬레버래이션해서 강아지 옷을 만들기도 했다. 유기견이 입양되기 전 예비 주인과의 만남을 연습할 수 있도록 예비 주인의 체취가 묻어있는 옷으로 강아지 옷을 만들어 새로운 주인을 만났을 때 좀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캠페인이었다. 홈웨어 제품들도 다양하다. 소매, 재킷 도련단 등으로 만들어진 쿠션도 있고 안대, 가방, 앞치마, 팔토시, 발토시 등도 있다.
디자인을 위해 얼마나 자주 재고를 뽑나?
크게는 일 년에 두 번, SS, FW때 한 번씩 물량을 뽑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럴 땐 필요에 따라 조심씩 뽑기도 한다. 디자이너의 디자인 감성도 중요하지만 트렌드도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일반 패션 디자인과 같이 트렌드 리서치를 많이 하고 그것을 미리 머릿속에 넣고 가면 뽑아야 할 재고 옷들이 눈에 보인다.
선택받지 못한 재고들은 어떻게 되나?
2차 아울렛인 안양 세이브프라자에 3년차 재고가 모이는데 그곳이 마지막 장소다. 거기엔 정말 무수히 많은 옷들이 있다. 코오롱 내부 브랜드가 20개가 넘는데 스포츠 브랜드부터 여성복, 남성복 브랜드까지 그곳에 다 있다. 많은 재고가 있을수록, 옷이 팔리지 않을수록 우리의 선택권이 많아지지만 좋아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어쨌든 그 많은 옷들 중에서 디자이너의 감성별로 어떤 디자인을 풀어낼지에 따라 제품을 선택한다. 그곳에서도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그 다음은 화형식이다.
코오롱의 그 많은 브랜드가 전부 다 소재가 되나?
그렇다. 코오롱 스포츠도 큰 부분이 되고, 남성복 브랜드에서 수트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그것들도 많이 활용된다. 사이즈가 작아서 팔리지 않는 것, 재킷은 팔렸는데 바지는 팔리지 않은 것, 사이즈가 엇박자로 맞지 않는 것들 모두를 활용해서 남성복을 여성복으로 만들기도 한다.
정말 최후는 화형식인가?
그렇다. 우리가 살리고 싶어도 칼라에 오염이 있거나 작은 흠집이 있거나, 한 벌씩 밖에 없어서 생산이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 그런 제품들이 총집합된다. 하나하나 쓸 만한 것이 많은데 우리도 어쩔 수 없다.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부자재나 라벨들이라도 다 떼서 끝까지 쓰려고 한다. 최종 소각 때 박스들이 수원 물류센터에 모이는데 소각되기 직전에는 모든 박스들을 일일이 열어서 디자인적 요소들을 구하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진다. 라벨들을 제거해 그것들을 디자인 요소로 사용하는데, 라벨뿐 아니라 단추도 모두 떼 온다. 각종 부자재, 테잎, 지퍼 같은 것들 중 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골라낸다. 작업실 팀원 모두가 면도날, 송곳 등을 들고 가서 직접 작업한다. 화형식 전 마지막 작업이다.
디자인에 대한 접근방식 자체가 다르다보니 옷을 보는 시각, 환경에 대한 관점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래코드에 오기 전엔 일반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5~6년 근무했다. 막내부터 경험을 쌓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새로운 것들이 필요해지는 시기가 온다. 우리도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친환경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옷으로 옷을 만든다는 래코드의 콘셉트 자체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래코드 디자이너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새로운 작업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매우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
그렇게 래코드 디자이너 생활을 하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경에 대해서는 그냥 ‘재활용을 잘하자’ 정도였는데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심각성을 깨달았다. 특히 패션 브랜드는 어떤 브랜드건 브랜드의 이미지 때문에 3년차 재고들을 모두 소각하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물론 코오롱 인더스트리의 일부 재고들은 자선단체에 기부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양이 소각된다. 그걸 알았을 때 디자이너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 ‘디자이너로서 정말 디자인을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할까.
하나의 디자인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비용과 시간, 인력이 필요하다. 디자이너가 선하나, 부자재 하나 잘못 선택하면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하고 옷이 안 팔리고 재고가 되는 거다. 그러한 상황을 줄여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자기반성을 했던 것 같다. 래코드에 있으면 다들 스스로 착해지는 것 같다고들 한다. 종이컵 대신 개인 컵을 사용하는 작은 일부터 마음으로 실천하게 된다. 그렇게 래코드가 우리를 변화시켰다. 래코드 옷을 디자인하면서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많은 현실을 보게 됐고 환경적인 부분까지 생각하게 되는 생활습관을 갖게 됐다.
평상시에는 어떤 옷을 주로 입나?
우리는 빈티지 러버(lover)들이다. 물론 래코드 옷을 매우 좋아하지만 사실 우리도 가격적인 면에서 부담을 느낄 때가 있다. 꼭 소장하고 싶은 디자인의 경우엔 래코드의 옷을 사지만 평소엔 빈티지 옷을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입는다. 빈티지 숍에 가면 우리가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의 옷을 운명적으로 만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에 의해 버려진 옷이지만 잘 만들어진 옷은 몇 십 년이 지나도 좋은 퀄리티가 그대로 남아있다. 빈티지 옷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참 많다. 부자재 하나, 실 하나를 정말 잘 쓰면 세월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다. 좋은 빈티지 옷들을 발견하고 그 옷들을 보면서 우리 래코드 옷이 누군가에 의해 버려지고, 또 누군가에 의해 빈티지 숍에서 발견됐을 때 ‘아 정말 래코드 잘 만들었다’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나라에서 반응이 가장 좋은가?
아시아권, 특히 홍콩이나 중국이다. 파리, 뉴욕, 베를린 등 유럽과 미주의 트렌드 쇼에도 나가지만 홍콩 쪽의 반응이 가장 좋다. 아무래도 한류의 영향도 작용하는 것 같다. 한국브랜드, 신진브랜드도 많이 진출해있다. 래코드 디자인에 아시아적인 느낌이 담겨있는 것 같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동양적인 감성을 추구하진 않지만 동양적인 룩킹이 있는 것 같다.
래코드의 친환경적인 요소 때문에 유럽 쪽 반응이 좋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들은 환경적인 측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바이어들은 브랜드 스토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디자인으로 래코드를 선택한다. 그들에게 우리 옷은 재고로 만들었고 소량만 생산한다는 설명을 옆에서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디자인이다. 트레이드 쇼에서는 수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부스를 설치해 자신들의 디자인을 선보이는데 그곳에서 승부의 요인은 철저하게 디자인이다. 유럽은 생각보다 신진 디자이너들의 진입장벽이 높다고 한다. 꾸준히 컨텍하고 알려야 그때부터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우리도 그곳에 진출한지 3, 4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약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환경적인 부분의 가치는 강연이나 포럼 등 공식적인 행사, 관련 단체들에 의해 높이 평가된다.
디자이너로서 래코드 디자인팀만의 특장점을 꼽는다면?
래코드라는 브랜드는 패션계에서는 유일무이한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중 이처럼 다양한 옷을 활용해서 만드는 브랜드는 없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크다. 래코드의 옷은 디자이너뿐 아니라 패턴 선생님, 봉제 장인 선생님, 함께 일하는 인턴 친구들까지 모두가 함께 만든다. 이 모든 구성원들이 래코드에 대해 갖고 있는 자부심은 대단하다.
래코드 디자인팀에서 근무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경험과 배움이다. 업사이클링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 말고도 문화예술활동을 통한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는 점이 즐겁다. 슬로푸드 페스티벌을 진행할 땐 젊은 농부들의 워크웨어를 만들기 위해 농부들을 인터뷰하러 농장에 가기도 했다. 명동성당 내 ‘나눔의 공간’에 비치할 책을 서치하거나, 지난겨울 진행했던 미혼모자시설 ‘마음자리’와 함께한 ‘발도르프 인형 판매금 기부 행사’ 등 다양한 사회적인 활동도 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대학교나 공공기관에서 업사이클링에 관해 강의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은 일반 기업의 디자인팀에서는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들이다. 인턴 친구들에게도 프로젝트 및 디자인에 대한 기회가 주어진다.
올해는 어떤 디자인을 선보이게 되나?
이번 SS시즌에는 앞치마를 좀 더 중점적으로, 직업군별로 다양하게 개발해 선보이게 된다. 밀리터리 소재를 활용해 앞치마를 중심으로 팔 보호대, 다리 보호대, 툴 백 등 기존 브랜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워크웨어를 전개할 예정이다. 액세서리 라인도 강화된다. 재고를 활용한 제품 라인 ‘hideout’과 에어백을 활용한 제품 라인 ‘blankof’ 등 액세서리 디자이너 브랜드 컬레버래이션 제품을 선보이게 된다. 신세계 백화점 데님 편집브랜드 블루핏과의 협업에서는 데님을 활용한 모던한 여성복 라인이 나올 예정이다. RE;collection이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래코드의 차별화된 리폼 프로젝트로 추억이 담긴 개인 소장 옷이 전혀 다른 새로운 옷으로 디자인되고 만들어지는 스토리가 담기게 된다. 아버지 양복부터 엄마의 한복, 데님 등 다양한 아이템이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소비자와 함께 공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