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1
우리는 넓은 세계를 꿈꾼다. 광활한 세상을 동경하는 것은 그곳을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탓일 수도 있겠지마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갈망의 대상이 되는 그곳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북유럽은 뭇 디자이너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디자인으로 디자인에 대한 열정뿐 아니라 삶에 대한 마음가짐까지도 닮고 싶게 하는 곳이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 | 조상우(sangwoo.cho.01@gmail.com)
디자이너 조상우 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토종 한국인이지만 현재 ‘가장 단순하고 아름다운 실용품’을 만든다는 스웨덴에서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필수코스처럼 여겨지는 ‘유학’이라는 과정 없이 어떻게 그곳의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을까. 그곳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그를 통해 스웨덴의 디자인에 대해 들어본다.
어떻게 스웨덴의 디자이너가 됐을까
대학원 졸업 후 삼성전자 무선 디자인 그룹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그는 약 9년간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소중한 경험들을 쌓을 수 있었다.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꿈을 갖고 확고한 목표를 세웠는데, ‘언젠가는 해외에서 활약하는 글로벌 디자이너가 되어 세계라는 더 큰 무대에서 일하겠다’는 것이었다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언어와 포트폴리오 등을 차근차근 준비했어요. 계획을 하고 그것을 이루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목표를 변경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노력했죠. 그리고 계획했던 다음 단계에 오르기 위해 유학을 준비했어요. 해외의 글로벌한 기업에 취업하려면 유학은 당연한 코스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유학을 준비하던 중 그는 스웨덴 소니 에릭슨(Sony Ericsson) 사로부터 입사제안을 받게 됐다. 이 시기에 그는 영국, 미국 등 여러 글로벌 회사에서도 스카웃 제의를 받았는데 이에 대한 비결로 자신의 ‘꾸준한 노력’을 꼽았다. 오랫동안 동경해오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종주국인 스웨덴을 선택한 그는 가족과 함께 스웨덴에 자리를 잡고 5년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지금 어디서, 어떤 디자인을 하나
그는 현재 스웨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IT기업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사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기반으로 이케아(IKEA), 뱅앤울프슨(Bang & Olufsen), 볼보(Volvo) 등의 글로벌 기업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IoT(Internet of Things) 관련 제품의 디자인 및 전략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 합류하기 전 그는 스웨덴 소니 에릭슨 UXC 디자인 센터와 소니 크리에이티브센터 노르딕 스튜디오에서 컬러/소재 시니어 디자이너로 근무한 바 있다.
첨단 분야에도 적용되는 북유럽의 디자인 철학
그간 그는 스마트폰, 웨어러블 제품 분야에서 디자인 경력을 쌓아왔고 현재는 IoT(Internet of Things) 제품이라는 첨단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이 모든 프로세스의 기반에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문화와 원형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북유럽 디자인 회사들은 이 부분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죠. 전 세계 다양한 국적의 디자이너들이 모여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임팩트있고 트렌디한 디자인보다는 깊이가 있고 스토리가 있는 이들의 디자인에 대한 접근방식을 배우기 위해서 인 것 같아요.”
디자이너들이 그곳을 동경하는 이유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그에게도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심플함과 실용성, 절제된 디자인을 추구하는 그곳 사람들의 디자인 문화는 그뿐 아니라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준다. 지금도 국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북유럽 디자인에 대해 그는 그곳에 살면서 생활 속에서 갖게 된 경험을 통해 그 이유를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회사 업무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북유럽의 디자인 문화를 경험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디자이너로서 늘 설레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카페, 레스토랑, 도서관 어디를 가더라도 그들의 디자인은 다양한 형태로 영감(Inspiration)을 준다고.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흥미로운 요소들은 실제 그의 디자인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디자인의 깊이와 특별한 가치는 이들의 디자인 문화이자 전 세계 다양한 국적의 디자이너들이 이곳에 모여드는 이유이기도 해요. 저희 팀만 해도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독일, 일본 등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이 모여 함께 일하고 있어요.”
기업문화,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
디자인 업무의 특성상 스웨덴에서도 일이 몰리거나 작업이 긴급할 때가 물론 있지만 개인 생활과 일의 완벽한 밸런스를 중요시하는 문화 덕분에 야근이나 주말 근무 등은 없다고 한다. 대신 업무 시간에는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일을 한다. 저녁시간은 온전히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
여름휴가가 길기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에서는 거의 한달 이상씩 쉬면서 재충전을 한다고 한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그는 직원에 대한, 직원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처음엔 ‘이렇게 쉬고 언제 일하나’ 할 정도로 휴가가 많게 느껴졌어요. 재택근무, 산후 휴가 등도 자유로워서 어떻게 이 시간들을 써야 할지 몰랐죠. 아마도 한국적인 성향 때문에 늘 무언가를 바쁘게 해야만 오히려 마음이 편했었던 것 같아요. 이젠 적응돼서 시간이 나면 가족들과 가까운 유럽의 나라들을 둘러보고 아이들과의 시간도 잘 보내면서 소중한 경험들을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다고 한다. 한국회사처럼 동료들 간의 끈끈한 정이 부족하다는 것. 개인적인 문화가 워낙 강하다보니 업무 후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려고 해도 2~3일 전에 미리 선약을 해야 할 정도라고.
그곳에서 발견한 북유럽디자인의 새로움
북유럽의 전반적인 사회분위기와 문화는 타 유럽국가에 비해 조금 더 여유롭고 안정적이며 한국에 잘 알려진 슬로우 라이프(Slow life)가 일상화돼 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철학과 문화는 바로 이 서두르지 않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특히 가구나 인테리어와 같은 디자인 분야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디테일과 완벽을 추구하는 이들의 문화에 기반하고 있어요.”
그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헤이(Hay)나 무토(Muuto), 이케아(IKEA), 루이스 폴센(Louise Poulsen) 등의 브랜드의 디자인도 스칸디나비아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꼽힐 수 있겠지만, 현지에서는 수십 년 된 빈티지 가구나 엔틱 제품들도 큰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했다. 또 그는 빈티지 마켓이나 엔틱 마켓 등이 매우 발달해있는 그곳의 사회분위기를 북유럽 디자인의 가치를 보존하는 요소로 들었다.
디자인을 대하는 그들의 생각
그는 그곳 사람들에게 디자인은 ‘생활의 한 부분’이라고 했다.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서 잘 몰라’ 하지 않아요. 누구나가 디자인과 친숙하고 또 잘 알고 있죠. 아마도 어릴 적부터 집에, 학교에, 회사에 디자이너들의 가구와 소품들이 자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퀄리티가 높은 뮤지엄과 갤러리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것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 같고요. 디자인을 보는 기본적인 안목이 발달돼있다고 할까요?”
그는 이러한 안목에 의해 디자인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가능해졌을 것이며 고가의 브랜드부터 중저가 제품까지 다양한 디자인이 골고루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이들의 시선은 화려하게 눈에 띄는 장식성보다는 실용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운 디자인을 향해 있어요.”
식지 않는 북유럽 디자인 열풍
전 세계적으로 식지 않는 북유럽 디자인 열풍,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그들만의 가치 있는 디자인 스토리’라 답했다. “유행을 쫓는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일상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이들만의 디자인적 언어가 스토리의 주축을 이루고 있어요. 이곳 스웨덴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보면 자연스러운 그들의 디자인 감각을 볼 수 있어요. 디자인 관련 직업을 갖지 않았어도 감각적인 구성, 색의 조화 등이 곳곳에 담겨있죠. 감탄을 할 때가 많아요.”
그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생활 속에서 비롯된 문화가 디자인에 대한 그들의 감각을 키웠고 국민들 모두에게 디자인적 감각을 선사했으며, 그들의 디자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디자인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이끌고 있다고 본다. “결국 젊은 신인 디자이너부터 그들을 이끌어주는 멘토 디자이너까지 모두가 이러한 선순환 구조의 틀 안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해가고 있는 셈이에요. 이러한 점이 북유럽 디자인의 강력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유럽 디자인은 OO다
북유럽 디자인을 그는 ‘가치(Value)’라 표현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관뿐 아니라 세월이 녹아들며 생겨나는 가치는 사용자의 스토리를 담게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엔틱 마켓에서 본 이름 모를 디자이너의 의자가 그렇더군요. 오래 전부터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진 나뭇결과 곳곳에 드러난 생활의 흔적들. 하지만 그 어느 의자보다도 편안하더군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의자를 사용했던 사람의 인생이 보이는 듯해요. 그러한 이야기가 디자인에 가치를 더해주기도 하죠.”
그는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양한 경험’을 꼽았다. “업무에 관한 것이어도 좋고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이어도 좋아요. 그 수많은 경험들이 쌓여 자신만의 스토리가 되고 직·간접적으로 디자인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가슴 벅찼던 기억 혹은 절망의 경험들조차도 지금의 여러분을 만들어 온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경험들도 가치 없는 시간은 없어요. 늘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경험들 속에서 의미를 찾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미래를 계획하세요. 목표한 것의 결과가 아닌, 그것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결국 자신만의 가치있는 스토리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