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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지구 사랑을 공정하게 나눠주는 오르그닷 숍(org.shop)

2009-06-30

연중무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의아할 정도로 한적한 골목 한켠에 자리잡은 오르그닷 숍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에씨컬(ethical) 컨셉트 숍이다. 환경과 공정무역의 원칙을 존중하며 만들어진 디자인제품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오르그닷 숍. 당신은 이곳을 찾는 것만으로도 지구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물론 공정무역을 응원할 수 있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로데오 거리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한산한 골목에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상점에 비하면 수수하다 싶은 오르그닷 숍.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앞마당에 꾸며진 작은 채소밭이다. 귀여운 나무팻말에는 배추, 딸기, 상추 따위의 이름이 적혀 있다. 사람 손 타기 쉬운 곳에 있는데다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경고문 하나 없는 것 치고는 상한 구석 하나 없이 먹음직스럽게 잘 자란 모습에 절로 비빔밥이 떠올라 군침이 돌 정도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ㄷ’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테이블 역할까지 소화하고 있는 프레임과 정글짐처럼 쌓여 있는 나무 상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멘트로 마감된 천장에는 푸릇푸릇한 이끼가 듬성듬성 자라 있다. ‘에씨컬 컨셉트 숍’과 묘하게 어울리기도, 어울리지 않기도 하는 이 인테리어들은 모두 ‘재활용’이다. 오르그닷 숍을 연 오르그닷의 이경재 이사는 “이 곳이 원래 카페였는데, 당시 인테리어를 그대로 둔 것뿐이에요. 바뀐 것이라면 디자인제품을 진열한 나무 상자를 들여 놓았다는 것 정도죠. 천장의 이끼가 인조여서 떼려고 했는데 지저분한 전선을 가리려고 붙여둔 것 같아서 그냥 뒀어요.”라며 인테리어의 비밀을 털어 놓는다. 숍 컨셉트에 맞게 인테리어를 다시 할 수야 있겠지만 기존의 인테리어 자재는 그대로 폐자재가 될 것이고, 언젠가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면 이 같은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르그닷 숍 인테리어의 가장 큰 특징은 ‘변화’다. 이곳을 준비하면서 세운 원칙 가운데 하나가 ‘기존 인테리어에 손대지 않기’였지만 말이다. 입점 제품이 계속 추가되거나 바뀌고 있어 그 때마다 인테리어도 함께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오르그닷 숍의 변화는 꼭 필요했고, 이를 주도하는 것은 다름아닌 나무 상자다. 나무 상자는 벽 크기에 맞게 쌓아 올리면 책장이 되고 큐브 퍼즐처럼 쌓으면 훌륭한 수납장이 되니 효과 만점이다. 또 인테리어가 바뀔 때마다 새로 문을 연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나무 상자 인테리어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현재 오그르닷 숍에는 친환경 소재를 이용한 에코 패브릭 ‘대지를 위한 바느질’과 공정무역을 거친 네팔 여성들의 수제품 ‘그루(g:ru)’, 폐현수막을 재활용하는 ‘터치포굿’,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메아리’와 ‘공장’의 디자인제품이 자신들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또 시끌벅적한 로데오 거리에서 여유를 찾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공정무역 커피 ‘아름다운 커피’와 수녀님과 지적 장애인들이 만드는 유기농 쿠키도 마련해 놓고 있다.

오르그닷 숍이 최선을 다해 자연을 아끼고 환경 문제를 고민하며 공정무역의 원칙을 존중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는 기업 ㈜오르그닷이 정성껏 준비한 곳이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생산과 소비, 자연과 사람의 아름다운 순환을 만들어가기 위해 설립된 곳이 오르그닷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르그닷 숍도 같은 길을 걷게 된 것. 이경재 이사는 오르그닷 숍이 짊어진 ‘친환경 & 공정무역의 허브’라는 책임에 대해 “친환경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데, 관련 제품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았어요. 또 인디 디자이너들이 대중 앞에 좀더 자주 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쉽지가 않아요. 인디 디자이너들이 마음 놓고 자신의 작품을 상품화하고, 판매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고 싶기도 했고요.”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오르그닷 숍과 함께 문을 연 오르그닷 갤러리는 전시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 않는 인디 디자이너들을 위해 누구나 전시를 열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단, 전시를 하려면 ‘웨이스트 제로(waste zero)’ 서약에 사인해야 한다. 전시 후 대량의 쓰레기가 만들어진다면 전시 작품이 아무리 친환경을 지향한다고 해도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 하지만 오르그닷의 도움을 받아 상품화의 기회도 잡을 수 있으니 과감히 도전해 볼만 하다.
오르그닷은 오르그닷 숍과 오르그닷 갤러리 외에 이경재 이사의 주도 아래 진행되는 에코 웨딩의 체계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무형광•무표백으로 만들어진 자체 의류제품 론칭도 앞두고 있다. 이외에 온라인 숍을 추진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 개인용 정원 같은 컨셉트의 앞마당 채소밭은 작지만 완벽한 농장을 분양하게 될 오르그닷 팜을 위한 실험실이자 교육장이라니, 머지 않아 오르그닷 팜의 론칭 소식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organic’, ‘organization’의 앞 세 글자 ‘org’에 점 하나를 붙여 무한한 확장성을 부여한 ‘org.’. 점 하나 붙였을 뿐인데, ‘님’이 ‘남’이 된 것처럼 전혀 다른 모습의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둘 다 놓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이경재 이사는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100%라는 숫자는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고집만 부릴 게 아니라 지금보다 10%, 5%만 나아진다고 해도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00%라는 숫자만 좇다가 지쳐 쓰러지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요? 친환경을 위한 기술은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까 꾸준히 시도하다 보면 99.9%까지 이룰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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