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07
건축물이 왜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지에 관한 물리적인 목적과 이유, 그 이상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땐 반드시 그 공간이 품고자 하는 이상(理想)과 존재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건축물은 비로소 ‘지어내는’ 대상에 그치지 않고 위치와 공간에 대한 의의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건축물에서 종종 감동을 받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관통해 전해지는 깊은 의미 때문이다. 굳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율 혹은 평화의 감정은 건축이 지닌 힘이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 | 국립현대미술관(www.mmca.go.kr)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가본 이라면 한번쯤 느껴보았을 웅장함은 건축물이 갖는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넓은 대지에 펼쳐진 건축물은 거대한 형체로 자리하고 있지만 ‘홀로’가 아닌 주변과 ‘함께’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건축가 김태수에 의해 지어졌다. 면적 6만㎡ 이상, 연면적 3만㎡ 이상의 대규모 부지. 산세에 위치한 건축물은 아담해 보이기까지 한다.
가까이 갈수록 신비로운 건축물
과천관의 특징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게 보이고 새롭게 느껴지는 점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미술관으로 가까워질수록 다양한 경험들을 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안정감과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움 등 다양한 감정을 동시에 선사하고자 했던 건축가의 의도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건축가 김태수에 의해 지어졌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나타나게 하는 것’을 건축이 선사하는 경험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여겼던 그는 산중에 있는 절들에서 이러한 요소를 찾았다. 멀리서 보았을 땐 능선 위에 미술관을 얹혀 놓았고 가까이 다가서면 각도가 틀려지고 보이는 모양이 달라지도록 설계했다.
미술관에 더 가깝게 다가서면 마침내 건물은 사라지고 담만 남게 된다. 미술관 입구 진입로로 들어서면 미술관이 하나의 형태로 나타나고 진입다리 앞에 서면 마침내 ‘시메트릭’하고 ‘파노라믹’하게 펼쳐지는 미술관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적인 요소가 가득한 과천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서구적인 이미지를 풍기는듯 하지만 곳곳에 한국적인 요소가 배어있다. ‘산세’라는 위치적 특성은 과천관의 한국적 요소와 건축적 특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물리적 요소라 할 수 있다.
건축가 김태수는 이곳에 미술관을 지으면서 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했다. 가장 크게는 자연, 즉 주변 산세와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스케일감을 살리는 동시에 스케일감을 줄이고자 한 것. 축대, 정자, 봉화 등을 비롯해 사찰건축의 도입부에 따른 시퀀스 변화 등을 배치에 활용한 공간변화와 연목, 다리, 계단, 벽 등의 요소를 통한 다양한 전개를 선보였다. 이러한 접근 감각을 통해 한국성을 표현한 그는 얼핏 보았을 때 서양의 성곽을 떠올리게 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과거의 다른 뮤지엄 건축들과는 다른, 진실된 한국적인 감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게 했다.
건축가 김태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자신만의 한국적인 감성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설계한 건축가 김태수의 전시가 개최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이전 30주년을 기념하는 첫 번째 특별전이자 현대미술작가시리즈 건축분야의 두 번째 전시로 건축가 김태수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전시에서는 그의 삶과 작품을 시기별로 조망된다. 전시의 ‘도입’부에서는 김태수 개인의 삶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면서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미술반 활동부터 서울대학교 재학시절의 활동과 출간했던 논문 및 잡지, 예일대학교 유학시절의 활동과 논문, 하트포드 사무실 시절의 모습 등을 보여준다.
‘1962-1970’은 그의 초기 미국시절이다. 예일대학교 시절과 사무소 개소 전 활동시기로 예일대학교 논문 프로젝트와 ‘이스트 강 뉴욕 주택’, ‘서울시 마스터 플랜’, ‘밴 블록 주택’ 등을 선보인다. 그의 한국의 정서, 한국적 풍경 등의 개인적인 유산은 예일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건축 ‘밴 블록 주택’을 통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여러 개인 주택들을 설계, 건축주의 개별적인 요구와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의 조화를 모색했다. 자신의 주택을 설계하면서 최소한의 크기와 기본적인 형태만으로도 좋은 건축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이를 토대로 설계 작업을 펼쳐나간다.
‘1970-1977’은 사무소 초기시절로 주택작업들을 주로하며 미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던 시기다. 자신만의 건축관을 찾던 이 시기에 그가 작업했던 ‘라입슨 주택’, ‘프레이 주택’, ‘퍼거슨 주택’, ‘버슨 주택’, ‘김태수 주택’ 등이 전시된다.
공공시설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1978-1982’에는 ‘미들버리 초등학교’, ‘미국 해군 잠수함 훈련시설’, ‘그로톤 노인 센터’ 등을 설계했다. ‘1983-1992’는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펼치고 대규모 프로젝트를 설계했던 시기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교보연수원’, ‘하트포드대학교 그레이센터’, ‘포터 학교 학생회관’ 등의 작품을 펼쳤다.
그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1992-2005’다. ‘LG화학기술연구원’, ‘금호미술관’, ‘튀니지 미국대사관’ 등 국내외의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2005-현재’에서는 ‘스탐포드 학교’, ‘콜트 식물원’, ‘불룸필드 유치원’, ‘센트럴 타워’ 등의 작품이 전시되며 최근 10년간의 다양한 작업들을 통해 그가 선보이는 좀 더 자유롭고 반복적인 형태의 리듬을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의 대표 건축 작품 중 하나로 별도의 형식으로 전시가 이루어진다.
부지분석과 진입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공간구성에 대한 건축가의 의도가 제대로 반영되고 표현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철저한 분석의 결과물’로 꼽힌다. 무엇보다 형태적으로만 드러나던 전통에 대한 표현에서 벗어나 나름의 접근 방식과 현대적인 해석으로 전통을 표현하고 공간과 조형성을 탐구했다는 점에 있어 가장 큰 건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단순함에 관한 이야기’라 말하는 그는 단순함과 간결함 속에서 건축의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 합리성과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건축물이 지역의 조건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작품을 설계한 그의 작품세계는 오는 6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5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