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양(tyna@jungle.co.kr) | 2015-10-21
“학생들의 논리(Head)를 이용한 교육 방법은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배운 것을 실천(Hands)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배운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상황에 응용하지 못할 것이다(Heart).” – 논문 〈Achieving Transformative Sustainability Learning: Engaging Head, Hands and Heart〉 중에서
‘이성(Head)’, ‘실용(Hands)’, ‘감성(Heart)’. 교육학에서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향상하는 방법론으로 거론되곤 하는 세 축이다. ‘이성’과 ‘감성’을 ‘실용’적으로 풀어내는 과정 자체가 창의력이고, 이 세 요소가 시너지 효과를 낼 때 창의라는 힘이 나온다는 생각. 디자인에 적용해도 어색함이 없을 논리는 2015년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졸업전시회 주제인 ‘H3: Head, Hands, Heart’의 유래가 됐다. “시인의 심장(heart)과 과학의 두뇌(head)와 화가의 안목(hand)으로”. 디자인적 관점으로 ‘H3’을 재해석한 선언적 글귀는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그 정체성을 천명한다.
에디터 | 나태양(tyna@jungle.co.kr)
세 가지 ‘H’라는 아이디어는 ‘H3’의 주제는 물론이고 아이덴티티와 공간 구성 등 전반적인 전시 기획의 뼈대를 세웠다. 백색의 키 컬러는 단순한 하양이 아닌 ‘빛’을 의미한다. ‘Head’, ‘Hands, ‘Heart’가 ‘H3’의 3요소라면, 빛에는 적(Red), 녹(Green), 청(Blue)라는 삼원색이 존재한다. 색채 심리학적으로 R, G, B 컬러는 각각 감성, 실용, 이성과 연결된다는 점에서도 ‘H3’의 주제와 고리를 갖는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검은 간이 벽에는 이러한 콘셉트를 비주얼적으로 표현한 영상이 프로젝션 되고 있다. 알파벳 ‘H’를 형상화하는 각각의 RGB 빛들은 x, y, z축을 회전하고, 이들이 서로 맞물리며 형성된 백색의 구는 ‘H3’의 창조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전시 포스터에 사용된 빛의 오브제는 본 영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둠에서 출발한 ‘H3’의 동선은 전시 중반부에 카페테리아를 등장시키며 R, G, B가 빛으로 확장되는 스토리를 완성한다. 휴식 공간이자 ‘H3’의 비주얼 아이덴티티 아카이빙 룸인 카페테리아는 기본적으로 환한 백색 공간이지만, 조명 등에 포인트 컬러로 RGB를 활용해 어둠 속에서 삼원색이 떠오르는 듯한 무드를 줬다. 카페테리아에서는 전시 포스터, 도록, 명함, 에코백, 리플렛, 초대장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H3’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기념 상품도 판매한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는 지난해까지 ‘암밴드’를 제작해왔지만, 올해는 보틀, 스티커, 와펜, 에코백 등 보다 실용적이고 재미있는 굿즈로 아이템의 범위를 넓혔다.
기획부터 만만치 않은 2015년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졸업전시는 총 82명의 학생들이 약 7개월에 걸쳐 고민하고 탐구해온 결과물을 세상에 내보내는 자리다. 산업디자인학과 내에서도 공간 디자인, 운송 디자인, 제품 디자인으로 세부전공이 분류되는 만큼, 분야를 기준으로 전시관을 구획하여 차례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다만 운송과 공간 부문에서는 학생 1인당 1작품을, 제품 부문에서는 2인 혹은 3인이 한 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전시의 출발선을 끊는 운송 디자인관에서는 벽에 걸린 패널에 렌더샷과 스케치를 전시하고, 전시대에는 모크업(Mockup)을 비치하는 방식으로 아이데이션(Ideation)부터 최종 모크업에 이르는 작업 프로세스 전반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예년 전시에서는 특정 차종에 치우치는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올해는 스포츠카와 세단을 비롯해 특수차량, 자동차 내부 인테리어 등 다양한 포지셔닝을 자랑한다. 이 다양성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비슷한 컬러나 분위기를 묶어 순서를 구성했다.
운송 디자인 파트에서는 전시장에 상주하며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정우진 학생은 ‘이탈리아 차 특유의 볼륨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60년대의 자동차 프로파일을 차용한 미래형 ‘마세라티(Maserat)’를 구상했다. 그는 마세라티 특유의 우아한 선을 극대화하고, 미래로 갈수록 가벼워지는 자동차의 특징을 부각하기 위해 레이어드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전형적인 모크업 대신 영상을 전시장에 올린 학생도 있었다. 1인 가구가 확산되면서 발생하게 될 주차 공간 부족 현상에 주목한 신혜인 학생은 ‘자동차로 생긴 문제는 자동차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동이나 운송에 국한되는 기존 자동차의 기능적 한계를 넘어, 집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리는 자동차의 확장된 기능을 보여주자는 것이 주된 아이디어. 그는 “인테리어에서 컬러 앤드 트림(Color&Trim)이 중요한 것처럼, 내 작품에서도 집의 특성에 맞춰 달라지는 컬러와 소재의 배리에이션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크업과 영상의 중간쯤 되는 3D 홀로그램을 직접 제작해 활용 튜토리얼을 제공하고자 했다”는 의도를 밝혔다.
운송 디자인관을 빠져나오면 카페테리아를 거쳐 공간 디자인관으로 넘어가게 된다. 최익서 교수가 지휘하는 A반과 이정교 교수를 필두로 한 B반으로 나뉘는 홍익대학교 공간 디자인 전공 전시는 한 마디로 ‘자유롭다’. 일반적으로 ‘공간 디자인’이라 하면 연상되는 인테리어나 상업공간 등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시도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 이는 공간의 실현 가능성에 연연하기보다, 그 안에 내재한 철학을 풀어서 보여주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커리큘럼 덕분이라고 한다. 그 영향으로 노자, 요한 하위징아(J. Huizinga), 빅토르 위고 등 동서양의 인문학적 소스를 활용한 작품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A반의 경우 작품마다 고유의 컬러와 로고를 매칭, 전시공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패널을 입구에 부착해 접근성을 높였다. 도시농업을 집안의 오브제로 활용해 미적 활동으로 고양하는 〈오색교감〉, 핀터레스트의 관심사를 범주화해 실제 공간에 구현하는 플랫폼-공간 결합 서비스 〈Pinterest +〉, ‘이어플러그’를 기본 구조체로 트램펄린, 정글짐, 놀이터 등으로 확장해가며 전기를 생산하는 적정기술 프로젝트 〈Plantarium〉, 종이접기에서 출발한 블록을 삼차원 공간으로 구축해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Homo Festivus〉 등이 그 주인공. 한편, B반 학생들은 수학적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한 그물망을 통해 도시의 사회관계를 고찰하거나(〈Dichotomous Net’ropolis〉), ‘잡 노마드(Job nomad)’라는 개념에 착안해 인간의 이동 본능에 부합하는 공간을 기획하기도 했다(〈Conomad〉). 보여주기 방식으로 모델이나 디스플레이 대신 영상을 선택, ‘꿈’ 주제로 한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하는 〈Dream Society 展_4〉도 제법 새롭다.
마지막으로 제품 디자인관은 개인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들로 북적거렸다. 실제로 구현되기 힘든 볼륨을 다루는 공간 디자인이 상상력을 자극한다면, 제품 디자인에는 실제 제품 사이즈와 동일한 모크업을 보고 만지는 재미가 있다. 전시대에는 작업마다 아이패드를 비치, 제품의 스토리와 사용법 등을 담은 시나리오 영상을 시각적 보조물로 활용하게끔 했다. 일반적으로 시나리오 북이나 제품 브로셔를 함께 제공하지만, 작품의 특성에 따라 페이퍼보다는 영상이나 디스플레이에 좀 더 힘을 싣기도 한다. 일부 작품은 어플리케이션 테스트 버전을 제공하거나, 앉아서 쉬어가도록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관람객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해당 섹션에서는 학생 수만큼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제품 디자인을 제시했다. 신체 증상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한 캡슐로 영양 음료를 제조하는 드링크 메이커 〈Cup of Drink〉, 스마트폰에 탑재된 센서와 동기화하여 아이들에게 풍부한 놀이 경험을 제공하는 스마트 인터랙티브 토이 〈Trac Trac〉, 무분별한 밀렵 행위로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을 캐릭터 상품화한 〈May Day〉, 다양한 텍스처를 활용해 시각장애인에게 ‘글씨를 만지는 즐거움’을 주는 촉각 서체 〈Braille Typeface〉, 코디 큐레이션이 상품 구매로 연결되는 날씨 기반 패션 커머스 어플리케이션 〈날씨 맵씨〉, 따뜻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으로 자전거 애호가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자전거 정비 공구 브랜드 〈JAC〉, 도시 속 사람들의 일상과 자세에 최적화된 4가지 앉기 경험을 제공하는 ‘휴식용 볼라드’ 디자인 〈Bollard Archetype〉 외 다수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의 김민욱 졸업전시회 준비위원장은 “무엇보다 학생들이 전시의 주체인 만큼 자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분위기 속에서 ‘H3’가 나오게 됐다”며 “특히 올해 전시에서는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각 세부전공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운송, 공간, 제품 디자인 반이 워낙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 성격에 맞게 공간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전시 준비 과정 및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이성, 감성, 실용의 삼원색이 디자인이라는 빛을 발하는 졸업전시회,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의 ‘H3’는 10월 19일(월)부터 24일(토)까지 개최된다. 홍익대학교 문헌관 4층 현대미술관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만나볼 수 있으며, 21일(목)에는 특별히 밤 9시까지 운영 시간을 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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