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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벽에 걸린 글씨가 말을 걸어온다 - 아름다운 한글 주련전

2009-09-29


정현종 시인이 자필로 적은 수제본 시진 『정현종 시선』은 이상하게도 시가 더 맛있게 읽힌다. 시선집 속 글자들은 휘적거리며 자리마다 앉아 있다. 노년의 시인이 몇 행 적다가 잠시 펜을 놓고 쉬다가를 이어가면서 쓴 흔적이 역력하다. 시마저도 나이가 지긋할 것 같은 이 작업을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근현대디자인박물관에서 연 ‘아름다운 한글 주련전’을 가야 한다. 문장마다 감정이 있는 통에 마치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그 말들을 모두 모아본다.

에디터 | 이안나(anlee@jungle.co.kr)


예로부터 명언명구(名言名句)는 사람들의 마음에 등불이었다. 불안하고 암담할 때마다 한 줄 글귀가 용기와 희망으로 바뀐 일들은 무수히 많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시나 인생의 지침이 되는 경구를 나무판에 새기거나 종이에 써서 늘 바라볼 수 있는 곳에 걸어 두는 일이 많았다. 이를 ‘주련’이라고 하는데 ‘시구를 연하여 걸다’라는 뜻으로, 당대의 명필들이 썼으며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작품이었다.

근현대디자인박물관에서 오는 10월 1일부터 전시되는 ‘아름다운 한글 주련전’은 2008년 전시에 이어 여는 두 번째 전시다. 한글과 캘리그래피의 매력을 주련 속에 담아낸 전시로 갤러리 모디움에서 한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어진 주련을 떠올리면 시작된 이번 전시는 한글의 조형성이 디자인적으로 해석하는 자리기도 하다. 글자 안에 담긴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자리로, 현재 활동 중인 사단법인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VIDAK 회원 디자이너 100여명이 모여 한글 캘리그래피로 직접 디자인한 주련작품들을 볼 수 있다.

아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감성적인 전시이면서 동시에 아름답고 읽기 쉬운 한글 글꼴 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실험적인 시도가 엿보인다. 주련은 일상 속에서 멋과 운치를 누리고 문화와 생활이 원래 하나임을 보여주는 생활문화의 자취라 할 수 있다. 우리 문화를 담아내는 한글 글씨에 내재된 의미를 보여줌으로써, 시각디자인 문화의 단초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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