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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교차로 위의 디자인, 가능성을 만나다-코리아디자인위크 2009

2009-06-23

디자이너들에 의한, 디자이너들의 축제를 지향하며 시작 전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던 ‘코리아디자인위크 2009’. 지난 5월 1일,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코리아디자인위크는 ‘교집합’으로 설명된다. 국적과 장르를 불문하고 디자인이라는 팻말아래 모인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선로처럼 얽히고 설킨 채 ‘소통’이라는 교집합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디자인정글에서 주최한 ‘정글D마켓’은 예술작품과 제품의 창의적인 조화를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한 디자인마켓으로 39팀의 디자이너들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멀게만 느껴지던 디자인아이디어 제품을 직접 살펴보고 구입할 수 있었던 정글D마켓은 디자이너들에게 대중과의 직접적인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 준 실험적인 마켓이었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Intersection’이라는 주제 아래 120여 팀의 디자이너들이 모이면서 컨셉트 디자인전시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진행된 코리아디자인위크 2009는 ‘국내외 디자이너전’, ‘뉴디자이너전’, ‘퓨쳐디자이너전’, ‘디자인 라운지 & 컨셉트 모뉴먼트’, ‘디크샵’ 등 5개 섹션으로 관람객을 맞았다. 관람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세부 디자인 장르에 따라 구분한 전시장이 무색하리만큼 경계를 넘나듦으로써 ‘새로움’을 입은 디자인 작품을 만나게 된다. 강아지를 닮은 양진석의 ‘Doggie Stool’, 두 켤레의 캔버스로 시계를 만든 권순한•박홍식의 ‘Count Step’, 점자를 읽으면 나타나는 빛과 소리로 텍스트와 이미지를 표현한 김해민의 ‘서울의 빛’, CRT 모니터를 조명으로 거듭나게 한 ATOMACH의 ‘CRT Light’, 잘못 사용되고 있는 한글을 성형하는 블랭크 블록의 ‘김한글 성형외과’ 등의 출품작은 현재를 사는 디자이너들이 가진 남다른 시선을 보여주었다.

오수동의 ‘변화 : neo-tree’, 김계옥의 ‘Aurora’, 김현주의 ‘Lighting Flowing Pipe’, 주연우의 ‘Popping Light’, 강희라의 ‘Green Virus Project NO. 08 : Digital Wood’ 등은 빛의 효과와 소재의 활용 범위를 생각해 보게 했던 작품들로 전시장 곳곳을 저마다의 독특한 빛으로 밝히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밖에 노자이너, 교이치, 아이앰디자인, ㈜루멘스 등은 각자의 분야에서 갈고 닦은 관록을 선보임으로써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 속에 숨은 여러 갈래의 궤도 중 하나를 제시하기도 했다.
‘교차’라는 주제는 전시장 곳곳에서 ‘새로운 얼굴’과 ‘새로운 디자인’으로 드러났다. 이는 기존 디자인전시에서 종종 느낄 수 있었던 ‘데자뷰 현상’을 차단시켰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디자인을 보게 될 것’이라던 김대성 총감독의 호언장담이 입증된 셈. 또 관람객이 뜸할 때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업계 소식이나 자신만의 노하우 등을 나누며 서로의 ‘소식통’이 되어 주던 디자이너들의 모습을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전혀 다른 것을 꿈꾸던 디자이너들의 ‘교차’가 디자이너와 디자이너는 물론 디자이너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혀줄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 디자이너의 경우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를 만나 다양한 정보를 얻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드러낸 것도 이 때문이다.

코리아디자인위크에서 만난 디자이너들은 모두 교차로 위에 서 있었다. 디자인과 디자인, 환경과 디자인, 사람과 디자인의 교차로 위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탐구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Unplug Design
언플러그 디자인은 지난 1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디자인그룹으로 다양한 방향을 모색하던 중 코리아디자인위크에 ‘드림 볼 프로젝트(Dream ball project)’를 선보이게 됐다. 드림 볼 프로젝트는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전해지는 구호상자를 재활용하여 축구공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기존의 사각형 구호상자를 원통으로 바꿔 구호상자를 아이들의 품에 ‘안겨’줄 수 있도록 했다. 구호물품을 꺼낸 후 원통 상자에 새겨진 패턴을 뜯어 조립하면 축구공이 완성된다. 종이가 헤져 축구공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면 불쏘시개나 땔감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언플러그 디자인의 이학수 디자이너는 “어떤 형태의 어떤 재질에도 패턴을 적용할 수 있지만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재질이 종이였고, 상자를 주고 받는 과정이 곧 소통이라는 생각에 원통형을 생각하게 됐다. 구호 상자를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와 함께 공을 만들고 놀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라며 드림 볼 프로젝트에서 비롯될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설명했다. 종이를 엮는 것으로 사람과 사람이 엮이고, 결국 모두가 즐거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뿍 담긴 드림 볼 프로젝트.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디자인을 더함으로써 ‘교차’에 온기를 불어넣은 언플러그 디자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조명디자이너 김혜연
디자인 테라피를 주제로 작업해 온 조명디자이너 김혜연은 코리아디자인위크 참여작가 공모 소식을 접하고 바로 참가를 신청했다. “구 서울역사라는 장소가 정말 매력적이다. 전시 취지가 좋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디자인전시에서 느껴지던 우리만의 파티에서 벗어난 것 같아 참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혜연이 줄곧 매달려 온 디자인 테라피는 일상에서 버려지거나 ‘사형선고’ 받은 물건을 재활용하여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이번에 출품한 ‘브로큰 미러 라이팅(Broken Mirror Lighting)’은 깨진 거울로 만든 조명이다. 식물을 모티브로 한 스케치에 깨진 거울 조각으로 패턴을 완성한 것. 이것이 자연스럽게 빛으로 연결되며 깨진 거울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 빛의 따뜻함을 직조한다. 김혜연은 이를 통해 역할이 없어 죽은 사물은 물론, 바쁘기 만한 현대인의 지친 심신까지 디자인으로 치료해주고 싶단다.

그래픽디자이너 서혜
그래픽 & 일러스트레이션 섹션에 ‘알파벳(Alphabet)’을 들고 나온 그래픽디자이너 서혜는 지금까지 시도되어왔던 글자와 디자인의 만남을 색다르게 해석한 작품을 내놓았다. 일본 디자인페스타와 디자인페스타갤러리에 참가하면서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좀더 멋지게 알리기 위해 글자를 꾸미기 시작했고, 이를 한단계 발전시킨 것이 바로 ‘알파벳’이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려 영문 알파벳 26자에 각기 다른 주제로 우리나라 민화의 문자도와 같은 그래픽디자인을 완성했다. 서혜는 참가 소감에 대해 “이제는 한글과 일본어, 이미지를 바탕으로 영역을 넓혀보고 싶다. 관람객들이 내 작품을 보고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소통 자체가 참 좋다.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 하겠지만 오히려 직접적인 소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ZamnanD
‘재미난 디자인’이라는 뜻의 잼난디는 재미있게 디자인하고, 쓰고, 느끼기를 원하는 디자이너들이 모여 만든 디자인 커뮤니티다. 그간 일러스트, 제품, 카툰 등 디자인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잼난디는 코리아디자인위크를 계기로 예술의 영역까지 발을 넓히고자 한다. 현재 200여 명의 회원과 7명의 운영진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번 행사에는 빠듯한 일정 때문에 운영진만 참가하게 됐다. 캐릭터페어에서 다져 온 내공을 바탕으로 회화, 디자인문구, 디자인소품, 핸드메이드 티셔츠 등을 선보였다. 잼난디 운영자 김선영 디자이너는 “그간 캐릭터페어 위주로 활동해 왔는데, 코리아디자인위크에는 잼난디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실험해보고, 홍보하기 위해 참가하게 됐다. 사기 진작에도 도움이 되고 다방면으로 좋은 점이 많은데, 이를 계기로 잼난디 콘텐츠의 가치를 키워 디자인회사라는 최종 목표를 이루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커뮤니티 구성원 중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자신만의 디자인을 해보려 가입한 사람들이 많아 회화기법, 그래픽 툴, 핸드메이드 기법 등에 관해 세미나 형식의 교육을 진행하며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

코리아디자인위크가 ‘소통’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데에는 구 서울역사의 공이 컸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의 관문으로서 셀 수 없이 많은 ‘교차’를 몸소 겪어낸 장소이기에, 첫번째 코리아디자인위크가 열릴 장소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어질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예스러움’은 현대의 디자인에 증폭기가 되어주었다. 이에 디자이너들은 따끈따끈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구 서울역사의 남루한 모습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모든 참여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작품이 놓일 공간까지 함께 디자인해 구 서울역사의 각 사무실과 복도, 대합실 등 이용 가능한 모든 공간을 살뜰히 활용한 것은 물론, 작품 자체의 컨셉트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코리아디자인위크와 구 서울역사는 밤마다 서로의 집에 쌀가마를 나르던 의좋은 형제 이야기처럼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한편, 구 서울역사는 코리아디자인위크를 끝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현대적인 복합문화건물로 거듭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근대사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문화재나 다름없는 구 서울역사의 마지막이 외롭지 않도록 시끌벅적한 송별회를 열어 준 셈이다.

전시 기간 중에는 차분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과 자신의 작품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디자인 작품들이 수천 수만 개의 크고 작은 ‘소통’으로 증식하며 디자이너와 대중의 거리를 좁혀 나가는 현장이었던 것. 그리고 작게는 디자이너 간의 소통, 크게는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수확을 얻었다. 교차점에서 시작되는 또 다른 소통을 모색하고자 했던 애초의 취지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열흘로 예정되어 있던 행사가 일주일 더 연장될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이너들이 보다 큰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게 하려는 주최측의 작은 배려이자, 디자이너들이 내민 손을 마주잡은 관람객들의 화답이고 응원이었다. 이것은 벌써부터 두번째 코리아디자인위크를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차로에서는 늘 고민이 따른다.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를 고르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리아디자인위크가 열어놓은 교차로에서 디자이너들은 제 나름의 궤도를 찾았고, 선택한 길 위에서 만나게 될 또 다른 교차로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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