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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디자인정글 전시리뷰] 나무를 깎아 시간을 드러내다 — 차경화 《나무; 시간을 새기다》

2026-11-06

<수십 번 덧칠한 표면에 새긴 빛, 관객의 손으로 이어지는 떡전거리의 기억>

 

병점역에서 떡전골로를 따라 걷다 보면 붉은 외벽 위로 길고 둥근 띠가 층층이 포개진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옛 떡전거리의 시루떡을 건물 디자인에 옮긴 <비이닷 병점>이다. 11월 5일, 차경화의 개인전 《나무; 시간을 새기다》가 열리는 2층에 올랐다. 붉은 벽에 걸린 짙푸른 화면 하나가 걸음을 멈추게 했다.

 

화면 한가운데에 밝은 타원들이 띠를 이루고, 위아래로 갈수록 드문드문 흩어진다. 멀리서 보면 어둑한 물 위에 떠 있는 빛 같다. 가까이 다가가자 타원 안으로 나뭇결이 보인다. 빛을 얹은 듯했던 자리는 끌로 색을 걷어낸 자리였다. 밝은 물감을 더해야 생길 것 같은 빛을, 작가는 표면을 깎아 만들어냈다.

 

이화여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공부한 차경화는 약 25년간 나무를 다뤄왔다. 초기에는 쓰임을 잃은 나무를 모아 갈라지고 부서진 조각을 하나씩 붙이고 연마했다.

 

 

화면 한가운데에 밝은 타원들이 띠를 이루고, 위아래로 갈수록 드문드문 흩어진다. 멀리서 보면 어둑한 물 위에 떠 있는 빛 같다. 가까이 다가가자 타원 안으로 나뭇결이 보인다. 빛을 얹은 듯했던 자리는 끌로 색을 걷어낸 자리였다. 밝은 물감을 더해야 생길 것 같은 빛을, 작가는 표면을 깎아 만들어냈다.

 

 

<색을 쌓고, 빛이 날 자리를 깎다>

 

이화여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공부한 차경화는 약 25년간 나무를 다뤄왔다. 초기에는 쓰임을 잃은 나무를 모아 갈라지고 부서진 조각을 하나씩 붙이고 연마했다. 

 

2020년 갤러리 이주에서 열린 《나무; 꿈을 꾸다》에도 폐목에 색을 입히고 끌로 다듬어 그 안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업이 소개됐다. 이후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과 계절의 빛으로 관심을 넓혔고, 2022년 갤러리 민정에서 《나무; 빛이 스미다》를 열었다. 

 

이번 전시의 푸른 화면에서도 나무를 다뤄온 조각가의 손과 빛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만난다. 

 

차경화는 작가노트 〈나무; 흔(痕)〉에서 자신의 작업을 ‘채움’과 ‘비움’으로 설명한다. 나무 표면에 색을 수십 차례 덧칠한 뒤 끌로 그 층을 깎아 본래의 질감을 드러낸다. 

 

가까이에서 보면 색이 남은 부분과 나무가 드러난 부분 사이에 얕은 높이 차가 있다. 몇 걸음 물러서면 나뭇결이 드러난 밝은 타원들이 모여 화면을 가로지르는 빛의 띠를 이룬다.

 

색으로 먼저 눈을 붙들고, 깎인 표면을 살피게 만드는 것.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오가는 차경화의 작업은 관객이 작품 앞에서 거리를 바꿔볼 때 가장 또렷해진다.

 

 

 

가까이에서 보면 색이 남은 부분과 나무가 드러난 부분 사이에 얕은 높이 차가 있다. 몇 걸음 물러서면 나뭇결이 드러난 밝은 타원들이 모여 화면을 가로지르는 빛의 띠를 이룬다.

 

 

 

 

 

 

 

차경화는 작가노트 〈나무; 흔(痕)〉에서 자신의 작업을 ‘채움’과 ‘비움’으로 설명한다. 나무 표면에 색을 수십 차례 덧칠한 뒤 끌로 그 층을 깎아 본래의 질감을 드러낸다.

 

 

<액자 사이의 리듬, 창가까지 번지는 꽃>

 

붉은 벽을 따라가면 비슷한 크기의 작품들이 한 줄로 걸려 있다. 주황이 넓게 퍼진 화면 옆으로 연두와 분홍이 두드러지는 화면이 이어진다. 

 

가까이서는 색과 나뭇결이 맞물리는 모양이 제각각이다. 비스듬히 서서 벽 전체를 바라보면 일정한 액자 간격 사이로 색의 비중이 달라지면서 연작의 리듬이 생긴다. 푸른 화면 앞에서 한곳에 모였던 시선이 이 벽에서는 작품 사이를 옮겨 다닌다.

 

맞은편에는 자주, 파랑, 초록, 노랑의 커다란 꽃이 피어 있다. 꽃잎 가장자리를 따라 난 밝은 흔적은 바느질 자국을 닮았다. 꽃은 벽에서 바닥 가까이로, 다시 창가로 이어진다. 창 너머 이웃 건물의 벽돌 외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액자 안에서는 색과 나뭇결의 관계가 눈에 들어왔다면, 여기서는 꽃의 크기와 위치가 벽과 창을 새롭게 보게 한다. 같은 전시장 안에서 작품을 읽는 눈이 공간을 살피는 눈으로 바뀌는 대목이다.

 

 

 

액자 안에서는 색과 나뭇결의 관계가 눈에 들어왔다면, 여기서는 꽃의 크기와 위치가 벽과 창을 새롭게 보게 한다. 같은 전시장 안에서 작품을 읽는 눈이 공간을 살피는 눈으로 바뀌는 대목이다.

 

 

 

 

 

 

전시장 한쪽에는 색색의 가느다란 성냥개비를 가득 담은 긴 테이블이 놓여 있다. 관객 참여 작업 〈나무; 기억의 흔적〉이다. 안내문은 한때 북적이던 떡전거리를 떠올리게 한 뒤, 유황을 걷어내고 색을 입힌 성냥개비 하나를 골라 그 자리에 기억을 남겨보라고 권한다.

 

 

<나무 한 개비를 고르는 동안>

 

전시장 한쪽에는 색색의 가느다란 성냥개비를 가득 담은 긴 테이블이 놓여 있다. 관객 참여 작업 〈나무; 기억의 흔적〉이다. 안내문은 한때 북적이던 떡전거리를 떠올리게 한 뒤, 유황을 걷어내고 색을 입힌 성냥개비 하나를 골라 그 자리에 기억을 남겨보라고 권한다. 

 

다른 개비 옆에 놓거나 이어 붙일 수 있고, 여러 개비 사이에 조용히 숨겨도 된다. 어떤 기억인지 말로 풀어낼 필요는 없다. 손이 고른 색과 개비를 놓은 자리가 그 사람의 흔적으로 남는다. 

 

테이블 앞에서 벽의 작품을 돌아보면, 전시를 이루는 두 가지 손의 움직임이 보인다. 작가는 끌로 색을 덜어내 나무에 있던 결을 드러낸다. 관객은 나무 한 개비를 보태 테이블 위 풍경을 바꾼다. 

 

한쪽에는 작가가 작업실에서 나무와 보낸 시간이, 다른 쪽에는 전시장을 다녀간 사람들의 시간이 남는다. ‘시간을 새기다’라는 전시 제목이 관객 자신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한쪽에는 작가가 작업실에서 나무와 보낸 시간이, 다른 쪽에는 전시장을 다녀간 사람들의 시간이 남는다. ‘시간을 새기다’라는 전시 제목이 관객 자신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비이닷 병점>은 한신대학교의 유휴시설을 재생한 화성시 로컬커뮤니티센터다. 2026년 9월 문을 열었고 소다미술관이 운영을 맡았다.

 

 

<떡전거리의 환대를 층층이 담은 건물>

 

이 테이블이 놓인 곳이 병점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비이닷 병점>은 한신대학교의 유휴시설을 재생한 화성시 로컬커뮤니티센터다. 2026년 9월 문을 열었고 화성특례시와 화성시문화관광재단이 운영의 주체다. 

 

이 공간은 옛 삼남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던 떡전거리의 환대에서 건물의 구상이 출발했다고 한다. 시루떡의 층을 떠올리게 하는 외관 안으로 들어서면 층마다 동네와 만나는 방식이 달라진다. 

 

1층 라운지 ‘컬렉티브(Collective)’는 화성에서 난 재료로 만든 음식과 차를 매개로 사람들이 머물고 마주치는 곳이다. 2층 갤러리 ‘레이어(Layer)’에서는 개관 당시 병점의 과거를 담은 소리와 오늘의 화성에서 채집한 소리를 한 공간에서 들려주었다. 3층 ‘로프트(Loft)’는 함께 일할 수 있는 공유 업무 공간이자 화성의 사람과 장소를 기록한 자료를 살펴보는 곳이다. 

 

지하 1층 ‘액티브 그라운드(Ground)’는 신체 활동과 체험, 휴식에 쓰이는 다목적 공간이다. 차를 마시러 들른 사람이 전시를 만나고, 전시를 보러 온 사람이 동네의 기록을 들춰볼 수 있는 구성이다.

 

쓰임을 잃은 나무에서 작업을 시작한 작가가 쓰임을 바꿔 다시 문을 연 건물에 작품을 펼쳤다. 그 만남은 2층의 긴 테이블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전시장을 나와 병점역 쪽으로 걷다 보니, 오래된 간판과 낮은 건물들이 남아 있는 떡전골로의 풍경 속에서 <비이닷 병점>의 붉은 외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건물에 새 쓰임을 더한 전시장과 버려진 목재의 결을 살린 차경화 작가의 작품이 이 거리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다. 

 

서울 성수동의 오래된 공장과 창고에 작업실과 전시장이 하나둘 들어섰듯, 떡전골로에도 이런 공간과 전시가 차곡차곡 쌓였으면 한다. 떡전거리의 기억을 품은 이 길이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새로운 쓰임을 만들어가는 문화재생의 거점으로 자라기를 기대한다.

 

차경화는 나무의 결에 남은 시간과 기억을 조형으로 풀어내는 작가다. 이화여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뒤 약 25년간 나무를 중심으로 작업해 왔다. 초기에는 지역의 역사와 쓰임이 남아 있는 폐목으로 설치 작업을 했으며, 2021년 이후에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자연과 풍경,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으로 관심을 넓혔다. 나무 표면에 색을 수십 차례 덧칠하고 끌로 일부를 걷어내면, 쌓인 색과 나뭇결이 한 화면에 드러난다. 회화의 색채와 조각의 깊이를 함께 보여주는 방식이다.
2022년 갤러리 민정에서 《나무; 빛이 스미다》를 열었고, 2026년에는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나무; 빛으로 잇다》, 화성 비이닷 병점에서 《나무; 시간을 새기다》를 선보였다. 같은 해 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 선정작가전에도 참여했다. 병점 개인전에서는 관객이 색을 입힌 성냥개비를 하나씩 보태는 〈나무; 기억의 흔적〉을 통해 나무에 새기는 시간이라는 주제를 떡전거리의 기억으로 확장했다.

 


<전시 정보>

* 전시명: 《나무; 시간을 새기다》 (Wood; Tracing Time)
* 작가: 차경화
* 기간: 2026년 10월 21일(수)~11월 10일(화)
* 장소: 비이닷 병점 2층 갤러리 레이어, 경기도 화성특례시 병점구 떡전골로 118
* 관람 시간: 화목 10:00~18:00, 금토 10:00~21:00. 일·월요일 및 공휴일 휴무. 
* 후원: 화성특례시, 화성시문화관광재단, 화성예술지원

 

글_ 정석원 편집인 (jsw0224@gmail.com)
사진 제공_ 차경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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