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9
<한글 필사본에서 발견한 생활의 미학, 전주 톨게이트에서 판문점까지… 서예와 디자인, 일상과 광장을 이어온 효봉 여태명의 예술세계>
전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전주’ 두 글자,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친근한 글씨, 남북 정상이 함께 심은 소나무 앞에 새겨진 ‘평화와 번영을 심다’. 서로 다른 장소와 순간을 연결하는 이름이 있다. 서예가 효봉(曉峰) 여태명이다.
한글 민간서체인 ‘민체(民體)’의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현대 서예와 문자디자인으로 발전시킨 여태명 원광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10월 16일 별세했다. 향년 70세. 고인은 옛사람들의 생활 속 글씨에서 새로운 미학을 찾아내고, 그 글씨가 오늘의 사회와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도록 길을 열어온 예술가였다.
그의 작업을 돌아보는 일은 한 서예가의 작품을 살펴보는 데서 더 나아간다. 누구의 글씨가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전통은 어떻게 현대의 디자인으로 이어지는지, 예술가는 자신의 시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함께 묻게 한다.
서예가 여태명 선생의 생전 모습 (사진: 전북일보)
천안 작업실에서의 모습 (2025년)
서예가 여태명 선생의 생전 모습. (사진: 2025년 오마이뉴스)
<이름 없는 사람들의 글씨에서 발견한 아름다움>
1956년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서 태어난 여태명은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대학교에서 한국화를, 같은 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이후 원광대학교에서 약 30년 동안 후학을 가르치며 서예와 문인화, 전각, 문자조형을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은 민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편지를 쓰고 소설과 가사를 옮겨 적으며 남긴 글씨에는 궁중에서 정제된 궁체와 다른 표정이 있었다. 글자의 크기와 기울기, 획의 움직임이 일정하지 않아도 쓰는 사람의 정성과 감정이 드러났다. 여태명은 그 자유롭고 소박한 글씨에 주목했다.
생전 인터뷰에서 그는 기존 명필의 글씨를 반복해서 따라 쓰는 데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찾던 중, 고서점에서 옛사람들의 글씨를 만났다고 회고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정성껏 써 내려간 글씨가 흥미로웠고, 이를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민체의 세계를 열어갔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그런 글씨를 어디에 쓰겠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그는 1,000여 권의 한글 필사본을 수집·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탐구를 바탕으로 1990년대 초 민체를 주창하며 궁체와 판본체 중심으로 이해되던 한글서예의 시야를 넓혔다.
민체를 그의 ‘창안’이라고 부를 때 기억해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옛 백성들의 글씨 자체를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생활 속에 존재하던 글씨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현대의 창작 언어로 발전시켰다는 뜻이다. 그의 성취는 새로운 서풍을 제시한 일과 함께, 이름 없는 사람들의 필적을 예술의 자리에서 바라보게 한 데 있다.
서울방면 톨게이트 현판 (사진: 전주시청)
전주방면 톨게이트 현판 (사진: 전주시청)
<‘전주’ 두 글자에 담은 귀향과 출발의 이야기>
여태명의 문자 철학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전주 톨게이트의 ‘전주’ 현판이다. 익숙한 도시 이름이지만, 들어오는 방향과 나가는 방향의 글씨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주로 들어올 때 마주하는 현판에서는 ‘전’의 자음 ‘ㅈ’을 작게, 모음 ‘ㅓ’를 크게 썼다. 그는 자음을 자식으로, 모음을 어머니로 해석했다. 객지에서 돌아온 자식이 어머니의 넉넉한 품에 안기는 모습을 글자 안에 담은 것이다. 반대로 전주를 떠나는 쪽에서는 ‘ㅈ’을 크게, ‘ㅓ’를 작게 써 자식이 밖에 나가 건강하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 현판은 여태명의 글씨에 서각가 김종연의 작업이 더해져 완성됐다. 붓의 움직임이 나무의 질감과 만나 도시의 관문에 자리 잡은 것이다.
디자인의 관점에서 이 작업은 특별하다. 도시 이름을 알아보기 쉽게 표시하는 기능에 더해,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렸기 때문이다. 같은 두 글자도 장소와 방향에 따라 다른 의미를 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주라는 도시의 첫인상에 고향의 정서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문자디자인인 셈이다.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수 표지석 (사진: 문화저널)
청와대의 의뢰는 남북정상회담 엿새 전, 서울로 향하던 KTX 안에서 받았다. 글씨가 공개될 때까지 비밀을 지켜야 했고, 작업 과정에서도 학생이나 조교의 도움을 부를 수 없었다. 그는 훈민정음·용비어천가 계열 서체와 완판본체, 민체로 세 가지 안을 보냈다. 최종 선택된 것은 평생 연구해 온 민체였다.
여태명 선생이 수집한 민체 (조선시대 민중들이 사용하던 서체로, 글자의 형태가 자유로워 글자를 쓴 사람의 개성이 느껴진다.)
<판문점에 새겨진 백성의 글씨>
2018년 4월 27일, 여태명의 글씨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장면에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으로 심은 소나무 앞 표지석의 ‘평화와 번영을 심다’가 그의 작품이다.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청와대의 의뢰는 정상회담 엿새 전, 서울로 향하던 KTX 안에서 받았다. 글씨가 공개될 때까지 비밀을 지켜야 했고, 작업 과정에서도 학생이나 조교의 도움을 부를 수 없었다. 그는 훈민정음·용비어천가 계열 서체와 완판본체, 민체로 세 가지 안을 보냈다. 최종 선택된 것은 평생 연구해 온 민체였다.
표지석의 본문과 두 정상의 이름에는 민체를, 직책과 날짜에는 훈민정음 계열 서체를 사용했다. 서로 다른 글씨의 조화를 통해 화합과 평화의 뜻을 담으려 했다. 그는 두 정상이 가림천을 걷는 순간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며 큰 감격을 느꼈다고 밝혔다.
민간의 편지와 필사본에서 찾아낸 글씨가 세계인이 지켜보는 외교 현장에 새겨졌다. 이 장면은 민체가 걸어온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기록하던 글씨가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염원을 담는 언어가 된 것이다.
세월호 추모와 사회적 실천: 2017년 3월 4일 광화문광장, 구명조끼에 글씨를 쓰는 모습. (사진: 정덕수)
여태명 선생의 서예 퍼포먼스 모습 (사진: 문화저널)
<붓글씨를 디지털과 생활문화로 옮기다>
여태명은 서예를 현대의 시각환경과 연결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1998년 ‘효봉 축제체’, ‘효봉 푸른솔체’, ‘효봉 개똥이체’ 등을 포함한 한글 폰트 6종을 발표했다. 붓으로 쓴 글씨의 개성과 정서를 디지털 환경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작업이었다.
대중에게 익숙한 사례는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사용된 ‘효봉 개똥이체’다. 작가의 이름을 몰라도 그의 글씨는 이미 많은 사람의 일상에 들어와 있었다.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며 서예와 디자인의 접점을 넓히는 데에도 힘썼다.
현판과 방송 타이틀, 디지털 폰트로 이어지는 작업은 서예의 쓰임을 확장했다. 종이 위에서 완성된 글씨가 건축과 매체, 생활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얻도록 한 것이다. 이는 전통을 계승하는 방법에 관한 여태명 나름의 답이었다. 오래된 형식을 오늘의 사람들이 만나고 사용하는 환경으로 옮겨 놓았다.
말년의 문자조형 실험: 2025년 특별초대전의 ‘천지인 시리즈’
<문자를 읽는 데서 문자를 바라보는 예술로>
그의 창작은 글씨의 생활화와 함께 문자 자체의 조형성을 탐구하는 방향으로도 나아갔다. 한국화와 회화를 공부한 경험은 글씨를 이미지로 구성하고, 문자와 그림을 한 화면에서 만나게 하는 작업의 토대가 됐다.
1999년작 〈천天·지地·인人〉은 종이에 먹과 아크릴릭을 사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에 소개됐다. 그의 작업이 현대미술의 맥락에서도 논의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014년 개인전 《문자가 내게 다가왔다》에서는 시와 글씨, 그림을 결합했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를 바탕으로 연탄재 이미지와 시구를 함께 구성했고,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등도 작품으로 옮겼다. 시의 정서를 획과 여백, 이미지의 관계로 풀어낸 작업이었다.
말년까지 한글 자음과 모음을 분리하고 재구성하는 실험을 이어갔다. 2025년 특별초대전에서 선보인 ‘천지인 시리즈’와 자모 해체 작업은 문장을 전달하는 기능에서 더 나아가, 문자 그 자체의 형태와 구성 원리를 탐구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송·죽·석 삼우전》을 열며 창작을 지속했다.
옛 필사본을 들여다보던 연구와 자모를 해체하는 실험은 멀리 떨어진 작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두 작업에는 한글의 가능성을 익숙한 기준에 가두지 않으려는 태도가 흐른다. 그는 과거에서 새로운 글씨를 발견했고, 그 글씨를 다시 미래의 문자예술로 열어갔다.
여태명 선생이 쓴 '지랄발광'. 생전에 그는 이 글귀가 널리 퍼지길 바란다고 했다.
<광장에서 시대와 함께 붓을 들다>
여태명에게 글씨는 자신의 시대에 응답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광화문에서 구명조끼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썼고, 촛불집회와 탄핵을 촉구하는 미술행동에도 참여했다. 그의 붓은 추모와 연대, 사회적 발언의 도구가 됐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관심도 이러한 실천과 연결된다. 2025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의 대담에서 그는 민체를 연구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과 통하는 부분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관련 〈안심치덕가〉, 서울 종로 전봉준 동상의 ‘녹두장군 전봉준’ 휘호 등이 그 관심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옛 백성들이 남긴 글씨를 연구한 일과 오늘의 시민들 곁에서 붓을 든 일은 그의 삶 안에서 이어져 있었다. 문자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그 마음이 세상에 전해지도록 하는 일이었다.
<사람들 곁에 남은 글씨>
교육자로서도 그는 서예가 다음 세대와 만나는 길을 고민했다. 2020년 퇴임을 앞둔 작품전에서는 오랫동안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해 후배와 국민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서예에 대한 관심을 넓히기 위해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민과 관광객에게 직접 인장을 새겨 주기도 했다.
그는 작품과 서체, 연구자료와 함께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도 남겼다. 평범한 사람의 글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전통을 오늘의 생활과 연결하며, 자신의 시대에 붓으로 응답하는 태도는 후대가 이어받을 유산이다.
전주로 들어서는 누군가는 앞으로도 그가 쓴 두 글자 아래를 지나갈 것이다. 판문점의 기록을 돌아보는 사람은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문장을 다시 읽을 것이다. 작가의 이름을 미처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의 글씨는 사람을 맞이하고, 마음을 전하고, 한 시대를 기억하게 할 것이다.
효봉 여태명은 떠났지만, 백성의 삶에서 길어 올린 그의 글씨는 여전히 사람들 곁에 남아 있다.
글_ 정석원 편집인 (jsw0224@gmail.com)
#디자인정글 #효봉여태명 #여태명추모 #한글서예 #민체 #한글디자인 #문자예술 #캘리그라피 #전주톨게이트현판 #평화와번영을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