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3
미술관에 가면 우리는 작품을 감상한다.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는다. 그러나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반 뵈닝겐 데포(Depot Boijmans Van Beuningen)는 처음부터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전시되지 않는 작품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이 질문 하나에서 세계 최초의 공개형 미술품 수장고가 탄생했다. 이번 네덜란드 미술관 여행에서 가장 충격적인 공간 가운데 하나였다. 이곳은 명화를 전시하는 미술관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시민에게 공개한 공간이었다.
‘데포‘를 처음 마주하면 미술관이라기보다 거대한 조형물을 보는 듯하다. 하늘과 나무, 도시와 사람들이 외벽 전체에 비치면서 건물의 경계가 사라진다. 멀리서 바라보면 건물이 존재한다기보다 도시 풍경이 하나의 거대한 거울 속으로 흡수되는 느낌을 준다.
<수집가 두 사람의 안목이 만든 미술관>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은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미술관이자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미술관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곳은 처음부터 국가가 계획해 만든 미술관이 아니었다.
18세기 미술수집가 프란스 야코프 오토 보이만스가 자신의 컬렉션을 로테르담시에 기증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항만 산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 다니엘 판 뵈닝겐의 방대한 컬렉션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미술관이 완성되었다.
미술관 이름이 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곳은 국가의 컬렉션이라기보다 두 사람의 안목과 취향이 수백 년 동안 축적되어 만들어진 미술관인 셈이다.
<창고를 미술관으로 바꾼 발상의 전환>
보이만스는 약 15만 5천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실제 전시장에 나오는 작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수장고에서 보관된다.
2019년 본관이 대규모 보수공사에 들어가면서 미술관은 예상치 못한 과제를 마주했다. 방대한 소장품을 어디에 안전하게 보관할 것인가였다. 기존 지하 수장고는 노후화와 침수 위험까지 안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새로운 창고를 만들었겠지만 로테르담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수장고 자체를 시민에게 공개하자.’ 이 단순한 발상이 세계 최초의 공개형 수장고 ‘데포(DEPOT)’를 탄생시켰다. 전시가 아니라 보존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여주는 새로운 유형의 문화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일반 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거대한 유리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고, 작품들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계단과 수장고, 복원실과 운송 공간까지 모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도시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 건축>
‘데포‘를 처음 마주하면 미술관이라기보다 거대한 조형물을 보는 듯하다. 하늘과 나무, 도시와 사람들이 외벽 전체에 비치면서 건물의 경계가 사라진다. 멀리서 바라보면 건물이 존재한다기보다 도시 풍경이 하나의 거대한 거울 속으로 흡수되는 느낌을 준다.
이 건물은 로테르담의 건축사무소 MVRDV가 설계했다.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는 공원의 녹지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필요한 수장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결과이며, 거울 외벽은 거대한 창고가 주변을 압도하지 않고 도시 풍경 속으로 스며들도록 의도한 장치다.
건물에는 시민과 하늘, 나무와 도시가 끊임없이 반사된다. 건축 자체가 로테르담이라는 도시를 전시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 된다.
보이만스가 다른 미술관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화만 수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구와 도자기, 유리, 산업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생활용품까지 모두 동등한 시각문화로 다룬다. 특히 데 스테일과 모더니즘 디자인, 현대 산업디자인이 고전 회화와 같은 비중으로 보관되는 모습은 네덜란드 디자인 문화의 깊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술관의 백스테이지를 무대로 올리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일반 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거대한 유리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고, 작품들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계단과 수장고, 복원실과 운송 공간까지 모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기서는 큐레이터가 연출한 전시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이동하고 보관되고 복원되는 전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그동안 미술관이 철저히 감춰왔던 백스테이지가 하나의 전시 콘텐츠가 된 것이다.
<명작도 수장고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데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작품의 ‘서열’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브뤼헐이나 렘브란트 같은 거장의 작품도,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같은 이동식 철제랙에 나란히 걸려 있었다. 회화와 조각은 물론 가구와 도자기, 유리공예와 산업디자인까지 모두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관리된다.
이곳에서는 작품의 가치가 아니라 재료와 크기, 무게, 온도와 습도가 배치 기준이 된다. 관람객은 비로소 작품을 ‘명화’가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연구해야 하는 실물 문화재로 바라보게 된다.
무엇을 전시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수집하고 보존하며 연구하는가를 시민들과 공유한다. 전시 중심에서 시스템 중심으로,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미술관의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예술과 디자인을 같은 문화로 바라보다>
보이만스가 다른 미술관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화만 수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구와 도자기, 유리, 산업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생활용품까지 모두 동등한 시각문화로 다룬다. 특히 데 스테일과 모더니즘 디자인, 현대 산업디자인이 고전 회화와 같은 비중으로 보관되는 모습은 네덜란드 디자인 문화의 깊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예술과 디자인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하기보다 한 시대의 생활문화와 미감을 함께 기록하는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인상적이었다.
<미래의 미술관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20세기의 미술관이 작품을 선택해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이었다면, 21세기의 데포는 미술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무엇을 전시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수집하고 보존하며 연구하는가를 시민들과 공유한다. 전시 중심에서 시스템 중심으로,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미술관의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미술관은 많지만 수장고는 여전히 일반인에게 닫혀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데포는 보존과 복원, 운송과 연구까지 문화 콘텐츠로 바꾸며 새로운 관광자원이자 교육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히 독특한 건축을 넘어 미술관의 역할 자체를 다시 정의한 혁신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보이만스 반 뵈닝겐 데포는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아니라, 미술관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전시한 세계 최초의 문화공간이다.
<디자인정글의 한 줄 평>
“보이만스 반 뵈닝겐 데포는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아니라, 미술관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전시한 세계 최초의 문화공간이다.”
글, 사진_ 정석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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