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8
네덜란드 북부 도시 그로닝겐(Groningen)을 대표하는 새로운 랜드마크는 오래된 성당도, 시청도 아니다.
2019년 문을 연 ‘포럼 그로닝겐(Forum Groningen)’이다.
처음 건물을 마주하면 조금 당황스럽다. 마치 거대한 바위 하나가 도시 한가운데 비스듬히 솟아오른 듯하다. 작은 창들이 불규칙하게 뚫린 석재 외벽은 화려하지 않지만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 건물의 진짜 매력은 외관이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처음 건물을 마주하면 조금 당황스럽다. 마치 거대한 바위 하나가 도시 한가운데 비스듬히 솟아오른 듯하다. 작은 창들이 불규칙하게 뚫린 석재 외벽은 화려하지 않지만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건물 하나에 도시를 담다>
포럼 그로닝겐는 흔히 도서관이라고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도서관이라는 이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도서관, 영화관, 전시장, 시민광장, 카페, 메이커 스페이스, 전망대가 하나의 건물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책을 읽다가 전시를 보고, 커피를 마시다가 영화를 보고, 다시 도시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올라간다. 문화가 기능별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생활이 된다.
우리나라 공공시설처럼 “도서관은 도서관, 미술관은 미술관”으로 나누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책을 읽다가 전시를 보고, 커피를 마시다가 영화를 보고, 다시 도시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올라간다. 문화가 기능별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생활이 된다.
<건축가보다 시민이 먼저 선택한 건축>
포럼 그로닝겐은 암스테르담의 건축사무소 NL Architects가 설계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건물이 단순히 건축가의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6년 그로닝겐시는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를 만들기 위해 국제설계공모를 개최했다. 자하 하디드, 에릭 반 에게라트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포함해 모두 7개 팀이 참여했다.
완성된 모형들은 시민들에게 공개 전시됐고,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직접 둘러보며 미래 도시의 모습을 함께 고민했다. 이후 전문가 심사와 시민 선호도가 모두 일치한 작품이 바로 NL Architects의 설계안이었다.
건축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선택하는 도시의 미래라는 사실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다.
책은 공간의 중심이지만, 사람은 그보다 더 중심에 있다. 책을 보러 오는 공간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들었기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책과 만나게 된다. ‘독서’보다 ‘체류’를 먼저 디자인한 것이다.
<왜 건물은 비스듬히 서 있을까>
이 건물을 처음 본 순간, 왜 이렇게 비스듬하고 불규칙한 형태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이것은 단순히 독특한 조형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었다. 역사적인 구시가지 한복판에 거대한 건물을 세우면서도 주변 골목과 광장으로 햇빛이 최대한 들어오도록 상부를 깎아낸 결과였다.
덕분에 건물은 도시를 압도하기보다 오래된 시가지와 새로운 광장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건축은 조형물이 아니라 도시를 배려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이 건물은 보여준다.
도시를 바라보며 책을 읽고, 도시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도시를 바라보며 일한다. 이곳에서는 풍경도 하나의 책이 된다. 실내와 도시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가장 중요한 전시는 ‘동선’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시가 아니라 에스컬레이터였다. 건물 중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에스컬레이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시야가 계속 바뀌고, 도시가 열리고,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이동 자체가 하나의 전시가 된다. 층마다 방향이 달라지고, 다시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마치 산을 천천히 오르며 풍경이 달라지는 것처럼 공간을 경험하게 만든다.
좋은 공간은 목적지보다 과정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사실을 이 건물은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시가 아니라 에스컬레이터였다. 건물 중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에스컬레이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머무는 도서관을 만들다>
포럼 그로닝겐의 도서관은 우리가 익숙한 도서관과는 전혀 다르다. 누군가는 공부를 하고, 누군가는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누군가는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계단을 미끄럼틀처럼 오르내리고, 곳곳에는 자유롭게 앉아 쉴 수 있는 계단형 라운지가 배치되어 있다.
책은 공간의 중심이지만, 사람은 그보다 더 중심에 있다. 책을 보러 오는 공간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들었기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책과 만나게 된다. ‘독서’보다 ‘체류’를 먼저 디자인한 것이다.
좋은 공간은 무엇을 전시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만남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포럼 그로닝겐은 그 질문에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보여준 공간이었다.
<도시를 바라보는 가장 아름다운 열람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은 통유리 창가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열람실이었다. 책상 앞에 앉으면 도시의 오래된 지붕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도시를 바라보며 책을 읽고, 도시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도시를 바라보며 일한다. 이곳에서는 풍경도 하나의 책이 된다. 실내와 도시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색채는 절제하고 경험은 풍부하게>
실내는 화려하지 않다. 흰색과 회색, 검정, 그리고 따뜻한 원목이 대부분이다. 대신 안내데스크의 노란색, 학습공간의 오렌지색처럼 필요한 곳에만 강렬한 포인트 컬러를 사용했다.
색으로 시선을 빼앗기보다 공간 경험에 집중하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불필요한 장식은 없지만 결코 심심하지 않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사실을 공간이 증명하고 있었다.
<건축보다 공공성을 배우다>
포럼 그로닝겐을 둘러보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건축 기술이 아니었다. 공공공간을 바라보는 철학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도서관과 문화시설이 새로 지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시설’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포럼 그로닝겐은 시설보다 경험을 설계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얼마나 자연스럽게 서로 만나게 되는지, 얼마나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지를 먼저 고민했다.
그래서 이곳은 도서관이 아니라 ‘도시의 거실’이 되었고, ‘시민들의 일상’이 되었다.
도시를 바꾸는 것은 거대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사람들이 다시 찾고 싶은 공공공간이라는 사실. ‘포럼 그로닝겐’은 그 답을 건축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공간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장치다>
이번 네덜란드 미술관 여행에서 포럼 그로닝겐은 내게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좋은 공간은 무엇을 전시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만남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포럼 그로닝겐은 그 질문에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보여준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전시를 관람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공간 안에서 머물고, 만나고, 대화하며 도시와 다시 연결된다는 점이다.
도시를 바꾸는 것은 거대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사람들이 다시 찾고 싶은 공공공간이라는 사실. ‘포럼 그로닝겐’은 그 답을 건축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글, 사진_ 정석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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