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3
디자인은 원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좋은 상품, 좋은 공간, 좋은 브랜드, 좋은 서비스, 좋은 경험과 같은 것들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라면, 인간이 반드시 맞이하게 될 죽음 역시 디자인의 영역 밖에 있을 이유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나미의 신간 《더 나은 죽음을 위한 삶 디자인》은 매우 특별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죽음학 입문서도 아니고, 부모 간병 에세이도 아니다. 존엄사와 연명의료를 다룬 사회 비평서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이 한 권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디자이너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설계하게 된 이야기가 놓여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죽음학 입문서도 아니고, 부모 간병 에세이도 아니다. 존엄사와 연명의료를 다룬 사회 비평서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이 한 권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디자이너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설계하게 된 이야기가 놓여 있다.
<죽음을 통해 삶을 다시 설계하다>
저자는 40년 가까이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교육자로 살아왔다.
그러나 어느 날 치매를 앓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임종 위기를 맞는다. 응급실에서 “수 시간 내 임종 가능성”을 통보받은 뒤 저자는 병원 시스템에 아버지를 맡기는 대신 집으로 모셔오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시작된 117일.
가족과 방문간호사, 요양보호사가 함께 협력하며 아버지는 평생 살던 집에서 존엄한 마지막을 맞는다.
이 책은 그 기록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저자는 깨닫는다.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결국 좋은 삶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책의 후반부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 자신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는 스스로를 클라이언트로 삼는다.
평생 수많은 브랜드와 기업을 위해 디자인을 해온 디자이너가 이제 자신의 마지막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내 몸을 클라이언트처럼 모시자”>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나의 더 나은 죽음을 위한 삶 디자인 설계도’다.
여기서 저자는 죽음을 추상적인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로 다룬다.
그 첫 번째 원칙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 몸을 클라이언트처럼 모시자.”
평생 클라이언트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저자는 자신이 가장 중요한 클라이언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후 건강, 식습관,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 등 삶 전체를 ‘셀프 돌봄(Self Care)’의 관점에서 다시 재편한다.
실제로 저자는 정제 곡물을 줄이고 식단을 바꾸고, 슬로 조깅을 시작하며, 노년의 몸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새롭게 시작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곧 건강하게 살아가는 습관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책에서 반복해서 말한다. 좋은 죽음은 개인의 의지로만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가족의 이해와 공감, 세대 간의 대화와 협력, 그리고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죽음을 준비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가족과 소통하는 책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답게 만든 ‘삶 디자인 설계도’>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저자가 자신의 노년과 죽음을 위한 구체적인 설계도를 공개한다는 점이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신을 가장 중요한 클라이언트로 대한다 —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이 모든 삶의 출발점이다.
2) 셀프 돌봄 중심으로 생활을 재편한다 — 식습관,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까지 포함한 자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
3) 인생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기록한다 — 은퇴 이후의 시간을 자신만의 창작과 기록으로 채운다.
4) AI와 첨단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 AI 비서, 돌봄 플랫폼, 가정용 휴머노이드 등 미래 기술을 노년의 동반자로 받아들인다.
5) 생애 말기 준비는 건강할 때 시작한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과 생애 말기 비용 준비 등을 미리 실행한다.
6) 연명의료보다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다 — 자신의 의사결정권을 바탕으로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철학을 밝힌다.
7) 살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 가능한 한 병원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재택 임종을 선택한다.
8) 살아 있을 때 ‘생전 장례식’을 연다 — 죽은 뒤의 장례보다 살아 있을 때 감사와 사랑을 나누는 인생 파티를 꿈꾼다.
9) ‘산분장‘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간다 — 유골함에 머무르기보다 숲과 들판에 뿌려져 자연의 일부가 되고, ‘천 개의 바람’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기를 희망한다.
10) 가족과 죽음을 미리 이야기한다 — 자신이 원하는 존엄한 죽음의 방식과 돌봄 계획을 가족과 충분히 공유하고, 특히 자녀를 ‘총괄 디렉터’로 세워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뜻이 존중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독자는 놀라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장례식조차 상상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장례식은 물론 산분장, 재택 임종, 가족과의 역할 분담, 마지막 순간의 선택까지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설계한다.
이것은 죽음을 향한 집착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끝까지 주체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죽음은 개인이 아니라 ‘관계의 디자인’이다>
책의 마지막 장인 「내 죽음의 총괄 디렉터에게 남기는 글」은 특히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저자는 자신의 딸을 ‘죽음의 총괄 디렉터’로 임명한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파격적인 표현처럼 들린다.
하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이것이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가족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손녀까지 포함한 삼대 여성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버지 돌봄 과정에서 딸이 겪었던 부담과 상처에 대해 미안함을 고백한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맞이할 죽음에 대해서도 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죽음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책에서 반복해서 말한다.
좋은 죽음은 개인의 의지로만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가족의 이해와 공감, 세대 간의 대화와 협력, 그리고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죽음을 준비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가족과 소통하는 책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책은 죽음을 디자인하자는 책이 아니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삶도 제대로 디자인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왜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왔는가>
사실 필자가 이 책의 리뷰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필자의 부모님 역시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하지만 올해 아흔을 바라보는 장모님이 계시고, 무엇보다 이제는 나 자신의 노후와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부모의 죽음은 이야기했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책은 바로 그 침묵을 깨는 책이다.
흥미롭게도 저자 이나미, 이유출판 유정미 대표,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모두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고 비슷한 세대를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낯선 죽음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 오래된 동료 디자이너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출판사 대표가 이 책을 펴낸 이유>
이 책을 출간한 이유출판의 유정미 대표 역시 부모의 죽음을 경험했다.
오랜 지병을 앓던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1년 뒤 아버지마저 떠났다. 두 분 모두 아무런 준비 없이 보내야 했다.
유 대표는 “이 책을 그때 만났더라면 부모님을 좀 더 잘 보내드릴 수 있었을 것 같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저자와 출판사가 이 책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막을 수는 없지만 준비할 수는 있다. 그리고 준비된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의 삶까지 바꾼다.
<디자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곳>
우리는 흔히 디자인을 형태와 기능의 문제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이 책은 디자인의 본질이 결국 인간의 삶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죽음을 ‘삶의 실패‘가 아니라 ‘삶의 완성‘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이 맞이하고 싶은 존엄한 죽음의 풍경은 어떤 모습인가?”
어쩌면 이 책은 죽음을 디자인하자는 책이 아니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삶도 제대로 디자인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질문한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가?”
<디자인정글의 한 줄 평>
《더 나은 죽음을 위한 삶 디자인》은 죽음을 준비하는 책이 아니다.
삶의 마지막 장면까지 스스로 연출하고 싶은 한 디자이너가 써 내려간 인생 설계도다.
그리고 그 설계도는 결국 우리 모두가 언젠가 작성해야 할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_ 정석원 편집인
사진_ 이유출판 제공
#더나은죽음을위한삶디자인 #이나미 #이유출판 #죽음을디자인하다 #삶디자인 #존엄한죽음 #재택임종 #셀프돌봄 #생애설계 #디자인씽킹 #디자인정글북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