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2
한국 디자인계는 오랫동안 ‘참가자’였다.
독일의 레드닷(Red Dot), iF 디자인 어워드(iF Design Award), 일본의 굿디자인(Good Design Award), 미국의 IDEA, 이탈리아의 콤파소 도로(Compasso d’Oro) 등.
국내 디자이너와 학생들은 이런 해외 무대에 작품을 출품하고, 수상 여부에 환호하며, 국제적 기준에 도달했음을 확인해왔다.
그 과정이 무의미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디자인의 성장 과정에서 그런 국제적 경험은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남이 만든 무대에 참가만 할 것인가. 언제쯤 한국이 무대를 만들고, 룰을 설계하고, 디자인 담론을 제안하는 쪽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최근 등장한 DBEW(Design Beyond East and West, 디뷰)는 바로 이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겉으로 보면 국제 학생 디자인 공모전이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단순한 공모전 이상이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디자인 교육이 처음으로 자신만의 국제 플랫폼을 설계하려는 실험처럼 보인다.
DBEW Award 2026 공식 로고
DBEW Award 2026 포스터
<디자인상은 많다. 그러나 철학을 가진 상은 드물다>
세상에 디자인상은 넘쳐난다. 제품을 평가하는 상, 패키지를 평가하는 상, 브랜딩을 평가하는 상, 학생 공모전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그 상의 대부분은 심사 기준이 명확하다.
혁신성, 심미성, 기능성, 지속가능성, 시장성.
그런데 DBEW는 출발점이 조금 다르다.
“Design Beyond East and West.”
이 풀네임은 다소 도발적이다. 왜 아직도 동양과 서양인가. 그리고 왜 그것을 넘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네이밍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디자인 교육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배우는 디자인의 문법 대부분은 서구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바우하우스 이후의 근대 디자인, 독일식 기능주의, 북유럽 미니멀리즘, 이탈리아 산업디자인, 미국식 UX 시스템.
우리는 이 체계를 배우고, 익히고, 응용해왔다.
그렇다면 동양은 무엇을 했는가.
생산기지였는가. 소비시장이었는가. 혹은 뒤늦은 추격자였는가.
DBEW는 바로 이 지점에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단순한 공모전과 다른 첫 번째 이유다.
DBEW 어워드 시상식 (밀라노 ADI 디자인 뮤지엄)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을 평가한다>
더 흥미로운 점은 구조다. 이 상은 학생만 수상하지 않는다. 교육자도 함께 수상한다.
이 구조는 꽤 상징적이다.
기존 공모전은 결과물 중심이다. 누가 잘 만들었는가. 하지만 디자인 교육은 원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좋은 디자인은 학생 개인의 재능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스튜디오 문화, 비평 시스템, 교수의 질문, 프로젝트 설계, 팀 기반 학습 구조. 이 모든 것이 결과물을 만든다.
그렇다면 정말 평가해야 할 대상은 학생 개인일까. DBEW는 여기에 다른 답을 내놓는다. 좋은 디자인은 좋은 교육 시스템에서 나온다. 이 관점은 의미가 크다.
한국 디자인 교육이 오랫동안 ‘결과물 중심 포트폴리오 경쟁’에 갇혀 있었다면, DBEW는 프로세스와 교육 생태계 자체를 국제 담론으로 끌어올리려 한다.
이건 단순한 공모전이 아니라 ‘교육 플랫폼’에 가깝다.
DBEW Award 2026, Gold Winner /
Entry no. 1494 by Baoyi Huang (China) / Educator: David Buck /
Ecological Samsara - Soundscape Transformation of Parkwood Springs / University of Sheffield, UK
<첫 회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숫자는 냉정하다.
첫 회 국제 공모전의 성패는 참가 규모에서 어느 정도 읽힌다.
DBEW는 공개 자료 기준으로, 44개국 참가, 800여 점 출품, 글로벌 학생·교육자 참여, designboom 국제 노출, 밀라노 네트워크 연계 등과 같은 성과를 냈다.
이건 신생 공모전치고는 꽤 강한 출발이다.
특히 디자인 분야에서 ‘국제 공모전’이라는 이름만 붙이고 사실상 국내 행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밀라노라는 브랜드를 무대로 삼다>
디자인에서 밀라노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일종의 권위다. 세계 최대 가구·인테리어 디자인 박람회인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가 있고, ADI가 있고, 디자인 뮤지엄이 있다.
세계 디자인 생태계가 한 번씩 시선을 모으는 장소다. DBEW는 이 상징 자산을 정확히 이해한 듯하다.
이 행사는 단순히 한국 대학이 만든 공모전이 아니다. 국제 디자인 네트워크와 연결된 플랫폼처럼 구조를 설계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브랜드는 내용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가 함께하는가. 어디서 열리는가. 어떤 맥락 위에 놓이는가. 이 세 가지가 브랜드를 만든다. DBEW는 이 부분을 꽤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ADI 회장 (Luciano Galimberti)
DBEW Award 2026 심사위원장 (Paola Antonelli)
국민대 정승렬 총장
DBEW Award 2026 운영위원장 (국민대 최경란 교수)
DBEW Award 2026 심사위원단 (Paola Antonelli / Angela Rui / Byoungsoo Cho / Jin Kuramoto / Stefano Giovannoni / Lou Yongqi / John Thackara / Zhou Yanyang)
<세계적 디자인 미디어에 실린 기사 한 줄의 가치>
한국 디자인계는 종종 국내 평가에 갇힌다.
하지만 국제 무대에서 신뢰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중 하나가 미디어다.
세계적 디자인 미디어인 디자인붐(designboom)에 DBEW가 소개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이슈다. 해외 참가자 입장에서는 이 한 줄이 신뢰를 보여주는 신호가 된다. 국내 보도자료 수십 개보다 글로벌 미디어 한 번 노출이 더 강할 때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이쯤 되면 박수를 보낼 만하다. 하지만 언론은 칭찬에서 멈추면 안 된다. 질문을 던져야 한다. DBEW가 진짜 국제 플랫폼이 되려면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 특정 대학 중심성을 뛰어 넘어야 한다.
지금 구조는 특정 대학의 강한 색채를 갖는다. 초기에는 당연하다. 하지만 국제 플랫폼이 되려면 어느 순간 특정 대학의 행사 이미지를 넘어야 한다. 독립성, 개방성, 생태계 참여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슬로건을 콘텐츠로 증명해야 한다.
“Beyond East and West”.
누가 봐도 좋은 문장이다. 그러나 좋은 문장은 언제든 공허해질 수 있다.
정말 출품작이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보여주고 있는가. 정말 기존 서구 디자인 문법을 넘어서는 실험이 있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슬로건은 마케팅 문구로 끝난다.
셋째, 지속성이 중요하다.
레드닷이나 iF는 수십 년 축적된 신뢰가 있다. 그러나 DBEW는 아직 시작 단계다.
지속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디자인계는 신설 어워드가 많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세계다.
브랜드는 1회로 끝나서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속성을 갖고 5년, 10년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 디자인계가 진정 필요한 것은 ‘상’이 아니라 ‘플랫폼’이다>
사실 DBEW를 보며 떠오르는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 디자인계는 왜 아직 글로벌 플랫폼이 부족한가.”
우리는 좋은 디자이너가 많다. 좋은 학교도 있다. 좋은 학생도 많다.
그런데 왜 디자인 담론의 중심은 여전히 해외인가. 왜 우리는 남이 만든 기준을 따라가며 평가받는 구조에 익숙한가. 이제는 달라질 때다.
한국이 디자인 플랫폼을 만들고, 교육 모델을 수출하고, 국제 담론을 제안해야 한다.
DBEW는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그러나 방향은 흥미롭다.
처음으로 한국 디자인 교육이 단순 참가자가 아니라 설계자가 되려는 움직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DBEW가 던지는 질문, 그리고 그 의미>
DBEW의 진짜 의미는 수상작 숫자에 있지 않다. 44개국 참가, 800점 출품, 이 정도면 좋은 성과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한국 디자인이 이제 ‘참가국’에서 ‘플랫폼 설계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가.
DBEW는 그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이제 국민대만의 몫이 아니다.
한국 디자인계 전체의 과제다.
글_ 정석원 편집인
사진 제공_ 국민대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OC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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