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7
새롭게 출범하는 서울디자인창업센터의 시설 사진을 보며 먼저 든 생각은 감탄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세련된 조명, 고급 가구, 넓은 공용 라운지, 감각적으로 연출된 회의공간, 깔끔한 탕비공간까지, 겉으로만 보면 웬만한 민간 공유오피스보다 더 좋아 보인다.
그러나 창업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곧바로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창업자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이 이런 공간인가. 더 정확히 말하면, 공공기관이 세금을 들여 이런 시설을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 과연 ‘창업지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창업지원’이라는 이름의 공간사업>
서울디자인창업센터는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운영하는 디자인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플랫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디자인 창업에 최적화된 업무공간, 맞춤형 프로그램, 창업자 간 교류와 소통의 장을 제공하겠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공고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구조의 본질이 보인다. 입주기업은 무료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연간 이용비용을 낸다. 좌석 수에 따라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2백만 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한다.
여기에 공공은 별도의 운영조직을 두고, 시설관리비와 인건비,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속적으로 투입한다. 다시 말해 이 모델은 순수한 공공지원이라기보다, 세금으로 만든 시설을 세금으로 운영하면서 일부 비용을 다시 입주기업에게 받는 ‘공공형 공간사업’에 가깝다.
<창업의 본질은 ‘공간’이 아니라 ‘생존’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 있다. 공공이 창업을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예산과 행정력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창업의 본질은 ‘공간’이 아니다. 창업의 본질은 ‘생존’이다. 창업 초기 기업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멋진 의자나 분위기 좋은 라운지가 아니라, 당장 버틸 수 있는 운영비와 인건비, 제품을 테스트할 수 있는 자금, 판로를 열어줄 네트워크, 첫 고객을 만날 기회다.
사무실이 예쁘다고 사업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도하게 잘 꾸며진 창업공간은 창업의 감각을 흐릴 위험도 있다. 창업자가 처음부터 높은 고정비와 높은 환경 기준에 익숙해지면 비용에 대한 긴장감은 약해지고, 생존보다 체면과 형식이 앞서는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사무실이 예쁘다고 사업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도하게 잘 꾸며진 창업공간은 창업의 감각을 흐릴 위험도 있다. 창업자가 처음부터 높은 고정비와 높은 환경 기준에 익숙해지면 비용에 대한 긴장감은 약해지고, 생존보다 체면과 형식이 앞서는 왜곡이 생길 수 있다.
<‘보여주기 행정’이 만든 구조적 왜곡>
물론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공간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맞다.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필요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어야 한다. 지금 문제는 공공이 그 수단을 목적처럼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창업지원의 성과를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공간이기 때문이다.
몇 평의 공간을 조성했는지, 몇 개 기업이 입주했는지, 얼마나 많은 예산이 집행됐는지는 보고서로 쓰기 쉽다. 사진으로 남기기도 좋고, 홍보물로 내세우기도 좋다.
반면 입주기업 가운데 몇 곳이 실제로 살아남았는지, 몇 곳이 시장에서 자생력을 확보했는지, 몇 곳이 공공지원 없이도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숫자로 말하기 어렵고, 책임도 뒤따른다. 그래서 정책은 점점 ‘생존 지원’보다 ‘시설 조성’ 쪽으로 기울게 된다.
<공공이 시장에 들어올 때 생기는 문제>
더 큰 문제는 시장 왜곡이다. 지금 서울시가 운영하는 창업보육기관은 무려 21곳에 이른다. 이것은 단순히 숫자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민간에서는 공유오피스, 코워킹스페이스, 소형 사무공간 사업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경기 불황으로 민간 공유오피스 업계는 입주자를 구하지 못해 할인행사와 프로모션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급이 이미 충분하거나, 어쩌면 과잉인 시장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이 세금을 들여 또 다른 공간을 만들고 직접 운영하는 것은, 창업 지원 이전에 민간과 경쟁하는 구조가 된다.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까지 공공이 들어와 세금으로 버티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지원이 아니라 개입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효율이며, 더 나아가 민간 생태계를 위축시키는 역설이 될 수도 있다.
< ‘공간 제공’에서 ‘선택 지원’으로>
이쯤 되면 질문은 더 선명해진다. 공공이 해야 할 일은 과연 ‘공간을 직접 운영하는 것’인가, 아니면 ‘창업자가 필요한 공간을 시장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가.
필자는 후자가 훨씬 타당하다고 본다. 공공이 정말 창업자를 돕고 싶다면, 굳이 직접 비싼 시설을 만들고 관리할 필요가 없다.
이미 존재하는 민간 공유오피스와 협약을 맺고, 창업자가 원하는 곳을 선택해 입주할 수 있도록 바우처나 임대료 지원 방식으로 전환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렇게 하면 공공은 막대한 초기 시설투자비와 유지관리비, 상시 운영인력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창업자는 획일적인 공공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업종과 업무 방식, 위치, 비용 수준에 맞는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 민간 시장도 살리고, 창업자의 자율성도 높이고, 세금의 효율성도 확보할 수 있다. 같은 돈을 써도 훨씬 건강한 방식이 되는 것이다.
사무실을 꾸며주는 정책이 아니라, 사업을 버티게 해주는 정책. 그것이 진짜 창업지원이다. 이제 공공은 ‘멋진 공간’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창업가에게 필요한 것은 라운지의 분위기가 아니라, 내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 입주가 아니라 ‘성장’을 지원하라>
더구나 공공이 직접 시설을 운영하면 지원의 기준도 자꾸 ‘입주’ 중심으로 설계된다. 누가 들어오느냐, 몇 좌석을 배정하느냐, 얼마나 오래 머무르느냐가 행정의 중심이 된다.
하지만 창업지원의 핵심은 입주가 아니라 ‘성장’이다. 창업기업이 왜 살아남지 못하는지, 무엇이 실제 장애물인지, 어느 단계에서 가장 큰 자금 압박을 받는지, 어떤 네트워크가 부족한지, 어떤 멘토링과 판로지원이 실질적 효과를 내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공간은 그 다음 문제다. 지금처럼 공간을 먼저 만들고 거기에 맞춰 지원 프로그램을 얹는 방식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공공 창업지원,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특히 디자인 분야 창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디자인 창업은 제조 기반이든 콘텐츠 기반이든 플랫폼 기반이든, 결국 시장성과 차별성, 그리고 실행력이 성패를 가른다.
포트폴리오가 좋다고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의자에 앉아 있다고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디자인 창업가에게 더 중요한 것은 초기 클라이언트를 만날 기회, 제품 상용화 자금, 시제품 제작비, 유통채널 연결, 브랜딩과 마케팅 지원, 법무·회계·특허 자문,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를 견딜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공공의 많은 창업지원정책은 여전히 ‘좋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지원의 핵심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는 창업을 산업정책이 아니라 시설정책으로 오해한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다.
서울디자인창업센터는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운영하는 디자인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플랫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디자인 창업에 최적화된 업무공간, 맞춤형 프로그램, 창업자 간 교류와 소통의 장을 제공하겠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면 그럴듯하다.
<창업을 살리는 정책인가, 공간을 만드는 정책인가>
이제는 공공 창업지원의 철학을 바꿔야 한다.
첫째, 공공은 직접 공간을 소유하고 운영하려는 발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야 한다.
둘째, 민간이 이미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를 대체하지 말고 연계해야 한다.
셋째, 예산의 중심을 시설비에서 운영비 지원과 시장 연결 지원으로 옮겨야 한다.
넷째, 성과평가의 기준도 입주기업 수나 공간 가동률이 아니라, 졸업 후 생존율과 매출 성장, 고용 창출, 민간 투자 유치, 시장 안착 여부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서울의 창업지원센터들은 다시 질문받아야 한다. 이 많은 공간이 정말 필요한가. 이 많은 운영조직이 정말 효율적인가. 세금은 창업자의 생존을 돕는 데 쓰이고 있는가, 아니면 보기 좋은 시설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이 쓰이고 있는가.
그리고 공공은 지금 창업을 돕고 있는가, 아니면 창업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또 하나의 ‘공간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창업은 본래 불편한 데서 시작한다. 좁은 공간, 부족한 자금,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창업가는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공공이 해야 할 일은 그 불편을 미화된 공간으로 덮는 것이 아니다. 그 불편을 견딜 수 있도록 실질적인 생존 조건을 보태는 일이다.
사무실을 꾸며주는 정책이 아니라, 사업을 버티게 해주는 정책. 그것이 진짜 창업지원이다. 이제 공공은 ‘멋진 공간’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창업가에게 필요한 것은 라운지의 분위기가 아니라, 내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
사진출처_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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