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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에세이] “죽음도 삶처럼, 내가 사랑한 공간에서 하면 안될까”_ 장례식 장소에 대한 상상

2026-03-13

“사람은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이 질문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장례 문화가 얼마나 획일적인지 금세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장례는 대부분 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의 빈소, 비슷한 구조의 공간, 비슷한 절차와 음식들.

 

마치 공장에서 생산된 것처럼 죽음의 형식이 모두 동일하다.
이곳에서 죽음은 개인의 삶이 아니라 장례전문가에 의해 관리되는 행정 절차가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죽음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나라가 있다.

 

바로 네덜란드다.

 

네덜란드에서는 장례식 장소가 반드시 장례식장일 필요가 없다고 한다. 고인이 사랑했던 공간이라면 어디든 장례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미술관, 카페, 숲속 레스토랑, 공연장, 심지어 단골 식당까지도 장례의 장소가 된다.
그들은 이를 ‘로카티에(Locatie)’, 즉 ‘장소 기반 장례’라고 부른다.

 

이 문화는 1990년대 장례 관련 법이 유연하게 개정되면서 확산되었다. 장례는 더 이상 시설 중심의 절차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반영하는 의식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장례는 종종 이런 풍경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화가의 장례는 그의 작품이 걸린 미술관 로비에서 열린다. 재즈를 사랑했던 사람의 장례는 단골 재즈바에서 열린다. 숲을 사랑했던 사람의 장례는 숲속 레스토랑에서 열린다.

 

사람들은 와인을 들고 음악을 듣는다. 친구들은 돌아가며 고인과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울기도 하지만 웃기도 한다.

 

그들은 이것을 “마지막 축제(The Last Celebration)”라고 부른다.
죽음을 관리하는 의식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로 되돌리는 의식이다.

 

“결혼식은 종종 도서관에서도 열린다.
그런데 장례식은 왜 안 되는 걸까. 죽음이야말로 그 사람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인데도 말이다.” (사진_ AI 생성)

 

 

<도서관에서 장례를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흥미로운 글을 접했다. 평생 도서관에서 일했던 한 사서가 이렇게 물었다.

 

“내 장례를 도서관에서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참 아름다운 상상이다.
책 사이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이 책들 사이에서 마지막 인사를 받는 것.
사람들이 조용히 책장을 넘기듯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

 

결혼식은 종종 도서관에서도 열린다.
그런데 장례식은 왜 안 되는 걸까.
죽음이야말로 그 사람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인데도 말이다.

 

<납골당이 아니라 ‘기억의 도시’로>

 

여기서 한 가지 상상을 더 해본다.

 

시신을 화장해서 그 뼈가루를 담은 것이 납골함이다. 이것은 땅 속이나 납골당에 보관하더라도, 고인이 사랑했던 공간에 작은 추모 비석을 하나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A4 크기 정도의 작은 패널이면 충분하다. 아니, 사전 크기만한 부피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도서관의 한 책장. 미술관의 한 벽. 공연장의 로비. 체육관의 복도. 공원의 벤치.
그곳에 비치할 작은 비석에는 이런 문장이 적힐 수 있다.

 

“이 공간을 사랑했던 사람, ○○○ (1960–2060)”

 

그 순간 도시는 달라진다.
도시는 단순한 기능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겹겹이 쌓인 기억의 지도가 된다.

 

공원에는 산책을 사랑했던 사람이 있고,
도서관에는 책을 사랑했던 사람이 있고,
미술관에는 미술을 사랑했던 사람이 있고,
공연장에는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이 있고,
체육관에는 땀을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

 

그들의 삶은 고스란히 그 도시 공간 속에 남는다.

 

<죽음도 디자인할 수 있을까>

 

나는 평생 디자인 일을 해왔다.
디자인이란 결국 삶의 방식을 설계하는 일이다.

 

집을 디자인하고, 도시를 디자인하고, 공간을 디자인한다. 그렇다면 죽음의 방식도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례식장이 아니라 삶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장례 문화. 납골당이 아니라 도시 속에 남는 기억. 죽음이야말로 삶을 가장 깊이 이야기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에서 떠나고 싶을까>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떠오르는 장소가 하나 있다. 바로 내가 만들려고 하는 공간, 여행이야기미술관이다.

 

나는 지금 제천의 숲과 계곡 사이에 ‘여행이야기미술관’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모아 온 작은 공예품과 기념품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공간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기념품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여행 스토리 오브제’라고 부른다. 작은 물건 하나에도 한 사람의 기억과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내 장례는 ‘여행이야기미술관’에서 열리면 좋겠다고.

 

벽과 선반에는 내가 모아온 여행 오브제들이 전시되어 있고, 사람들은 와인을 한 잔씩 들고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유럽 여행 이야기,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나누는 것이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여행 이야기를 하며 웃게 될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죽음이 슬픔만 남기는 의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된다면 말이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장면이다.>

 

우리는 삶의 공간을 디자인한다. 집안을 인테리어 하고, 주택을 설계하고, 도시를 디자인한다. 그렇다면 죽음의 방식도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사람들이 자신이 사랑했던 공간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죽음도 삶처럼, 내가 사랑한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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