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1
이제 운동장은 다시 질문받아야 한다. 아이들은 왜 여전히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운동장을 사용해야 하는가. 운동장이 아이들의 배움, 생활, 평등, 공동체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될 가능성은 없는가. 한국 학교의 오래된 관행 속에서 이러한 질문들은 오랫동안 외면되어 왔다. (사진: 밀주초등학교)
변하지 않아 온 공간, 한국의 운동장
한국의 학교 운동장은 오랫동안 변화 없이 지속되어 온 공간이다. 넓게 비워놓은 흙바닥, 축구 골대, 집회용 단상과 국기 게양대가 배치된 형태는 마치 ‘학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이 운동장의 형식은 자연스러운 전통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군사주의와 권위주의 시대의 통제적 학교 운영 방식이 만들어 놓은 잔재이다. 여기에 남학생 중심의 축구 활동을 전제로 한 설계가 오랜 기간 젠더 불평등을 강화해왔다.
운동장은 다시 질문받아야 한다
이제 운동장은 다시 질문받아야 한다. 아이들은 왜 여전히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운동장을 사용해야 하는가. 운동장이 아이들의 배움, 생활, 평등, 공동체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될 가능성은 없는가. 한국 학교의 오래된 관행 속에서 이러한 질문들은 오랫동안 외면되어 왔다. 그러나 한 초등학교의 변화가 이 질문의 무게를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밀주초등학교가 보여준 전환의 힘
경남 밀양의 밀주초등학교는 운동장 혁신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쇠락해가던 학교는 몇 년 전 운동장을 생태공간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흙바닥 대신 작은 냇물이 흐르고, 물길 옆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며, 텃밭과 흙언덕, 작은 숲길이 새로운 운동장의 풍경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운동장이라는 이름의 자연 속에서 물을 만지고, 곤충을 관찰하고, 흙 위에서 뛰놀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조경 개선이 아니다. 교실 중심의 학습 구조를 깨고, 운동장이 하나의 ‘살아 있는 교실’이 되는 전환이다.
변화가 확산되는 이유—학생, 학부모, 지역이 반응하다
놀라운 것은 변화의 파급력이다. 학생 수가 두 배 가까이 늘고, 전학생의 상당수가 외부 지역에서 찾아왔다고 한다. 부모들은 흙먼지 운동장보다 초록과 물빛이 있는 교육환경을 선택한다. 이는 공간이 교육을 바꾸고, 교육이 다시 지역의 활력을 불러오는 선순환의 시작이다. 방과 후와 주말에 지역 주민에게 개방된 운동장은 학교를 마을의 중심지로 되돌려 놓고 있다. 운동장은 다시 ‘모두의 광장’이 되고 있다.
경남 밀양의 밀주초등학교는 운동장 혁신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쇠락해가던 학교는 몇 년 전 운동장을 생태공간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아이들은 운동장이라는 이름의 자연 속에서 물을 만지고, 곤충을 관찰하고, 흙 위에서 뛰놀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조경 개선이 아니다. 교실 중심의 학습 구조를 깨고, 운동장이 하나의 ‘살아 있는 교실’이 되는 전환이다.
생태운동장이 만드는 평등과 공동체
생태운동장의 설계는 단순한 미관 개선이나 놀이시설 확충의 의미를 넘어선다. 이는 평등의 회복이라는 가치와 직결된다. 기존 운동장이 남학생 중심의 활동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면, 생태운동장은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아이가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다. 경쟁보다 협력, 점유보다 순환, 속도보다 체험이 중심이 되는 구조이다. 자연을 매개로 한 공간은 아이들을 동일한 조건 위에 올려놓는다. 이 변화는 ‘공간의 민주화’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디자이너가 읽어야 할 공간의 메시지
이 사례는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공간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디자인은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생태운동장은 형태나 시설의 변화가 아니라 가치와 기능의 재설계를 의미한다. 공간 디자인이 사람의 행동과 관계, 나아가 문화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증명한다.
공공 디자인 산업은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운동장이 자연·교육·공동체의 복합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 공원·광장·문화시설 등 모든 공공공간 역시 그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한 공간을 ‘사용자 중심’으로 다시 정의하는 일, 자연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일, 지역 공동체의 순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은 앞으로의 공공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생태운동장의 설계는 단순한 미관 개선이나 놀이시설 확충의 의미를 넘어선다. 이는 평등의 회복이라는 가치와 직결된다. 기존 운동장이 남학생 중심의 활동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면, 생태운동장은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아이가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다.
미래를 실험하는 작은 우주— 생태운동장의 의미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운동장은 미래 사회를 가장 먼저 실험하는 작은 우주이다. 밀주초등학교의 사례는 우리에게 말한다. 운동장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 하며, 그 변화는 아이들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지금 한국 교육 공간은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생태운동장은 그 첫 번째 지점이다. 운동장의 마법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배우고, 함께 어울리고, 더 넓은 공동체를 경험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 그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디자인할 수 있는 미래이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 (jsw0224@gmail.com)
사진제공_ 밀주초등학교 (경남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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