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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칼럼] 디자인은 산업의 도구가 아니다, 지식재산이다 - 정부조직 개편안을 위한 제언 

2025-09-08


디자이너의 권리는 왜 늘 뒷전이었는가

 

“디자인은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도구다.”
이 말은 한국 디자인정책의 지난 수십 년을 설명하는 단 한 줄의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질문은 늘 뒷전으로 밀렸다. 디자이너의 권리는 누구에게 보장받아야 하는가? 창작의 대가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왜 부재했는가? 산업의 부속품처럼 취급되는 구조에서 디자이너들의 자존감과 권리는 언제나 희생돼 왔다.

지금이야말로 그 물음을 다시 던져야 한다. 디자인은 산업의 그림자가 아니라 창작자의 지식재산이며, 국가 정책은 이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산업 진흥의 부속물에서 권리 보호의 본령으로

 

우리나라 디자인정책은 오랫동안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서 추진돼 왔다. ‘진흥원’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듯, 정책의 무게 중심은 산업 진흥이었다. 제품 경쟁력 강화, 수출 확대, 제조업 고부가가치화라는 국가적 과제 속에서 디자인은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그 모든 성과 뒤에는 언제나 창작자 권리의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디자인의 본질은 산업적 도구가 아니라 창작 행위에서 비롯된 지식재산이다. 로고, 제품, 서비스, UI/UX, 공간, 콘텐츠 등 다양한 형태의 결과물이 모두 창작자의 정신적 노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 정책의 무게 중심은 이제 산업적 활용이 아니라 권리 보호와 공정한 보상 체계로 옮겨져야 한다.

 


지식재산처로의 편입과 패러다임 전환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은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이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국가가 지식재산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그렇다면 디자인정책 또한 그 틀 안에서 재편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진흥정책과 권리보호정책이 분리되어 있다면, 디자이너는 언제까지나 제도적 사각지대에 남을 수밖에 없다. 지식재산처가 특허·상표·디자인권·저작권을 아우르며 등록, 보호, 분쟁 해결, 보상 체계까지 원스톱으로 구축한다면, 창작자들은 제도적 신뢰 속에서 안심하고 창작 활동에 몰입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니라, 디자인을 바라보는 국가의 인식이 ‘산업 중심’에서 ‘창작자 중심’으로 이동하는 전환점이다.

 

(출처: 행정안전부)

 

디자인은 산업·문화·기술을 연결하는 융합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더욱 상위 차원의 통합적 조정이 필요하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은 그 기회를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틀 안에서 디자인정책의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는 일이다.

 

 


국무총리 직속, 흩어진 정책을 모으는 힘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지식재산처가 국무총리 직속 기구라는 점이다.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융합적이다. 산업, 문화, 도시, 디지털 기술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가치가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그동안 디자인정책은 산자부, 문체부, 국토부, 과기정통부 등 여러 부처에 분산돼 추진돼 왔다.

 

문제는 이 분산이 곧 혼선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책 간 충돌, 부처 간 칸막이, 책임 회피… 그 속에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늘 현장의 디자이너였다. 창작 활동은 한 몸인데, 정책은 조각조각 나뉘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총리 직속의 지식재산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상위 부처의 권한으로 여러 부처를 아우르고, 분산된 정책의 힘을 하나로 통합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디자인정책은 산업, 문화, 도시, 기술을 모두 엮어내야 하는 특성을 지니기에, 바로 이 총리 직속 체계에서 비로소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세계는 이미 지식재산 중심으로

 

국제 사회는 디자인을 이미 지식재산의 핵심 축으로 다루고 있다. 유럽연합 지식재산청(EUIPO)은 특허·상표뿐 아니라 디자인권까지 포괄적으로 관리한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역시 디자인을 주요 IP 카테고리로 분류하며 보호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만이 여전히 디자인을 산업 진흥의 수단으로만 묶어두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지식재산처 산하로 편입될 경우, 디자인정책은 국제 지식재산 체계와 직접 연결된다. 이는 곧 한국 디자이너의 국제적 권리 보호를 강화하고, K-디자인의 글로벌 진출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K-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든든한 지식재산 체계 덕분이었다. K-디자인 역시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이름을 바꿔야 정체성이 확고해진다

 

정책기관의 명칭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진흥원’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디자인을 산업의 도구로 보는 오래된 시각을 담고 있다. 이제는 ‘디자인보호원’, 혹은 ‘디자인지식재산원’처럼 권리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 명칭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름은 단순한 간판이 아니다. 그것은 정책의 방향성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선언이다. 기관의 이름이 바뀌는 순간, 업계와 국민은 정책의 무게 중심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이제는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앞으로의 디자인정책은 산업 진흥의 부속물이 아니라, 지식재산권 보호라는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식재산처 산하에서, 그것도 국무총리 직속의 위상을 가진 기구 아래에서 추진될 때, 비로소 디자인정책은 흩어진 힘을 모으고 창작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디자인은 산업·문화·기술을 연결하는 융합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더욱 상위 차원의 통합적 조정이 필요하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은 그 기회를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틀 안에서 디자인정책의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는 일이다.

 

디자인은 산업의 그림자가 아니라, 지식재산의 빛 속에서 당당히 서야 한다. 그것이 디자이너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K-디자인이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이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jsw0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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