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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포커스 인터뷰] “디자인으로 변화를 이끈 공무원, 정광희 국장” - 광진구를 문화도시로 만든 숨은 주역

2025-01-23

서울시는 2010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서 ‘디자인’ 창의도시로 지정된 ‘디자인 도시’다. 하지만 처음부터 서울이 디자인 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에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전 서울시에 디자인을 ‘심고’, 디자인을 ‘입힌’ 사람이 있다. 최초의 디자인 전공 행정직 공무원이었던 정광희 국장이다. 

 

정광희 국장

 

 

최근까지 광진구청에서 정책보좌관으로 근무를 하다 광진문화원으로 자리를 옮긴 정광희 국장은 어린시절부터 동양화를 했었다. 군대에서 만난 사수로부터 디자인과 진학에 대한 권유를 받고 디자인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정광희 국장은 제대 후 다시 디자인학과로 진학했다.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학업에 대한 지원이 가능했던 공무원이 되기로 했고, 최초로 디자인 전공 행정직으로 근무를 하게 되면서 디자인 전공자로서 수많은 디자인, 문화 관련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는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86년도 광장동 환경정비를 맡으며 슈퍼그래픽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환경정비에 디자인을 적용시킨 최초의 사례로, 이 프로젝트는 우수사례로 꼽히며 서울시장상을 수상했다. 

 

광진구청에서 근무할 땐 처음으로 광진구에 CI 개념을 도입했고, 모든 시설물에 이 CI를 적용시켰다. 이 작업을 통해 디자인뿐 아니라 직원들의 ‘마인드 아이덴티티’까지 확립한 그는 광진구의 전신인 성동구에 근무했을 때 성동구 36개 모든 동에 민원대의 높이를 낮추는 작업 등을 시도했고, 공무원들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한 변화를 이끌며 친절 봉사 운동을 통해 주민 위주의 사무실을 만들기 위해 힘썼다. 성동구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최고 우수구로 선정이 되었고, 이러한 문화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광진정보도서관

 

 

정보도서관이 존재하지 않았을 당시 그는 ‘정보’의 개념을 도입한 도서관을 건립하기 위해 일본과 싱가포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도서관들을 직접 답사, 벤치마킹하여 30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완성된 것이 바로 광진구 정보도서관이다. 그는 공간 배치에도 직접 개입해 건축가를 설득하고 광진구 정보도서관을 최적의 공간으로 완성시켰다. 서울 최고의 도서관으로 선정된 광진구 정보도서관은 서울시 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 

 

광진문화예술회관

 

 

광진문화예술회관(나루아트센터) 역시 예술회관 추진 단장이었던 그의 손을 통해 탄생됐다. 당시예술회관은 민방위교육이나 합동결혼식 등이 열리는 구민회관 개념의 공간이었다. 디자인적 관점에서 전문 공연장을 만든 그는 예술회관에 대한 개념을 통째로 바꾸었고, 나루아트센터는 당시 서울의 빅3공연장으로 꼽혔으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느티카페

 


그가 도로에 디자인을 적용한 능동로 ‘걷고 싶은 거리’는 최초로 스트리트 디자인이 도입된 곳이다. 쓰레기장을 방불케했던 건대입구역 인근 공지는 그의 손에 의해 야외공연장이 되었고,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플리마켓 중 하나인 건대 플리마켓도 그가 만들었다. 술집이 즐비한 화양동은 그의 손을 거쳐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동사무소의 비어 있는 공간을 활용하여 디자인이 잘 적용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느티카페’를 만들었다. 대한민국 2호 사회적협동조합인 이곳에서 화양동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 명인을 섭외하여 명품 커피를 선보였고, 서가 분양 등을 통한 공유공간을 만들어 ‘공유’의 개념을 최초로 실천했다. 카페의 수익금을 활용하여 토요 거리 공연을 펼치는 아트브릿지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광진구 CJ 예스24라이브

 

 

CJ콘서트홀은 정광희 국장이 일본과의 MOU를 통해 만든 곳이다. 최초의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으로, 2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딩 공연장이다. 

 

정광희 국장은 디자인 전공자로서 문서작성에도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당시 맥을 이용해 디자인적 요소를 적용했던 그의 작업물은 혁신을 일으켰고, 각종 공모전에서 상을 휩쓰는 결과를 냈으며 여러 지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그는 ‘도안가’ 이상의 대우를 받지 못했던 당시 디자이너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인쇄물 작업에 있어 디자인비용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시기 그는 작업물에 대한 디자인비 별도 적용을 주장했다. 홍보책자를 제작할 때에도 역시 ‘공무원 중심’에서 ‘주민 중심’으로 변화를 이끌었다. 주민들에게 좀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사진가를 일일이 코치했고, 구청장의 얼굴 사진 대신 시설물의 모습들을 실었다. 기존 공무원들과의 마찰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서서히 틀에 박힌 생각들을 관철시켜 나갔다.  

 

그가 설립한 광진문화원에서는 300여 개의 강좌가 이루어진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강좌가 열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전파하고자 한다. 노인들이 수업을 듣는 곳이 아닌 모든 세대를 위한 문화원을 만드는 것이다. 노인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 사용방법 교육 등을 시작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활용할 수 있는 강좌들을 개설하고자 한다. 그의 계획은 강좌가 단순한 교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현장에서 실현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기 신도시인 광진구는 재개발될 여지가 가장 많은 구 중 하나로, 정광희 국장은 이러한 광진구를 문화구로 만들어 가고자 한다. 작은 마을에서의 문화 교육을 통해 널리 뻗어 나갈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것. 그것이 바로 정광희 국장의 목표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사진출처_ 광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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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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