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9
광주의 오래된 마을 양림동은 ‘근대유산의 보고’라 불리는 색다른 역사를 지닌 곳이다. ‘광주의 몽마르트’라 불리는 양림동에 살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은 마을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냈다. ‘양림골목비엔날레’를 통해서다.
양림골목비엔날레 개막잔치
‘양림골목비엔날레’는 양림동의 골목 미술 축제로, ‘마을이 미술관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2020년부터 시작이 됐다. 양림마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인과 문화예술관광 전문가, 주민 및 상인들이 양림동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만든 양림골목비엔날레는 골목길을 중심으로 양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9월 4일부터 11월 10일까지 68일에 걸쳐 열린 양림골목비엔날레는 ‘지붕 없는 미술관’ 양림동을 선보였으며, 예술과의 공존을 통해 마을을 더욱 특별한 곳으로 만들었다.
‘Connecting Way – 사이, 사이를 잇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마을 전역에 점처럼 분산된 장소들의 연결과 함께 일상과 예술의 연결, 세대 및 계층 간의 연결, 마을과 세계와의 연결을 담아, 긴 시간에 걸쳐 마을이 쌓아온 이야기를 동시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곳이자 지난 100년간의 창작자들이 오늘날의 사람들과 연결되는 현장으로서 마을을 조명했다.
걷기좋은 양림
더 많은 주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로 성장하고자 하는 양림골목비엔날레는 민간주도 행사로, 외부의 도움없이, 주민의 힘만으로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올해는 펀딩을 통해 800만원 가량의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민간주도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축제의 재정적 자립도를 높이고 지역 예술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양림골목비엔날레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양림미술관거리협의체 이다영 매니저 인터뷰
Q. 이번 양림골목비엔날레의 특징은 무엇이었나.
이번 양림골목비엔날레는 전시 주제처럼 ‘사이와 사이를 연결하는 축제’였습니다. 마을의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리를 예술 향유의 장으로 만들며 점처럼 흩어져 있는 전시를 하나로 연결했습니다. 아이들의 그림이 담긴 가로등 배너가 마을 전역에 휘날리고 거리의 작품들은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마을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어요. 방문객은 양림동을 탐험하듯 돌아다니며 아트스케이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양림골목비엔날레는 일상 속에서 예술을 향유한다는 모토를 실현했습니다.
또한, 이번 축제는 환대의 장치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축제 오픈을 앞두고 주민들이 직접 거리를 청소하고 정원을 정비하며 마을을 가꾸었어요. 상인들은 그랜드 세일 행사와 비건 메뉴 개발로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했죠. 또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와 스탭을 환영하는 아티스트 파티가 양림동에서 열렸습니다. 지난 몇 달간 양림골목비엔날레는 마을과 예술 그리고 사람을 연결하고 소통의 장으로 톡톡히 작용했습니다.
도슨트투어
Q. 이번 행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무엇이었나.
마을의 가장 기초적인 구성 요소인 학교와 교회와의 협업은 이번 축제의 큰 성과입니다. 그동안 예술축제의 향유자로만 존재했던 이들이 이제는 축제의 관계자로 활동하며 새로운 마을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습니다.
양림동의 학강초등학교와 마을 예술교육 프로젝트’스와인하트 스쿨’을 진행했어요. 학강초등학교 출신 작가님들이 수십년 후배를 만나 함께 예술을 나누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자체로 의미 있었던 프로젝트였어요. 이를 통해 학생들과 작가가 협업한 작품이 양림동 곳곳에 전시되었습니다.
후속 프로그램으로 광주비엔날레와 협력한 어린이 도슨트 교육도 진행되었어요.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작가와 소통하고 예술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양림동에 있는 세 양림교회와는 주민 대상 마을 음악회를 개최했어요. 교회 간의 교류뿐 아니라, 주민들과 예술을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는 양림동에 뿌리내린 선교사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학교와 교회와의 협업은 ‘관계 인구’ 확장의 기폭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의 참여를 통해 마을 주민이 아니더라도 축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마을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스와인하트스쿨
아트살롱파티
Q. 관람객의 반응은 어땠나.
굉장히 좋아해 주셨어요. 어렵고 조금은 난해한 다른 전시와 다르게 좀 더 서정적이고 감상하기 좋은 작품들이라고요. 풍경과 어우러지는 작품의 모습에 연신 카메라 촬영 버튼을 누르시곤 하셨어요. 무엇보다 작가님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 크게 호응했습니다.
한번은 전시장을 향하던 도슨트 투어 팀이 카페 야외좌석에 앉아 계신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현장 팬미팅을 방불케 하는 즉석 아티스트 토크가 열렸죠. 굉장히 흥미로워하셨어요. 생각치 못한 만남이잖아요. 이런 즐거움은 오직 양림골목비엔날레에서만 가능하니 반응이 좋았죠.
또 이번 축제에 새로 스탬프 투어를 도입했는데요. 많은 분들이 재미있어 하셨어요. 단순하지만 마을 속 전시장을 탐험하듯 돌아다니며 스탬프를 찍는 일에 다들 진심이셨습니다.
칭찬을 많이 받았지만 홍보에 대한 아쉬움도 꽤 토로하셨어요. 잘 만들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요. 저희도 항상 고민인 지점입니다. 전시 축제라 일반 지역 행사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은 것도 사실이고요. 예전처럼 일부 채널에 홍보하는 것으로는 저희 타겟층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홍보마케팅 방안을 더 촘촘하게 계획해서 많은 분들과 함께하려고 합니다.
작품관람 모습
Q. 지난 행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주민 참여가 눈에 띄게 확대되었다는 점입니다. 지난 행사 이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어요.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주민설명회를 개최하고, 통친회와 주민자치회 등 마을 공동체를 직접 찾아다니며 축제의 취지와 의미를 설명드렸습니다. 무엇보다 축제가 무엇인지, 왜 하는지를 이해하셔야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노력 덕분에 실제로 걷기좋은양림 현장 지원이나 전시장 지킴이 활동에 주민분들이 큰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주민분들과 함께하며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어요. 전시장 지킴이로 참여하신 중년 부부가 계셨어요. 양림동에 이사 온 지 얼마되지 않으신 분들이었는데, 축제 후 활동비 전액을 기부하셨어요. 경제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고 전시장 지킴이로 활동한 몇 달이 무척 즐거웠다며 호탕하게 웃으셨죠. “이사 참 잘 왔다”라고 말씀하시던 그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이처럼 이번 축제는 주민 참여가 단순한 협력을 넘어, 마을 공동체로서의 소속감과 기쁨을 함께 나눈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곽재구, 이뿌리_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이를 위한 7편의 사랑의 시 - 7. 새
박정용_ 대지에서 돋아난 아름다움
서여름_ 충장백야 외
Q. 사업성과에 대해 언급한다면.
양림골목비엔날레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특히 도슨트 투어의 이용객과 수익이 전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어요. 축제 기간은 오히려 줄었지만, 도슨트 투어 이용률은 높아졌죠. 마을 곳곳에 퍼진 전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도슨트 투어가 필수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대만 난터우시 교류단을 비롯해 하와이, 영국, 중국, 베트남 등 여러 국가의 예술 및 관광 분야 전문가들이 현장을 답사했습니다. 민간 주도의 골목 미술 축제라는 양림골목비엔날레만의 정체성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올해는 양림골목비엔날레 시즌에 맞춰 기업과 단체들의 참여도 활발했습니다.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파트너 기업 및 단체를 모집했고, 총 10개 팀이 공연과 체험 등 파트너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특히 장성과 강해영(강진, 해남, 영암) 지역을 알리는 로컬 팝업 프로젝트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방문객이 찾는 양림동은 지역의 매력을 알리는 데 최적의 장소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어요.
양나희_잇다 나-너-우리 외
최석현,정헌기_ 양림동 개비
한선주_ 잠시의 휴식, 최석현_ 평온
한희원_ 존재로부터 - 빈터 외
Q. 수지타산 부분이 궁금한데, 수익적인 면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저희가 수익구조를 다각화하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은 공공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이고 지속적인 축제 운영을 위해서였습니다. 단순한 돈 버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건 아니었죠. 펀딩 후원, 작품 판매, 유료 프로그램 판매, 일부 공공지원을 통해 운영 비용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넉넉지 않은 예산이라도 축제를 잘 운영할 정도만 마련하는 것에 일단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올해 아트마켓은 19점 정도 판매가 되었으나 아쉬움이 많습니다. 전반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음을 체감했어요. 흑자 실현에만 목적이 있지는 않지만 지속 가능성을 위해 수익구조의 다각화를 더 깊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Q. 다음 행사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저희는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축제를 지향합니다. 마을의 속도를 벗어나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축제를 통해 확보된 사람, 공간, 브랜드 자원이 마을의 힘과 속도에 맞춰 잘 관리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의 고유한 리듬을 지키면서도 축제가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사진제공_ 양림미술관거리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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