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1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이 종이로 뒤덮였다. 외관엔 318장의 종이로 이루어진 설치물이 바람에 흩날리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실내로 들어서면 천정에서 아름답게 만개한 종이 꽃들을 볼 수 있고, 전시장에선 종이로 빚어낸 귀한 공예품들을 만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개방형 수장고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특별전 ‘종이, 봄날을 만나다’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외부 전경. 318장의 종이로 이루어진 설치물을 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서울 삼청동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수장고로 2021년 개관했다. 서울관 수장고가 늘어나는 유물로 인해 협소해져 새로운 수장고 건립이 요구되었고, 헤이리 예술마을이라는 입지와 수장고의 활용성 등을 고려해 ‘개방형’이라는 획기적인 전제를 가지고 계획됐다. 새로운 수장고 건립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 것은 십 수년전으로, 본격적인 준비기간에만 7~8년이 소요됐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로비 수장타워 모습
소반과 반닫이를 보관하는 16수장고 전경 (특별전 '종이, 봄날을 만나다' 이전 모습)
파주관에선 관람객을 압도하는 거대한 수장타워를 볼 수 있다. 이 건축은 2016년 설계공모를 통해 선정된 것으로, ‘시간(示間)이 보이는 공간’이라는 컨셉으로 설계가 이루어졌다. 파주관에는 7개의 ‘열린 수장고’와 3개의 ‘보이는 수장고’, 5개의 비개방 수장고 등 총 15개의 수장고가 있다. 이곳엔 14만여 점의 민속 유물을 비롯해 100만여 점의 민속 아카이브 자료가 보관돼 있다.
이러한 파주관에서 열리는 ‘종이, 봄날을 만나다’전은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봄날’에는 비개방 수장고에 보관된 지류 소장품들의 특별한 나들이라는 의미와 함께 현대 작가들의 작품과의 조우를 통한 전통의 지속가능성 곧, ‘종이공예의 봄날’이라는 미래가치를 중의적으로 담고 있다고 한다.
전시의 도입부
전시는 빛과 바람으로 빚은 종이, 가볍고 연약하면서도 다양한 변용과 천년을 잇는 강인함을 지닌 종이를 주제로 한다. 전시에서는 실용과 고유의 미감을 갖추고 있는 우리 선조들이 종이의 물성을 포용하며 만들어 사용한 실용과 미감을 두루 갖춘 지류 유물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지승, 지호, 지장 등의 다양한 기법으로 종이 작업을 하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는 과거부터 전해온 생활 기물의 실용적 미감, 현재를 넘어 미래로 이어질 지평의 확장을 통해 개방형 수장고가 지향하는 ‘자료와 정보 그리고 영감의 연결’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 최미옥 큐레이터가 기획했다. 수많은 전시를 담당한 최미옥 큐레이터에게도 이번 전시는 특별하다고 한다.
Q. 이번 전시의 기획 배경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매년 2회 '수장고형 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전시 시나리오에 따라 유물이나 작품을 선정한 후 특정공간에 모아두고 전시하는 일반 박물관 특별전과 달리 '수장고형 전시'는 전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유물을 비교하며 볼 수 있거나, 유물은 수장대에 고정되어 있고 관람객이 시나리오에 따라 특정 유물을 찾아다니면서 관람하는 전시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종이, 봄날을 만나다’ 특별전은 전자의 형태로 관람객이 볼 수 없던 비개방 수장고에 있는 지류 유물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입니다.
1부 창의성의 향연
Q. 종이를 주제로 한 다른 전시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수장고형 전시'라는 점이지요. 개방형 수장고에서도 지류 유물은 빛에 민감하고 외부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비개방 영역에 보관되어 있어요. 그 곳의 유물 다수가 개방 영역으로 옮겨져 선보인다는 점이고, 또 개방형 수장고가 추구하는 '연결과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단순히 유물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현대 작가 작품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우리 안에 이어져온 생활 미감을 발견하고 유물들의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저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민속박물관에서 해 온 전시와는 진행방식부터 궁극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웠습니다.
Q. 전시의 구성은.
전시는 종이 공예의 다양한 기법과 활용을 보여주는 1부 ‘창의성의 향연’, 의·식·주로 분류된 지류 소장품을 소개하는 2부 ‘멋과 맛과 결을 품은’, 종이 공예의 전승 관점에서 현대 작가 작품을 만나는 3부 ‘지평의 확장’ 등 3개 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종이공예의 대표적 기법이 적용된 유물과 작품을 통해 종이의 활용에 있어 창의성을 보여줍니다. 참고로 종이공예는 지승, 지호, 지장이라는 대표적인 3가지 기법이 있어요. '지승'은 종이를 일정 간격으로 잘라 끈을 꼬아 엮거나 매듭지어 기물을 만드는 기법이고, '지호'는 종이를 풀과 섞어 죽처럼 만들어 형태를 완성하는 기법이며, '지장'은 종이를 여러 겹 발라 두터운 후지를 만들고 그 표면에 기름을 칠하거나 옻칠을 올려 완성하는 기법이랍니다. 또, 박대성 화백의 수묵화가 전시되는데, 그림을 그리기 전 한지를 세 겹, 네 겹 배접에서부터 작업을 하신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또한 종이의 창의적인 사용이지요.
2부는 소반, 옷본, 모자함, 함지박, 반닫이 등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종이를 소재로 만든 다양한 생활기물이 소개되는데 선조들이 쓰던 물건에서 실용과 미감을 두루 확인할 수 있답니다. 2부에 전시된 소장품들은 유물담당과에서 오래 근무한 이유진 선생님과 함께 목록 선정과 실사를 했는데, 100여 점 만을 선정하기에는 아쉬울 만큼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소장품들이 많아 과정도 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3부는 현대 작가 11명의 작품이 소개됩니다. 참여작가들은 전주 천년한지관, 원주 한지문화재단,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등에서도 전시를 개최한 바 있는 분들인데, 종이공예의 전승과 미래지향이라는 관점에서 지평의 확장을 보여주는 작업들을 하고 계셔서 전시 기획의도와도 잘 맞았고 함께 준비하는 과정의 호흡도 좋았어요.
2부 멋과 맛과 결을 품은
Q. 과거와 현대의 작품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나.
현대작가들의 작품은 '지평의 확장' 코너에서 주로 소개되지만, 1, 2부에서도 함께 비교 전시되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종이도포와 이진윤 작가의 '테일러드123' 그리고 조선시대 종이함과 김원자 작가의 '함지박' 등이 그렇습니다. 신구 기물을 비교하면서 같은 소재의 생활 기물이 어떻게 계승되고 또 변용되었는지를 비교해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3부 지평의 확장
Q. 공간 디자인의 특징은.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지류 유물들이 비개방영역의 수장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관람객이 직접 가 볼 수는 없지만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조습패널로 마감된 2수장고의 인테리어를 모티브로 전시공간을 디자인했습니다.
전시가 열리는 16수장고는 기존 소반과 반닫이를 보관하는 수장고였던 만큼 이 공간의 기본 구조를 충분히 활용하였고, 전시 공간이 크지 않은 관계로 11명의 작가 작품을 전시해야 하는 3부의 경우 스테이지를 만들어 한 곳에서 여러 다양한 작품이 조우되도록 했습니다. 또 전시 의도와 메시지 이해를 위해 영상물도 함께 기획하였는데, 비개방 수장고에서부터 전시 장소인 개방수장고까지 유물이 옮겨져 나오는 과정을 촬영하여 전시의 전반적인 배경을 이해하게 하는 도입부 <종이의 집> 영상과, 전시물 촬영 이미지를 활용해 각각의 미감과 디테일을 깊게 들여다 보도록 하는 영상이 관람경험을 풍부하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Q. 전시 관람의 포인트는.
우선 일반 특별전과 다른 '수장형 전시'의 특징을 알고, '종이'라는 주제가 수장형 전시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본다면 관람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유물과 작품 외에도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준비된 로비의 영상 <종이의 집>을 미리 보고 관람을 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박물관으로 들어오면서 보셨을 건물 외관 파사드의 <종이의 환대>라는 설치물도 이 전시를 위해 연출된 것임을 기억해주세요. 전시 도입부에 설치된 남지현 작가의 '백화' 설치물은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있는 곳이니 이곳에서 추억을 담아가도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파주 개방형수장고에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이 궁금하다면 전시장 내외에 비치된 QR코드를 통해 소장품 검색도 가능하답니다. 관람객들께서 이를 잘 활용하여 다양한 효용과 공감, 지평의 확장을 경험하실 수 있다면, 개방형 수장고가 지향하는 '연결과 확장' 측면에서 저희에게도 보람된 일일 것 같습니다.
Q.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의 계획은.
개인적으로는 전시업무 중심의 서울관에서 유물관리 업무 중심의 파주관으로 전출이 지평의 확장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서울관에서는 업무가 디자인 중심으로 세분화되었다면 파주관에서는 기획과 디자인은 물론이고 운영까지 모두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더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한 경험의 확장이며, 큐레이터로서는 필요하기도 한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 이어 다양한 기관들이 주변에 수장고 및 전시시설 건립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도 북부 지역 최초의 국립문화기관으로서 현재의 역할과 함께 앞으로 만들어질 파주 통일관광특구 문화벨트와의 협업을 통해 국립민속박물관이 우리의 문화를 보존하고 전파하는 곳으로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저도 일원으로서 역량을 보태야겠지요. 현재는 보다 나은 관람객 서비스를 위한 로비개선 사업을 준비중입니다.
비개방 수장고에 자리하고 쉽게 만날 수 없었던 귀한 유물을 통해 종이가 이루어낸 과거와 현재, 미래의 가치를 만나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9월 22일까지 열리며,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열린수장고 16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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