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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포커스 인터뷰] 세계박람회, 새로운 변화 필요한 시점… 박람회연구회 이각규 회장

2024-03-01

세계박람회는 개최 도시와 지역을 알리고 발전시키는 촉진제로 메가 이벤트 중 최고로 꼽힌다. 자그마치 10년간의 교외권역을 확장시키는 효과로 국가발전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세계박람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엑스포가 개최됐다. 등록엑스포는 아니었지만 대전엑스포는 ‘가장 성공한 엑스포’라는 평가를 받으며 우리나라의 많은 것을 변화, 발전시켰다. 지난 해 우리나라는 2030 부산엑스포의 유치를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는 결과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실패 원인으로 여러가지 요인들을 꼽으며 다음 엑스포를 위한 더욱 철저한 준비를 독려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대중이 원하는 세계박람회가 되기 위해선 세계박람회도 변화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의 부재는 세계박람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시들게 한다. 과거와 달리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세계박람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이각규 박람회연구회 회장은 이에 대해 세계박람회 전시기술의 답보 상태, 디지털플랫폼(GAFA) 기업의 외면 등의 원인을 들었다.  

 

이각규 박람회연구회 회장

 

 

이각규 박람회연구회 회장은 한국지역문화이벤트연구소장이자 이벤트프로젝트 프로듀서로, 부산산업대학교(현 경성대학교)와 배재대학교 관광경영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롯데전자 광고실 디자이너, ㈜대홍기획 프로모션국 이벤트팀장, (주)세륭기획 엑스포사업부장, 투웨이프로모션 대표, (주)서울광고기획 SP국 부국장을 역임했다. 세계박람회 실무이론의 체계화를 위해 다양한 연구와 저술 및 기고를 해온 그는 세계박람회 연구의 제일인자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박람회의 실무연구를 위해 2005년 아이치세계박람회와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 2015년 밀라노세계박람회 등의 현장조사와 자료를 수집했다. 

 

1980년대 후반은 이벤트라는 단어가 낯설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유수의 광고대행사 다이이치기획(第一企劃)에서 이벤트프로모션 실무를 장기 연수했다. 1991년에는 대전국제무역박람회의 종합홍보 프로젝트를 일본 다이이치기획과 공동 기획했으며, 1990년 정부의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 유치를 계기로 일본 도쿄에서 세계적인 박람회프로듀서들과 교류하며 세계박람회 실무를 연구했다. 

 

이각규 회장이 해온 많은 일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내 최초로 이벤트 티켓 온라인 발매사업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그는1993년 대전세계박람회의 홍보캠페인, 문화행사, 회장운영 등을 기획, 컨설팅했고,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의 브랜드마케팅 및 회장운영을 컨설팅하며 수익사업과 공식행사, 특별기획공연 등을 심사하고, 전시 및 행사, 운영을 조사, 평가했다. 2015년에는 밀라노세계박람회 한국관과 2017년 아스타나세계박람회 한국관의 홍보, 문화행사, 전시운영 등을 컨설팅하기도 했다.

 

2030세계박람회 유치와 관련해 2015년 유치 타당성 기초조사의 전시와 이벤트를 기획 및 컨설팅한 그는 2018년 2030세계박람회 유치성공을 위한 국회 세미나 주관 및 주제발표와 유치활동 장기 로드맵을 설정했고, 2020년 마스터플랜 기획 및 컨설팅, 2021∼2022년 관람객 수요예측을 컨설팅했으며, 2017년부터 2023년까지 2030부산엑스포추진본부에 자문했다. 

 

주요 저서로는 <21세기의 세계박람회>(2024), <박람회 프로듀스 I, II>(개정판, 2019), <박람회 프로듀스>(2015), <세계박람회 기업관의 전략과 실제>(2015), <한국의 근대박람회>(2010)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국제박람회와 메가이벤트 정책>(2012), <국제박람회 역사와 일본의 경험>(2011) 등이 있다.

 

<세계박람회 기업관의 전략과 실제>(2015년)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 이각규 회장은 최근 <21세기의 세계박람회>(2024)를 통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제3세대 세계박람회로의 전환을 위한 혁신전략을 제시했다. 세계박람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필요한 지금, 그로부터 세계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한 원인, 세계박람회에 요구되는 변화, 향후 우리나라의 세계박람회 개최 전망 등에 대해 들었다. 

 

Q. 박람회연구회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후 한국의 박람회의 상황과 문제를 적시하고 세계박람회 및 지방박람회의 실무경험과 개최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박람회의 이론적 체계와 모델구축, 분야별 실무의 이론화, 사례평가, 정보공유 등을 통해 정부와 지자체에 정책제안, 발전전략, 대안제시를 하여 성공적인 박람회 개최와 박람회학(EXPOLOGY)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2013년 6월 설립됐다. 이러한 미래를 향한 활동을 이벤트업계, 행정, 학계, 연구계의 박람회 전문가와 정책관계자와 함께하고자 한다.

 

박람회연구회 로고 이미지

 

박람회연구회 정기포럼 

 

박람회연구회에서 주관한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성공을 위한 국회 세미나 전문가 토론

 

이각규 회장이 박람회연구회에서 주관한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성공을 위한 국회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연구회의 활동은 세미나, 심포지엄 등의 학술발표와 전문서 발간, 자문, 프로젝트 개발 컨설팅으로, 활동성과를 창출한다. 사업내용으로는 박람회 조사연구 및 정책제안, 박람회 지원, 교육 개발을 통한 박람회 인재육성, 박람회 정보 및 자료개발과 교류 등이 있다. 연구회 활동을 통해 세계박람회 및 지방박람회에 관한 정보공유 및 연구발표가 이루어졌다. 2015년 3월 세계박람회 기업관 실무전문서인 <세계박람회 기업관의 전략과 실제-2012여수엑스포 기업관 분석>을 회원들이 공저하여 출판했으며, 회원 개별적으로 11권의 박람회 실무 전문서를 출간했다. 

 

Q.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한 소회는 어떠한가.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득표 차이(리야드 119표 / 부산 29표)가 너무 많이 나서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이었다.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으니 반면교사로 삼아 실패 요인의 철저한 분석과 차별화된 유치전략을 수립해 미래세대를 위해 차기 세계박람회를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 이제 유치실패의 충격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Q. 유치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라 보나.


우선 객관적으로 불리한 상황 전개를 들 수 있다. 사우디의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지지확보의 선행 외교활동(득표율 제고), 사우디 ‘오일머니의 위력(대규모 차관과 투자약속)’, 사우디의 전략적인 외교활동, 저개발 회원국(100개국) 대상의 예산 지원(5700억원), 사우디 세계박람회 유치의 높은 가능성에 대한 많은 외신 보도 등을 들 수 있다. 

 

두번째로는 뒤늦은 세계박람회 유치 전담조직 설립 및 유치활동을 들 수 있다. 정부유치위원회(2022년 7월) 출범 및 본격적인 유치 활동이 정부승인 후 4년 3개월 후 이루어졌고, 부산시 전담 조직은 2014년 1개 팀이 출범했다. 2022년 ‘엑스포추진본부’로 격상했지만 유치활동 기간동안 시장이 2번이나 교체된 것은 세계박람회 유치정책의 일관성 부재라 할 수 있다. 유치경쟁의 핵심은 회원국 정부 주요 인사의 설득이 관건이다. 우리는 사우디보다 1년 늦게 유치활동을 전개했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사전 약속을 유리하게 변경해야 하는 난관에 직면했다. 

 

세번째, 외교력의 한계를 들 수 있다. 사우디는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유럽 사이의 등거리 외교를 전개했지만, 한국정부는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진영논리식 접근으로 안이하게 상황을 판단해 정확한 국제정세 파악에 실패했다. 편향적 외교로 고른 지지 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미국 및 일본 중심으로 외교를 전개했다. 중국과의 갈등은 아프리카를 소외하게 했고, 중국은 아랍국가와 아프리카 국가에 경제지원과 군사원조로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최고 우호세력의 공식적인 지지도 부재했다. 미국은 특정 후보국의 공개 지지가 없었고, 일본은 언론사 보도로 지지를 확인했다(11월 26일). 중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영향력이 있으나 한국을 지지하지 않았다. 

 

네 번째로는 정보력의 부재 즉, 정확한 국제정세 분석과 전략 부재를 들 수 있다. 정부는 낙관론, 편협된 정보로 오판(51대4 9, 막판 역전 가능, 2차 투표 승리 가능 등)을 했다. 보고의 정확성에 의문도 제기된다. 정책결정을 위한 정보평가, 지침 제공보다 정책결정을 따름으로써 최고 지도자가 원하는 정보만을 수집 및 보고했으며, 사우디의 유치 전략과 경쟁력을 간과했다.

 

다섯 번째는 기획력 및 전략 부재로 국제박람회기구 총회 최종 PT에 실패라 하겠다. 한국은 국내 광고대행사에 세계박람회 유치관련 업무를 대행을 맡겨 회원국 동향 파악과 국제정세 분석에 어려움이 있었다. 제173회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최종 프리젠테이션 실패했다. 2030세계박람회 유치와 관련해 최종 프리젠테이션 내용에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개최도시 부산의 특성을 소개하는 내용이 아닌 오래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배경 음악으로 한 33초 짜리 영상은 진부했고, 유명인과 연예인이 등장해 부산 투표기호 ‘숫자 1’을 계속 강조했다.

 

마지막은 사우디의 전략이었다. 사우디는 파리에 소재한 전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대표가 설립한 세계적인 박람회컨설팅회사에 유치업무 대행을 맡겼다. 2016년 비전 2030 발표로 사우디를 최첨단 기술과 민간투자의 핵심모델로 조성했고, 다른 나라에 투자 기회 제공하는 세계를 위해 세계가 건설하는 엑스포를 말했다. 인권문제 비판으로 유럽의 반응은 냉담했으나, 프랑스지지 선언으로 반전을 한 엑스포 외교전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또한 콜롬비아 방문 및 대사관 개설 약속으로 지지를 선언하고 카리브해 국가들간 첫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홍보영상은 ‘네옴 시티’로 미래형 메가 프로젝트를 초점으로 국가의 비전을 제시했다. 

 

Q. 세계박람회가 중요한 이유와 세계박람회가 국가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2020년 두바이세계박람회장 전경
 

 

세계박람회는 173년 동안 22개국에서 69회가 개최되었다. 개최국과 개최도시가 세계박람회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개최 국가와 개최 도시에 대한 브랜드 상승을 포함한 관광수입과 사업증진 그리고 지역의 재개발과 업그레이드를 포함한 도시와 지역발전의 촉진이다. 

 

세계박람회를 가장 많이 개최한 나라는 미국으로 11회나 개최했으며, 프랑스 9회, 이탈리아 7회, 벨기에 7회, 일본 4회, 스페인 4회, 스웨덴 3회, 독일 3회, 영국 2회, 한국 2회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 각국에서 앞다투어 세계박람회를 개최한 것은 그 효과가 메가 이벤트 중에서 최고이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박람회의 많은 참가국들과 참가자들이 세계박람회가 무엇이며, 참가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세계박람회 개최 도시는 여러 가지 재개발 기회를 창출해 예전부터 제기되었던 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 중심부의 활력을 재생해 그 이후 10년간의 교외권역 확장을 가져온다. 이처럼 세계박람회는 실행 가능한 목표를 향해 천천히 실질적인 변화를 이끈다. 

 

세계박람회 콘셉트의 변화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비전에 맞는 창조적이며 신선한 접근방법은 새로운 세계박람회로의 전통을 탄생시킬 것이다. 그리고 개최 도시는 이것이 실현될 때 큰 이득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미 풍부한 성공 사례가 있기 때문에 세계박람회가 세계 여러 곳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에 의해 계속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향후 개최될 세계박람회는 2025년 오사카∙간사이, 2027년 베오그라드, 2030년 리야드가 있다. 

 

Q. 하지만 세계박람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예전과 같지 않다. 세계박람회의 열광이 식은 이유는 무엇이라 보나.

 


'세계박람회 중의 세계박람회'로 평가받았던 1900년 파리세계박람회

 

 

1. 국제정세 변화와 미디어 성능의 감소

1851년 런던에서 최초로 개최되었던 세계박람회는 대중의 욕망을 자극한 사상 최강의 미디어로서 19세기 세계를 군림했다. 이것이 ‘제1세대 세계박람회’다. 19세기 중반에 생겨난 세계박람회는 국제상품전시회 모델을 기반으로 급속한 발전을 계속했다. 진열과 실연을 구동원리로 ‘상품을 전시하는 박람회’였던 ‘제1세대 세계박람회’는 점점 규모가 커지고 성장을 계속했다. ‘세계박람회 중의 세계박람회’로 평가받았던 1900년 파리세계박람회는 드디어 50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유치해 최초로 정점을 맞이했다. 

 

1851년 런던세계박람회로가 있은 후 반세기만에 유치 관람객 수는 8.4배가 되었다. 그 직후 관람객수는 당분간 하락해 2000만~3000만 명에 그쳤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에 새로운 방식의 전환에 성공했다. 그것이 ‘생각하는 박람회’라 하는 ‘제2세대 세계박람회’다. 제2세대 세계박람회로 전환하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고, 1970년 오사카세계박람회에서 6420만명을 유치해 두 번째 정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성장은 여기까지였다. 세계박람회의 열기는 급속히 상실됐다. 

 

실제로 1958년 브뤼셀, 1962년 시애틀, 1967년 몬트리올, 1970년 오사카까지 잇달아 개최됐던 수천만명 규모의 대형 세계박람회는 오사카 이후 맥이 끊겨 1992년 세비아까지 22년 동안 개최되지 않았다. 국제박람회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번째 단계인 1972년에 10년마다 대규모(종합, 범주 I종) 세계박람회를 개최하고 그 사이에 소규모(전문, 범주 2종) 세계박람회를 개최하는 개최빈도 규정을 변경했다. 세계박람회의 최소 개최간격은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 3분의 2가 찬성하면 7년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6420만명을 유치해 두 번째 정점에 도달했던 1970년 오사카세계박람회

 

 

또한 박람회장 면적 규모에 제한없이 최대 6개월까지 개최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국제박람회기구가 이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박람회의 개최빈도를 무시한 규정을 위반해도 특정 세계박람회를 개최하도록 공인했다. 

 

예를 들면, 국제박람회기구는 과거에 1971년 부다페스트, 1974년 스포캔, 1975년 오키나와, 1981년 플로브디프, 1982년 녹스빌, 1984년 뉴올리언스, 1985년 플로브디프, 1985년 쓰쿠바, 1986년 밴쿠버, 1988년 브리즈번 등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주로 소규모 전문세계박람회들을 공인했다. 1980년대에 전문세계박람회 난립에 따른 세계박람회의 모라토리엄(개최준비 중단)도 발생했다. 

 

1992년에는 스페인 세비야와 이탈리아 제노바 등의 세계박람회를 공인해 행사가 동시에 개최됐다. 이듬해 1993년 대전에서 세계박람회가 개최되는 동안 1996년 부다페스트, 1998년 리스본, 2000년 하노버 등의 세계박람회 개최계획이 추진됐다. 원래 세계박람회는 근대화와 패권경쟁을 겨루는 열강제국들이 만든 것으로, 생겨날 때부터 국가의 위신을 건 경쟁의 무대였다. 위정자의 머릿속에 있었던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존재감과 국위선양’이었다. 

 

세계대전 후에는 여기에 이데올로기가 추가됐다. 각 세계박람회에서 동서진영을 주도하는 미국과 소련은 최대 규모의 국가관을 건설해 우주개발의 성과와 삶의 질의 우위를 과시했다. 양국의 존재감은 특별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정세는 긴장완화가 됐고 1980년대 초반에 신냉전이라는 상황에 이르지만 1980년대 말부터 냉전 종식으로 가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20세기 세계박람회를 주도했던 강자 미국의 세계박람회 개최 열기가 급격히 식어갔다. 

 

1980년대 말에는 세계박람회 참가에 연방정부가 예산을 동결했고, 2001년 5월에 마침내 국제박람회기구를 탈퇴했다(2017년 5월에 재가입). 단독 우위가 확실했기 때문에 세계박람회에 굳이 큰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대조적으로 소련은 1991년 12월에 붕괴됐다. 미국의 세계박람회 참가경쟁 의욕 상실은 다른 선진국에도 전파돼 크든 적든 그 심정은 공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1992년 세비야에서 4180만명을 기록한 다음에는 2010년 상하이의 7300만명을 제외하면 다시 2000만명대에 머물고 있다.

 

1970년 오사카세계박람회 미국관은 우주개발경쟁의 우위성을 제시하기 위해 월석과 아폴로11호를 전시했다.

 

1986년 밴쿠버세계박람회 소련관의 소유즈 우주선 전시

 

 

제2세대 세계박람회가 태동한 것이 1930년대니까 92년 전이었다. 이런 시대에 국가가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 자국의 우위를 과시하는 의의가 어디 있을까. 마찬가지로 국제정세의 변화속에서 많은 국가가 이 문제를 자문자답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문제가 노출돼 권위를 떨어뜨리며 생존하고 있는 제2세대 세계박람회가 구조개혁을 하지 않은 채 세 번째 상승기류를 탈 가능성은 없다. 세계박람회 역사의 흐름에서 배운다면 이미 제3세대 세계박람회가 태동해야 하지만 그 징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2. 세계박람회 미디어 성능의 상대적 감소
국제정세의 변화와 함께 이 무렵부터 현저해진 마이너스 충격이 하나 더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진화, 엔터테인먼트의 발전, 대중의 체험수준 향상 등에 기반해 세계박람회의 미디어 성능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에 등장했을 때 세계박람회는 세계의 최신 사정을 전달하는 거의 유일한 미디어였다. 매스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에 새로운 발명, 선진기술, 신제품부터 지구 뒤편의 일상생활까지 대중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세계박람회장이었고, 세계박람회는 말 그대로 대중과 시대를 연결하는 유일한 ‘창’이었다. 

 

더구나 제공하는 것은 ‘미래’와 ‘외국’이라는 최강의 콘텐츠였다. 세계박람회 기간은 6개월로 한정돼 희소가치도 충분했다. 처음부터 관람객은 고조돼 있었고 시선은 긍정적이었다. 집객을 위해 특단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1000만 명 단위의 관람객이 강한 동기부여 아래 자신의 의사로 입장한다. 이렇게 좋은 조건이 갖춰진 미디어는 따로 없다. 

 

세계박람회가 미디어의 왕자로 군림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시대가 갈수록 세계박람회는 특권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20세기 중반까지 세계의 정보와 처음 만나는 설레는 곳이었는데,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상품의 접점기회가 증가하면서 점점 하류로 떠내려갔다. 첨단적인 상업시설과 신세대 박물관, 특수영상 시어터 등 수준 높은 미디어 공간이 거리에 넘치며, 대중의 소득 증가에 따른 체험수준의 향상 등 다양한 사태가 복합적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1989년 롯데월드 어드벤처 개장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1973년 보잉 B747 점보 제트기의 김포-로스앤젤레스 노선 취항으로 대량 수송시대의 막이 열렸다, 그 후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자신감과 올림픽을 통한 국제화가 해외여행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고,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로 121만명이던 해외여행자 수는 2019년 2871만명으로 30년간 23.7배로 급증했다. 

 

가상적인 존재였던 ‘세계’가 현실적인 ‘여행지’로 바뀌었다. 1989년 롯데월드 어드벤처와 1996년 에버랜드가 개장하면서, 대중들에게 세계박람회 전시관을 훨씬 능가하는 고도의 공간연출이 눈에 띄었다. 이 둘을 본 것만으로, 대전세계박람회부터 30년 후 대중의 경험치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세계박람회가 자아도취에 빠져, 혁신을 게을리하는 사이에 주위의 상황이 크게 달라져, 정신을 차려 보니 추월당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체험정보의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히 세계박람회의 기대감도 높아진다. “놀라운 물건”과 “놀라운 체험”에 대한 기대치가 날로 높아져, 그것과 반비례하듯이, 세계박람회가 제공하던 콘텐츠에 대한 경이로움은 하락했다. 과거 세계박람회만이 가지고 있던 압도적인 “비일상”의 빛이 점차 사라졌다. 

 

3. 전시기술의 답보와 대중 의식변화
세계박람회도 분명히 여러 가지 대응을 해왔고 새로운 전시기술의 개발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급속히 진행되는 환경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분명히 말하면, 전시구상∙전시기술은 모두 1985년 쓰쿠바세계박람회 때와 거의 바뀌지 않았으며, 세계박람회 전시수준의 발전은 39년 전에 멈춰있다. 

 

실제로 최근의 대형 세계박람회인 2015년 밀라노세계박람회에서도 혁신적인 전시는 보이지 않았고, 연출기법과 전시기술 수준도 1985년 쓰쿠바세계박람회와 동일한 수준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예전에 월터 디즈니가 등장했을 때와 같은 기술혁신은 되지 않고 있다.

 

1985년 쓰쿠바세계박람회의 IBM관은 직경 21m의 전천주돔 스크린을 갖추었다.

 


1985년 쓰쿠바세계박람회 IBM관의 전천주돔 스크린에는 35mm영사기 7대와 70mm 영사기 1대가 사용됐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9세기 세계박람회: 제1세대 세계박람회에서 20세기 세계박람회: 제2세대 세계박람회로 전환한 것이 1930년대였다.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에서 노만 벨 게데스가 설계한 ‘GM관’의 ‘퓨처라마’가 상징하는 공간연출의 구상과 기술이 확립되었고, ‘메시지의 체험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공간 체험으로 표현하는 기술’이 새로운 도약을 한 것이 비공인 세계박람회인 1964년 뉴욕세계박람회였다. 

 

월트 디즈니사의 ‘오디오∙애니매트로닉스’를 비롯해 멀티 영상, 전천주 영상, 라이더, 라이브 퍼포먼스 등. 새로운 전시 연출기술이 세계박람회 전시관의 광경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15개면 멀티스크린, 360도 원형 스크린, 영상과 인간의 콜라보레이션, 관람석의 리프트 업 등 시중에는 단면 스크린 영화관밖에 없던 시대에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영상표현에 도전했다. 

 

세계박람회는 전시기술의 실험장이며 기술혁신의 요람이었다. 현재 계속되는 제2세대 세계박람회 전시연출 기술의 기틀을 다진 것이 1964년 뉴욕세계박람회였다. 이 세계박람회부터 전시관의 스타일이 과거의 ‘박물관형’에서 ‘테마파크형’으로 바뀌었다. 1970년 오사카세계박람회는 물론 ‘영상박람회’라고 평가받았던 1985년 쓰쿠바세계박람회를 비롯, 21세기의 2005년 아이치세계박람회,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 2015년 밀라노세계박람회 등도 원형을 거슬러 가면 이 세계박람회에 도달한다. 그래서 세계박람회 전시관의 연출을 지탱하는 사상으로 기술의 근간은 60년 전 그대로이며,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 벨기에관의 디오라마와 360도 서클비젼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 스페인관의 미디어 퍼포먼스

 

 

지금은 생활권내의 여러 시설이, 대형영상과 공간 엔터테인먼트 등의 전시관형 연출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새로운 스타일의 박물관, 전시관형의 테마파크, 신세대 쇼룸, 대형 쇼핑몰 등 고품격 미디어 공간이 대중사회에 침투하면서 세계박람회만의 독특한 기술이었던 공간연출이 일상에 확산되는 반면, 세계박람회의 전시표현 기술은 답보상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세계박람회 전시관의 전시에서 ‘비일상’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박람회의 가치를 지탱해 온 ‘관람체험의 비일상성’ 감소는 존립기반과 관련되는 심각한 문제인데 그것이 지금 돌이킬 수 없게 진행되고 있다. 하노버세계박람회까지는 세계박람회에 강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세계박람회의 우위는 눈에 띄게 후퇴해 현재는 ‘예전에 없던 체험’의 창조는 절망적일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다.

 

4. 대중의 시선과 의식변화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일 것이다. 물론 세계박람회는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가간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이해득실만 가지고 참가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교류’도 중요한 목적이며, 국가와 국가간에 대여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참가국에게 최대의 동기는 역시 국가 브랜딩 홍보효과다.

 

관람객 수라는 ‘양’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질’이며 당연히 ‘개최국의 대중사회에 어느 정도의 파급효과를 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가능하면 참가비용에 걸맞는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세계박람회라면 좋을 것이다. 나중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세계박람회는 곤란하다. 

 

또 하나는 개최국의 시장가치다. 최근에 ‘의리상 교류’를 적당히 하고 있던 선진국들이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에 비교적 큰 예산을 투입한 것은 분명히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최초로 개최한 세계박람회에 열광하는 중국사회에 첫 선을 보이는 의미와 효과를 계산한 것이었다. 세계박람회를 둘러싼 사회 상황의 변화를 감지하고 비용대비 효과를 의심하는 사람은 세계박람회 관계자들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세계박람회에서 제공하는 오락을 천진난만하게 즐기던 시민들도 의식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은 놀랄지도 모르지만 세계박람회가 정식 공인후에 개최중지가 되는 것은 자주 있는 사태로, 결코 드문 일은 아니다. 

 

예를 들면 1992년 세비아세계박람회와 동시에 개최하기로 정식 공인받았던 1992년 시카고세계박람회가 개최를 포기했다. 재정문제 등을 발단으로, 현지에서 반대의 기운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1992년 시카고세계박람회와 함께 가장 충격적인 취소는 1989년 파리세계박람회였다. 에펠탑의 1889년 파리세계박람회에서 혁명 100주년을 기념했던 프랑스가 1989년에 계획한 혁명 200주년 기념행사였다. 국제박람회기구의 공인을 받고 실무준비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지하게 됐다. 이유는 ‘신도심 개발’로의 방향 전환이었다. 

 

2015년 밀라노세계박람회 이탈리아관의 거울의 반사 효과를 활용한 영상

 

2015년 밀라노세계박람회 프랑스관의 영상을 배제한 각종 식재료와 주방도구 전시

 

 

가설의 세계박람회에서 ‘미래도시’를 전시, 발표하는 대신에 미래지향의 현실적인 신도시를 건설하는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랑다르슈(신 개선문)를 상징으로 한 신도심이 생겼다. 또한 1995년에 2개 도시 동시개최가 결정됐던 비엔나와 부다페스트도 개최권 반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재정문제, 환경파괴, 인플레 우려 등이 사회문제가 돼 비엔나시가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찬성 35.1%, 반대 64.8%로 참패했다. 부다페스트도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2000년 하노버세계박람회도 주민투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시의회가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시민의 반대 목소리가 커져 국제박람회기구의 개최 공인 2년 후 1992년에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60%가 넘는 높은 투표율로, 찬성 51,5%, 반대 48.5%라는 박빙의 승부였다. 이렇게 되면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다. 계획도 대폭 수정하게 됐다. 그 후에도 2004년 센생드니세계박람회(파리 교외)가 개최권을 반납했다. 

 

최근 2020년 10월에 아르헨티나가 코로나19 대유행과 그에 대한 금융위기로 인해 202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세계박람회 개최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하노버세계박람회 이후 세계박람회의 열광이 크게 하락한 것은 된 배경에는 복수의 나쁜 영향이 동시다발적으로 덮쳐 세계박람회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세계박람회의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Q.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세계박람회에서 주연이 되고 싶다면 볼만한 전시를 해야 하며, 막대한 출전참가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세계박람회에서의 위상은 전시 참가예산에 비례하기 때문에, 인기있는 화려한 존재는 항상 경제 대국과 대기업이었다. 특히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박람회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 엔터테인먼트의 비중이 커지면서 예산을 아끼지 않는 거대기업이 인기를 누렸다. 

 

예를 들면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에서 인기를 끈 기업관은 GM, 포드, 크라이슬러, 웨스팅하우스, GE, 듀폰, RCA 등이었다. 또한 비공식 세계박람회였던 1964년 뉴욕세계박람회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GM관의 전시참가 예산은 당시 금액으로 1960억원이었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9800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다. 더구나 관람객 수는 1330만명이었다. 

 

1970년 오사카세계박람회를 계기로 세계박람회의 중심이 미국에서 아시아로 이동했다. 이후 일본은 1975년 오키나와세계박람회, 1985년 쓰쿠바세계박람회, 2005년 아이치세계박람회까지 연이어 성공적인 개최로 아시아에 세계박람회 붐을 일으키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한국은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개최했으며, 중국은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를 개최했다. 현재 일본은 2025년 오사카∙간사이세계박람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박람회 전체 관람객을 2000만명 유치했다면 그저 그렇다는 분위기이지만 세계박람회가 인기있던 시절에는 단 하나의 전시관에 1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1천 수백만명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물론 영고성쇠가 있고 시대에 따라 챔피언이 되는 업종은 달라졌다. 20세기 후반까지의 주역은 자동차산업, 전자, 화학, 통신, 사무기기, 컴퓨터 등이었다. 21세기 초반의 주역으로 자동차산업, 전자, 통신, 사무기기, 컴퓨터 등은 20세기와 동일하며, 항공, 금융, 에너지, 식품 등의 업종이 새롭게 등장했다.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 GM관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 GM관의 퓨처라마. 노먼 벨 게데스가 설계한 1960년대 미국의  도시풍경을 묘사한 디오라마.

 


그렇다면 현재 21세기의 챔피언은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로 대표되는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기업일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혁명을 선도하는 이러한 거대 IT기업들은 세계박람회에 전혀 관심이 없다. 기업관 출전참가는 물론, 모든 후원∙협력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혁명의 추진자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이벤트, 사실적인 공간에도 관심이 물론 다르다.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터였을때 애플의 신제품발표회의 열기, 혹은 GAFA의 혁신적인 오피스 공간을 떠올려 보라. 디지털 플랫폼의 사실적인 이벤트, 사실적인 공간에 대한 열정은 기존 산업에 비할 바가 아니다.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 GM관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 한국기업연합관
 

 

Q. 디지털 플랫폼(GAFA) 기업이 세계박람회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복합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중 하나는 속도감 차이일 것이다. IT업계는 확산속도가 생명이며, 개발부터 보급의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박람회는 그러한 가혹한 속도경쟁을 따라갈 수 없다. 예를 들어 전시관을 출전 참가하려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긴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독립관을 건설할 경우 출전참가 결정 개최 2~3년 전, 전시내용 확정 1~2년 전, 늦어도 6개월~1년 전에 착공해야 하며, 개최 후 전시내용을 변경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즉, 전시 콘텐츠는 1~2년 전에 기획된 것으로 정보의 변경도 여의치 않아 디지털 플랫폼의 비즈니스 감각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환경이다. 무엇보다 제2세대 세계박람회의 경우 기업관의 전시목적은 제품 그 자체의 프로모션이 아니라 기업이념과 미래 비전의 소구였다. 그렇다면 디지털 플랫폼 기업도 세계박람회에서 기업 이미지 향상을 도모하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세계박람회는 세계박람회에서만 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박람회가 그런 특별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세계박람회가 제공하는 관람 체험이 ‘비일상적’인 것이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체험할 수 없는 특별한 공간체험은 세계박람회에서만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매력이다. ‘전례가 없던 공간’과 ‘전례가 없던 체험’을 만들 수 있을까? 비일상의 수준이 세계박람회의 매력을 결정할 것이다. 실제로 과거의 세계박람회는 퓨처라마(Futurama), 잇츠 스몰월드(It's a Small World), 매직 스카이웨이(Magic Skyway) 등 비일상으로 가득했다. 20세기까지는 세계박람회에 강점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비일상적 체험의 창출은 절망적일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다. 박물관과 백화점, 미디어아트 체험관 등 생활권내의 시설들이 전시관형 공간연출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다양한 신종 체험공간을 사업기반으로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과거 디즈니가 이룬 것과 같은 기술혁신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공간연출의 구상과 기술은 동시에 1985년 쓰쿠바세계박람회부터 답보상태다. 실제로 최근의 대형 세계박람회인 2015년 밀라노세계박람회의 기술수준도 대체로 쓰쿠바 수준이었다. 안타깝지만 세계박람회 전시관의 표현기술은 37년 전부터 거의 발전이 없다. 거대 IT기업들이 세계박람회를 거들떠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964년 뉴욕세계박람회 펩시콜라관의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잇츠 스몰월드 

 

1964년 뉴욕세계박람회 포드관의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매직 스카이웨이
 

 

세계박람회에서 참신하고 혁신적인 기업 이미지를 어필하려고 해도 여건이 노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한다. 더욱이 세계박람회는 다양한 주체에 의한 잡다한 발표가 혼재하는 장소다. 자사의 세계관을 순수하게 주장하기에는 잡음이 너무 많아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IT기업들은 신제품을 독자적인 이벤트, 독자적인 프로모션 전략을 구사해 사회에 직접 투입해왔다. 세계박람회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억울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런 퍼포먼스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과 세계박람회의 ‘정보관의 차이’와 ‘대중의 욕망과의 차이’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Q. 21세기 세계박람회에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세계박람회의 세대교체가 절실하다.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로 대표되는 디지털플랫폼 글로벌 IT기업은 세계박람회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의 혁신적 전시기술 개발과 함께 GAFA가 세계박람회에 참가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3세대 세계박람회로 도약할 필요가 있다. 향후 부산에서 유치하려는 2035년 세계박람회가 제3세대 세계박람회로 가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 

 

Q. <21세기의 세계박람회>라는 책을 출간했다. 어떠한 내용을 담았나. 

 

<21세기의 세계박람회> (2024년)
 

 

제1세대 세계박람회가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상품을 전시하는’ 박람회였다면, 제2세대 세계박람회는 ‘공간을 활용해서 체험하는’ 박람회였다. 이제는 21세기의 혁신적 전시기술 개발과 함께 거대 IT기업이 세계박람회에 참가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관람객이 즐거워하고, 참가국이 만족하는’ 제3세대 세계박람회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문제가 노출된 제2세대 세계박람회가 구조개혁을 하지 않은 채 세 번째 상승기류를 탈 가능성은 없다. 이 책은 21세기 박람회의 문제점과 제3세대 세계박람회로 전환할 수 있는 혁신전략을 제시했다.

 

Q. 향후 대한민국의 세계박람회 개최에 대한 전망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나.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정부와 국내 글로벌 기업들이 한 팀이 되어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메가이벤트 유치에 실패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여수가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에 도전했지만 상하이에 밀려 실패하고 그보다 규모가 작은 전문박람회를 2012년에 개최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도 2010년, 2014년에 이어 세 번에 걸친 도전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역대 세계박람회 개최국 중에도 두 차례 이상 유치를 재도전한 사례도 많다. 이번 유치 경쟁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더욱 치밀한 전략과 새로운 기획을 수립해 재도전한다면 차기 세계박람회를 유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구 반대편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줄도 모른 채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근대화의 흐름에 뒤처져 나라도 빼앗긴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뒤늦게 라도 산업화에 나섰고 정보화 시대를 선도하면서 결국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로 발돋움했다. 이 역사 자체가 세계박람회가 지향하는 바와 같다. 

 

이번에 정부와 국내 글로벌 기업이 한 팀이 되어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인 182개국을 모두 방문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곳곳, 태평양 도서 국가까지 찾아가 해당 국가가 안고 있는 고민과 과제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함께 찾기로 약속했다. 유치전에서 약속한 국제 협력프로그램을 차질없이 이행한다면 우리나라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면서 더 큰 기회가 펼쳐질 것이다. 이것이 차기 세계박람회 유치를 다시 단계별로 차분히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Q. 박람회산업의 비전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하나.


세계박람회는 3~6개월간 개최되는 대형 규모의 공공이벤트다. 이것은 국제적이며 지역적으로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기념비적인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세계박람회는 주제를 가지고 국제적인 중요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2010상하이세계박람회의 주제는 ‘더 나은 도시, 더 나은 삶’이었고, 2015밀라노세계박람회의 주제는 ‘지구식량공급, 생명의 에너지’였으며, 2020두바이세계박람회의 주제는 ‘마음의 연결, 새로운 미래의 창조’였다. 

 

뿐만 아니라 박람회는 주최측과 지역공동체 그리고 박람회 참가자 모두에게 직접적이며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주최측이 제작한 전시관과 문화행사는 박람회를 찾아오는 수천만 명의 관람객들에게는 대단한 유혹일 것이다. 건물과 전시관을 설계하거나 관람객의 체험을 창조하는 전문가들에게는 박람회 프로젝트가 개인적인 업적을 남기거나 국제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대단한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또한 개최도시의 주민과 전문가, 관련기업들은 수 천만 달러의 돈과 많은 시간을 가진 박람회 주최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각각의 박람회는 나름대로 개성이 있지만 거기에는 반복해서 개최되어 소중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줄여줄 수 있는 공통된 요소들이 존재한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전형적인 박람회의 프로세스는 국가와 도시차원에서 지자체와 관련단체 혹은 그것들의 조합이 경제적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박람회는 일정한 장소가 필요하며 가장 핵심조건인 박람회장이 개최하기 적합한 위치에 있는가가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박람회장 구성과 위치가 변경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런 중요한 동기는 지역커뮤니티가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거나 개최를 통해 도시의 일부분에 대해 확실한 혁신을 하기 위한 기회가 된다. 오늘날과 같은 지방화시대에 지역개발과 활성화의 기폭제로서 박람회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박람회의 파급효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지적할 수 있다. 우선 박람회 개최에 앞서 도로정비, 부지의 조성 등, 관련된 건설 및 토목업 관련업종이 활성화된다. 다음은 박람회장 조성, 전시관, 공연장 시설 설치, 민간기업, 상점의 개장 등 관련업종의 경기부양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서비스업의 소득을 증가시키는 효과와 버스, 택시 등의 교통수단을 비롯해 관광시설, 선물가게, 음식점, 커피숍, 특산품점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와 개최지역에 관광객 증가에 따른 관광 소득증가 효과로 인한 것이다. 

 

두 번째, 소득증가 효과와 함께, 고용창출 효과도 생겨난다. 광고홍보업, 이벤트제작업, 디자인업, 전시제작업, 인력파견업, 사인물제작업, 인쇄제작업, IT온라인업 등은 급격한 발주 증가에 따라 상당한 고용창출이 발생한다. 최종적으로는 이러한 소득증가는 지방자치체의 세수 증가로 연결돼 재정수지의 호전에도 연결된다. 그리고 간과해서 안되는 것은 경제적 파급효과 이외의 효과, 즉 박람회 개최로 인한 지역주민들의 연대감, 자긍심 고취, 문화수준의 향상, 의식의 활성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부분의 효과다. 박람회장을 만들고 이른바 관람객이 왕래한 것만으로는 그야말로 일과성으로 갈수록 쇠퇴할 것이다. 얼마만큼의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얼마만큼의 경제효과가 발생했는지를 발표하는 직접적인 효과에 더해 몇 명이 박람회에 참가하고 협력해 지역주민들의 마음에 어떤 의식이 싹텄는지가 중시돼야 한다. 

 

이 두 가지 효과가 상승해야만 박람회 개최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거대한 물결화’의 기폭제로서 박람회에 모인 에너지는 어떤 메가 이벤트보다 종합적이며, 파급효과는 다른 것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그것만으로도 영향력은 크고, 박람회 형식을 다시 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과거를 평가하고 미래를 제시하며, 박람회를 개최한 지역과 국가에 그 시대에 유∙무형의 유산을 남겨온 박람회는 향후에도 인간들의 지혜를 모아서 시대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발전할 것이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이각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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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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