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3
홍대 인근에 있는 갤러리홍은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특별한 공간이다. 디자이너 출신의 아티스트들의 초대전이 열렸고, 순수 회화에 열정을 가진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전시됐던 이곳은 디자이너 출신의 여홍구 관장이 운영하고 있는 공간이다.
여홍구 작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여홍구 작가는 금호그룹,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근무하다 디자인전문회사를 설립, 디자이너이자 대표로 활동했다. Kdb 산업은행, 크리스탈밸리 컨트리클럽 등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맡았고, 문자를 가지고 디자인을 하는 워드 브랜딩을 유행시켰다. 2005년부터는 홍대 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약 15년간 학생들을 가르쳤고 70세에 퇴직을 하며 2018년 갤러리홍의 문을 열었다.
kdb산업은행 디자인 개발
크리스탈 밸리 컨트리 클럽 디자인 개발
갤리리홍이 위치한 곳은 그가 운영하던 디자인전문회사가 자리했던 곳으로, 이후 이곳은 그의 연구실로 쓰였고, 현재는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디자이너로, 교수로 활동했던 그가 갤러리를 차리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그는 젊은 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디자인, 순수회화에 대한 장르를 구분하기보다 디자인을 넓게 바라보고자 했고, 그러한 시각으로 회화를 대하고 싶어했다. 대학원시절부터 그림을 즐겨 그리던 그는 정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삶을 꿈꾸었고, 그림에 대한 깊은 마음을 끌어내기로 했다. “무얼할까 생각하다 전시공간을 만들자 결정을 하게 됐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불러서 전시를 하고자 했어요. 50대 초중반의 중년작가들 위주의 전시공간을 꾸미고자 했죠. 디자이너 출신이지만 순수 회화에 열심인 작가들과 함께 모여 활동도 하고요. 그런 목적으로 공간을 갤러리로 꾸미게 됐어요.”
여홍구 작가의 드로잉 전시 포스터 이미지
2월 8일까지 열리는 여홍구 작가의 전시 포스터 이미지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을 가르친 그의 주변엔 늘 함께 공부한 친구, 후배, 제자들이 많았고 그들과 함께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자 했다. “데학원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누드크로키를 했었습니다. 약 15명의 회원들이 모여 크로키를 하고 전시를 갖기도 했죠. 그러다 코로나가 시작됐습니다. 서로 모일수가 없으니 모임이 이어질 수가 없었죠. 나름대로 제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화랑으로서의 운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갤러리홍을 운영하며 그는 일년에 약 10회의 초대전을 열었다. 그러다 4년전부터는 새로운 전시를 기획했다. “디자이너들 중에서 순수예술에 대한 바람을 가진 열정 있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를 기획했죠. 서기흔 교수, 조의환 선생, 김주성 교수, 홍찬석 교수, 이성표 선생 등과 함께 작품을 선보였던 것을 시작으로 그런 인물들을 모아 전시를 지속하고자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전시였습니다.”
갤러리홍에서는 국내 디자인 역사의 흐름에서 빠질 수 없는 원로 디자이너의 전시가 개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그래픽 디자인에서 빠질 수 없는 이봉섭 교수의 초대전을 열었었죠. 한국의 포스터전을 개최했는데 반응이 무척 뜨거웠습니다. 그래픽 디자인 포스터인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작품 전시들을 통해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순수조형미술 못지않게 다양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홍구 작가의 작품
여홍구 작가는 갤러리의 관장이자 디자이너 출신의 작가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이었던 금호그룹에서 근무를 하면서 작업활동을 병행한 그는 당시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장을 열었던 서울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일찍이 순수 회화쪽으로 작업을 했었습니다. 일반적인 직장생활은 하고싶지 않았어요. 그림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죠. 당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저의 작품세계가 각종 매체에 소개가 됐었는데, 신문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림을 그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작업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던 그는 지금까지 5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여홍구 작가의 작품
현재 여홍구 작가는 관장이 아닌 디자이너 출신의 작가로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2월 8일까지 갤러리홍에서 자신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현재 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요. 산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산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형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산의 기운을 담아내고 있죠. 먹물을 이용하고 있는데요, 동양화는 선의 예술, 서양화는 면(색면)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전 먹을 이용해 색면을 표현하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화선지에 먹과 혼합재료를 이용해 우리나라 산의 모습을 담고 있죠. 먹을 만지기 시작한 것은 과거에 작업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엔 실크 프린팅 작업으로 회화를 했는데, 그때 이미 먹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이번 전시를 위해 일년 반 정도를 준비했습니다.” 갤러리 관장실 벽 장 속에 쌓여 있는 수북이 쌓인 스케치들이 그간의 그의 노력을 말해주었다.
여홍구 작가의 작품
먹뿐 아니라 아크릴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디자이너라는 특성 때문인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게 돼요. 한가지만 진득하게 하는 성격도 못되고요(웃음). 이 산을 보면 이런 기법을, 저 산을 보면 저런 기법을 사용해보고 싶어지죠. 때론 그래픽적으로 표현하고 때론 정말 우리의 정서로 먹으로만 표현하고 싶고, 과슈를 이용해 거친 듯한 표현을 하기도 하고요. 작업을 하다 보면 대학교 2학년때 있던 표현기법이라는 수업 때 했던 내용들이 저절로 나와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그다.
이번 전시에서는 15호로 이루어진 2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대작은 아니지만 작품 하나하나에 산이 품은 각기 다른 기운들이 담겨있는 듯하다. 제 각각의 그림들에서 부드럽고 포근하게 인간을 감싸 안는 대자연의 느낌부터 웅장하게 우뚝 솟은 명산의 기운, 힘있게 쏟아지는 폭포의 느낌까지 다양한 감정들이 전해진다. 이번 전시는 특별히 연말연시를 맞아 부담 없이 작품들을 소장하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하게 됐다고 한다. 애정이 가는 작품을 물으니 모두 다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 말했다.
여홍구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홍
이번 전시를 마치고 난 뒤 여홍구 작가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갤러리 문을 닫고 2달동안 제 작업에만 집중할 계획입니다. 산을 주제로 하는 대작 위주로 작업을 하고 6월경에 좀 더 깊은 저의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에요.”
작가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여홍구 작가는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조언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을 강조했다. “고집을 버리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뀌는 상황에 애타하기만 하면서 본인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루틴하고 관습적인 관념의 세계에 갇히지 말고 적극적으로 틀을 깨고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이너 혹은 예술가들에게 아이디어는 중요합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죠. 스스로를 버릴 때 얻어지는 지혜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던진 물음에 답하면서 얻어지는 마지막 하나의 지혜 말이죠. 또 다른 차이에 대한 생각을 추구하면서 항상 그런 것에 마음을 열고 생활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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