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8
플랫/폼(PLAT/FORM) 아키텍츠는 건축과 도시의 연관성을 통한 환경과 삶의 가치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어떻게, 무엇을에 앞서 그 이유에 근간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플랫/폼의 대표 홍재승 건축가는 대학에서 지도교수였던 김형우 교수를 통해 건축의 공간에 눈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첫 직장은 정림건축. 정림건축에서 박승홍, 백문기 건축가의 영향을 받은 그는 <건축과 환경>(1996년 5월호)에서 소개된 플로리안 베이겔(Florian Beigel)에 매료되었고, 런던의 도시 연구소 코라(chora)를 거쳐, 플로리안 베이겔 건축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이후 맨체스터의 이안 심슨(Ian Simpson) 아키텍처에서 근무를 했다.
<건축과 환경>, 1996. 플로리안 베이겔 특집
이안심슨 아키텍츠 시절 설계한 맨체스터 기숙사
네덜란드인인 라울 뷴쇼튼(Raoul Bunschten) 교수를 통해서는 도시를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대부터 훌륭한 스승과 건축가들과 교감했던 그는 현재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문화 비평 리뷰 웹진인 <컬처램프>의 칼럼니스트로 지속적인 건축을 통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김창열 작가의 물방을 작품 연작 <회귀>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을 디자인했다. 전체를 8개의 곽으로 보고, 제주의 오름을 존중해 사이즈와 체적, 높이를 맞추었으며, 김창열 작가의 미술 철학이 건축공간으로 투영되고 울림이 되도록 설계했다. 그는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에 대해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시금석 같은 건축이라 소개했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동물복지센터 카라 더봄센터를 위해서는 인간과 동물, 자연의 순환 관계를 상징하는 서클형 구조를 택했다. 이 프로젝트를 ‘사회적 건축’이라 말하는 그는 이 작업을 통해 건축가로서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기여하고 있는지 반추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곤지암 화담숲 내 화담채 미술관을 설계하기도 했다.
그는 자연과 사람, 그리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법을 중요시 여기는 건축가다. 건축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자연과 삶의 유기적 관계를 깨닫게 한다.
홍재승 건축가 ⓒ 성필관
홍재승 건축가로부터 그의 건축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Q. 건축의 어떤 점에 매료되어 건축을 하게 됐나.
첫째, 건축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구축물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단지 크기를 넘어서서 그 속에 담기는 컨텐츠는 우리 삶과 직결되고, 영향을 받게 됩니다. 제가 비유하기 좋아하는 단어 중 건축은 양(quantity) 충족을 기본으로 공간의 질(quality)적인 향상이 뒷받침되어야 건축은 이타성이 발현됩니다. 동시에 건축가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건축을 통해 미래에 대한 제언을 합니다. 건축가는 의뢰인의 요구를 단순 해결의 역할을 넘어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합니다. 무엇에 매료된다는 것은 짧은 순간이고 오히려 지금은 끝임 없는 탐구와 노력 그리고 저항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창작자로선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것으로, 조건이긴 보단, 건축가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입니다.
카라 더봄센터 ⓒ 텍스처온텍스처
Q. ‘PLAT/FORM’은 어떤 의미인가.
플랫/폼 아키텍츠는 열린 장소로서의 ‘PLAT’와 도시에서의 개인의 삶을 의미하는 ‘FORM’의 두 가지 용어의 합성어입니다. 건축과 도시의 상관관계와 관련해 환경과 삶의 가치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건축을 설계한다는 것을 넘어 클라이언트와 함께 건강한 공간 환경을 만들어 사회에 공헌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플랫/폼 아키텍츠 전경 ⓒ 주석
Q. 건축 철학은 무엇인가.
르 코르뷔지에의 도미노 이론과 2차 세계대전이후의 유니테 다비다시옹은 전쟁이후의 주택난에 대해 대량생산을 위한 유형이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시대성을 직시하고 그 건축의 역할과 이유를 찾은 것입니다. 건축은 사회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됩니다. 우리는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건축의 구축성, 즉 대상지에 세워진다는 것은 해체하기 전까지 그 자리에서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잘 짓는 것 이전에 왜 지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냐?’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으냐?’ 그런 것이죠.
Q. 가장 보람을 느낄 때와 가장 힘이 들땐 언제인가.
첫 감동은 거푸집이 탈형되어 그 크기를 실제로 확인할 때입니다. 도공이 가마를 열어 결과물을 확인하는 것과 비견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보람은 건축 공간이 사회적인 역할을 할 때, 그 공간이 쓰여 지고, 그 공간에서 행복감이 전달될 때입니다.
반면에 힘들다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지만, 정성을 다한 프로젝트가 지어지지 않을 때이고, 지어지더라도 후추 변형이 될 때입니다. 프로젝트라는 어원도 ‘앞으로 쏘다’라는 것으로 진행형이듯, 의뢰인의 경제적 사정의 변화로 또는 사업의 변경으로 지어지지 못한 것들인데,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기에 애착과 기대가 오히려 더 큽니다.
제주 스누피가든
청담동 뜨락 ⓒ 최홍수
Q.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들에 대해 ‘조망의 건축, 교류의 건축, 융기된 건축’ 등의 부제를 다는데, 어떤 의미인가.
건축은 장소와 그 용도가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여기에 건축가의 영감과 직관이 부합되어 발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심상으로의 지형’이라고 하는데, 건축물은 지형과 환경속에 융합되어 집니다. 풍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 풍경이 되는 방식을 각 프로젝트 별로 명제화한것이 그 부제입니다.
Q. 2025년 개관 예정인 종로구립 김창열 화가의 집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달라.
2025년 봄에 개관예정인 종로구립 김창열 화가의 집은 평창동의 10m 경사진 지형을 이용한 건축적 산책이 이루어집니다. 김창열 화백님 타계 후 종로구에서 자택을 매입하게 되었고, 이 공간을 증축 및 리모델링해 화가의 거주 공간과 작업 공간을 시민에게 개방하려는 것입니다. 화백님의 평창동 집은 화백님이 30년 이상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던 거주 공간이자 작업실로 역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200여 점의 완성 작품 위주의 미술관을, 서울에서는 화백님의 거주 공간과 작업 공간과 아카이빙 중심의 전시관을 한 건축가가 맡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곳에는 카페와 뮤지엄숍, 교육실과 영상실도 들어가게 되어 한국에서 제대로 된 최초 화가의 집으로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습니다.
종로구립 김창열 작가의 집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Q. 연세대학교에서 studio X_공간건축스튜디오를 통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설계 스튜디오의 진행방식이 궁금하다.
그간 10년 넘게 설계스튜디오를 진행해 오며 한국 건축 교육의 장단점을 경험하게 되었고, 한편에서는 한계도 느꼈습니다. 우선 인증제도를 맞추기 위해 설계는 학년별 오피스, 주거, 문화 복합 시설 등 기능으로 구분되어 진행되는데, 오브젝트 설계가 아닌 서브젝트 설계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즉, 설계 스튜디오는 스튜디오 지도교수에 의해 커리큘럼이 작성되고, 그 프리젠테이션을 듣고 학생들이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제 스튜디오에는 외국인 학생을 포함하여 3, 4학년이 함께 스튜디오 수업을 하는데, 공간 구축의 가장 기본적인 공간면에 대한 이해와 시나리오에 따른 공간을 형성합니다. 1학기는 ‘수평 공간건축’으로 노들섬 자연을 대상지로, 2학기는 ‘수직 공간건축’으로 세운 2지구 도시를 대상으로 2개의 상반된 공간체계와 기능을 가지고 설계하게 되며, 공간의 이야기성(Narrative architecture)에 대한 중심화두가 형성됩니다.
세미나와 워크샵을 병행하기도 하는데, 중심이론적 기반으로는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의 5원칙과 주택의 4구성, 데스틸, CIAM을 통해 모더니즘을 이해한 후, 2학기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후기구조주의, 팀텐과 아키줌, 메타볼리즘 등을 연구하여 이론, 역사, 철학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넓힙니다. 1년의 과정은 다시 도큐멘테이션 되어 책으로 만들어질 예정으로, 연세대학교의 studio X가 건축 교육의 새로운 모델로 작용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스튜디오 X 공간건축스튜디오 이원진 학생
Q. 앞으로의 계획은.
서울, 런던, 맨체스터 등 다양한 환경속에서 여러 유형의 사무실에서 경험을 하고,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이후 플랫/폼의 팀원들과 함께 고민하며 건축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전시, 문화 시설 및 기념관 등 좋은 의뢰인들의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의 본질인 공간을 다루기에 좋은 활발한 건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최근에는 제 자신을 넘어 교육과 사회적인 면에서도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통해 메시지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다양함을 기반으로 하지만, 오히려 그 경계를 크로스오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술, 음악, 사진, 가구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있기에 파리의 살롱 문화와 같은 장소를 한국에 만들고 싶습니다. 김수근 선생님의 공간사옥과 성필관 선생님의 아트 포 라이프 같이 크로스오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문화 부흥의 발로를 이루고 싶습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홍재승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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