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6
나성숙 작가는 옻칠을 하는 공예가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시각디자인과 교수였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로 활동하다 2018년 정년퇴임을 한 그녀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시각디자인을 가르치면서도 17년간 옻칠 작업을 해왔다. 디자인학과 교수인 그녀가 어떻게 옻칠을 하게 됐을까. 그녀에게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나성숙 작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계동길에 위치한 서로재를 찾았다. 그녀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옻칠학교로 운영하는 공간. 그녀의 옻칠 작품으로 장식된 벽면과 기둥, 바닥이 한옥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녀에게 옻칠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다. “여성시각디자이너 협회장, 한국여성디자인포럼 회장 등을 지내며 세계 디자인 행사를 기획하는 등, 여성 디자이너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무척 활발히 했었어요. 그런데 디자인을 하던 여자가 옻칠 작업을 하게 된 데에는 엄청난 사연이 있지 않겠어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슬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누구보다 활동적이었던 그녀는 너무나 큰 슬픔에 빠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너무나 허망했죠. 남편이 떠난 슬픈 마음을 두 권의 책으로 써냈습니다. 그래도 위로가 되지 않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저희 삼촌께서 절 부르시곤 “꿈이 없어 슬픈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슬픔 뒤엔 반드시 꿀단지가 있다는 말씀과 함께요. 절망 속에 살고 있던 저에게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지만 그 말을 계기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성숙 작가의 옻칠 전시 전경
그녀는 예전부터 옷을 직접 지어 입을 정도로 워낙 손재주가 좋았다. 그런 그녀에게 서울대 은사였던 양승춘 선생이 전통을 권했다. “양승춘 선생님의 정년퇴임식을 해드렸는데, 교수님께서 고맙다고 하시며 저에게 당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대신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권해 주셨던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전통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전통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렇게 전통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이죠. 옻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때였고요.”
그녀는 옻칠 작가 전용복 선생으로부터 옻칠을 배웠다. “어느 날 신문에서 옻칠 전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봤어요.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렸던 전용복 선생의 전시였죠. 직접 시연을 하시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 매일같이 전시장에 찾아갔고, 그때의 인연으로 일본까지 따라가 전용복 선생으로부터 옻칠을 배우게 됐습니다.”
나성숙 작가의 옻칠 전시 전경
옻칠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꿈을 갖게 된 그녀는 한국과 일본, 중국의 옻칠을 공부했고, 우리 전통의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 “전통에서 우리의 미래를 봤습니다. 그런데 전통이 너무 틀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안타까웠죠. 전통을 하시는 분들도 배타적이었고요. 과거엔 생활이 전통 그 자체였고 주변 모든 것이 전통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전통을 너무 어려운 것, 먼 것으로만 생각해요. 전통을 거룩하게만 생각하면 절대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녀는 대중이 우리의 전통을 더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우리의 전통이 더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나성숙 작가의 옻칠학교 서로재 수업 전경
그렇게 그녀는 옻칠학교를 만들었다. 북촌에 한옥을 직접 구입해서 2006년 봉산재라는 아트센터의 문을 연 그녀는 그곳에서 학생들에게 옻칠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녀의 옻칠학교는 소문이 났다. 대기업의 회장 부인부터 의사들, 일반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녀의 옻칠학교를 찾았다. 봉산재에서 퇴직을 할 때까지 14기의 옻칠학교를 운영했던 그녀는 이후 서로재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옻칠학교는 벌써 25기까지 운영됐다.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우리 서로 다리가 되어'
그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성장시키길 바랐다. 그래서 그녀는 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선보이는 ‘서로재 이야기’를 기획, 전시를 개최하기도 한했다. 얼마전 청주에서 열린 청주공예비엔날레에 초청을 받은 그녀는 이번에도 학생들과 함께 참여해 ‘우리 서로 다리가 되어’라는 주제로 옻칠 작업을 통해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었고, 이 작품은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소장품으로 선정, 청주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나성숙 작가가 개발한 컵. "백자토를 산청도자에서 재벌로 구워 와서 사포 220번 치고 생칠하고 오븐에 180도 20분, 200도 10분 굽고 사포 400번 치고 흑칠하고 물사포 800치고 흑칠하고 물사포 1200치고 주합칠 올리고 금박하고 손잡이 주칠하다"고 설명했다.
서로재엔 옻칠로 작업한 그녀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옻칠 작업을 하며 옻칠의 효능과 장점을 본 그녀는 도자기에 옻칠을 하고 금을 붙여 만든 컵을 개발해 선보이기도 했다. “옻칠엔 특별하고 훌륭한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균을 죽이는 효능이 있죠. 오랜 시간 작업을 하면서 직접 체험한 부분이 많아요. 전통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전통을 더 알리고 일상에서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알려야 합니다.”
나성숙 작가의 작품들
수많은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 옻칠 작업은 ‘정성’으로 이루어진다. “작업의 과정 자제가 어떤 치유를 가져다주는 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옻칠을 배우러 오시는 분들도 그런 것들을 느끼시는 것 같고요.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도 시간과 공을 드리는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 크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옻칠의 매력에 빠지는 것 같아요.”
그녀는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자 한다. “사람은 칭찬을 많이 들으면 교만해집니다. 전 늘 그 점을 경계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똑똑하다 해도 교만해지는 순간 그 자리에 머물게 되는 것이죠. 더 이상의 발전이 없는 겁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자신의 작업을 할 때도 늘 이 점을 마음에 새긴다.
옻칠 작업에서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성’이다. “무엇이든 고유의 물성이 있어요. 유화는 유화, 수채화는 수채화, 자개는 자개만의 물성, 특성이 있습니다. 자개를 가지고 모래의 느낌을 내려고 하면 낼 수가 없는 것이죠. 자개는 반짝이고 영롱해야 자개의 맛이 살아납니다. 전 제가 사용하는 재료의 물성을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중간과정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는데, 이 아름다움이 최대한도로 발휘될 수 있도록 작업하고 있습니다. 고유의 물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니까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옻칠 작업의 중간과정에서 그것만이 지닌 아름다움을 찾아낸 것이 그녀의 작품세계를 특별하게 만든 것이다.
오는 12월부터 두 달간 개인전을 갖는 그녀는 현재 작업 준비에 한창이다. 내년 전시일정도 가을까지 이미 잡혀 있다. 이 밖에도 그녀는 할 일이 많다. “전통을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고자 하는 것이 제 목표예요. 전통방식을 활용해 더 많은 제품을 개발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늘 전통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나성숙 작가(bukchon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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