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30
한글이 디자인과 무슨 관계가 있나 할 수 있겠다마는 한글은 디자인에 무궁무진한 영감을 줄 수 있는 보고라 할 수 있다. 형태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글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고자 한글학자이자 한글운동가인 김슬옹 박사를 취재했다.
김슬옹 박사
김슬옹 박사는 지난 45년간 한글운동을 펼쳐오며 한글을 알리는데 평생을 바쳐왔다. 그는 한글을 지키고 나누고자 쉬운말 쓰기, 일본말 몰아내기 등 우리말과 글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왔고, 세종의 정신을 전하기 위해 책을 집필하고 강의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민운동과 더불어 학문 노력을 함께 펼쳐온 그는 여러 논문 연구와 저술을 통해 대한민국 최고 학술상인 40회 세종문화상 대통령상 학술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글이 갈 길에 대해 ‘한글산업’을 말한다. 한글에 담긴 높은 가치들을 빛내기 위한 이 방법은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으로, 생활 속에서 빛나는 한글 산업에 대한 발전을 뜻한다.
김슬옹 박사로부터 한글운동과 관련된 활동 이야기, 한글의 중요성, 우리가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점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김슬옹 박사, 훈민정음해례본연구 세 번째 박사학위 2020_ 연세대교정
지난 45년간 한글학자이자 한글운동가로 활동해오고 계십니다. 한글 연구에 일생을 바쳐 오셨는데, 박사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인가요?
1977년 철도고등학교 1학년 10월부터 한글운동을 해 왔으니 45년을 넘어섰습니다. 제 한평생을 바치게 된 동기는 역시 한글의 두 가지 의미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키고 싶은 ‘한글’과 나누고 싶은 ‘한글’의 의미입니다.
지키고 싶은 ‘한글’은 한글을 거부하고 핍박해온 지독한 문자 사대주의, 언어 사대주의에 대한 저항입니다. 고 1때 처음으로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제대로 보았는데, 조사와 순우리말만 한글이고 한자어는 거의 한자로 표기했습니다. 1446년에 한글(훈민정음)이 반포됐고 1977년은 무려 531년째이니 무려 500년 넘게 한글과 우리말을 깔보았던 것입니다. 그때의 분노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국어시간에는 한글이 최고의 과학적인 우수한 글자라고 가르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몇 해 전인 2017년, 누구보다도 더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 발전을 위해 온 몸을 바치다 돌아가신 고 김재원 국립한글박물관장님의 국립한글박물관 영결식조차 한자로 뒤범벅이었을 정도이니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한자 사대주의는 상상 이상입니다. 지금은 이것이 로마자 사대주의로 바뀌어 서울지하철의 생명과 관련된 전화기조차 ‘EMERGENCY’라고 표기돼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니 한글운동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나누고 싶은 한글의 의미는 쉽고도 과학적인 문자가 주는 사람다움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의미입니다. 세종이 한글을 반포하면서 담은 의미는 사실 거창하지 않습니다. 쉬운 문자로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저는 7개 국어(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에스페란트어)를 배운 언어학자로서 결코 한자와 로마자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역사와 문명을 지켜오고 지금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문자들이죠. 그런데 한자든, 로마자든 어려운 점이 있어 평등의 문자는 되지 못합니다.
한글은 또한 천지자연, 우주의 기운을 담은 철학, 곧 ‘하늘의 이치대로 만든 이 문자를 쓰는 백성은 하늘의 백성이다’라는 숭고한 가치도 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직선과 점, 원만으로 이루어진 글꼴 디자인은 얼마나 아름답고 눈부십니까. 이러니 제가 평생을 한글에 미치지 않을 수가 있나요?
한글의 길 찾기를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해오셨나요?
저는 세종과 헐버트, 주시경, 최현배, 이 네 분을 닮으려고 평생을 노력해왔습니다. 네 분의 공통점은 학문과 운동을 병행하신 것입니다. 세종은 임금으로 한 정책 차원이지만 거대한 한자 세력에 맞서 어렵게 펼친 정책이니 운동과 비슷한 측면도 있습니다.
운동 차원의 노력으로는 한글전용과 쉬운말 쓰기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한글학회 부설 전국국어운동고등학생연합회(한글나무)에 가입해 고등학생들의 한글운동, 우리말글 운동에 참여했고, 대학교 때는 연세대 국어운동학생회(국운회, 한글물결)에 가입해 대학생 한글운동, 우리말글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전국국어운동대학생연합회를 재조직해 동아리라는 말을 퍼뜨리기도 했죠.
1988년 국민 모금으로 한글전용 신문인 한겨레신문이 나올 때까지는 주로 한글전용 운동이 주된 노력이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본말 몰아내기 등 우리말글 정체성 찾기 운동을 함께 했습니다. 그 뒤로는 쉽고 정확한 우리 말글쓰기 운동을 하고 있고 지금은 세종 정신으로 공공언어를 바로잡는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으로 전문어 쉽게 다듬기 등 다양한 사업과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여성과 한글발전>
<조선시대의 훈민정음 발달사>
학문적 노력으로는 세 개의 박사 논문을 통해 훈민정음 역사와 해례본, 세종 정신 등을 규명했습니다. 또한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 여성과 한글 발전>, <세종학과 융합인문학>,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개정증보판)>, <조선시대의 훈민정음 발달사>(우수 학술도서) 등의 책을 썼고, <우리말 산책>, <웃는 한글>, <위대한 세종 한글> 등 대중 교양서 포함 단독 34권, 공저 67권, 편저 2권, 번역서 3권 등 모두 106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밖에 ‘기역, 디귿, 시옷’ 대신 ‘기윽, 디읃, 시읃’을 최소 복수표준어로 해야 한다는 국민 청원 운동도 했습니다.
지금은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박이정)이라는 책을 펴내(2017년) 온국민이 함께 읽기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줌)으로 세 달 간 강의하는 과정을 16기째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무료 봉사로 한글, 한국어교육을 하고 있는 한글학교 선생님들께는 애니하우스썬 고혜라 대표의 후원으로 100% 무료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세종 한글>
가장 보람을 느끼시는 활동이 있으시다면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세종의 한글 정신을 제대로 담은, 한글 제자 원리를 자세하게 설명한 해례본 방식을 그대로 구현한 한글교육책 <위대한 세종 한글>을 펴냈다는 것이 제일 보람스럽습니다. 자음은 ㄱㅋㄲ(기키끼)와 같이 같은 곳에서 발음나는 글자들을 묶어서 배우고, 세종처럼 가장 편한 모음 ‘ㅣ’를 붙여 읽으면서, 모음은 가장 간결한 직선인 ㅡ ㅣ를 먼저 배우는 방식입니다. 여기다 한국어만의 장점인 흉내말, 해례본의 이야기 방식의 판타지 동화를 적용한 한글 교육책입니다.
한글(훈민정음)의 창제, 반포,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요?
1443년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 한글이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1446년 반포 이후 조선시대 내내 한글은 주류 문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에게 한자는 생명이고 신분 유지의 핵심 장치였으니 한글을 주류 문자로 인정할 수 없었죠. 심지어는 <훈민정음> 해례본 저술에 참여한 8인(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도 개인적으로 한글을 쓰지 않았고, 18, 19세기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와 같은 실학자들조차 한글을 공적 문자로 인정하지 않았을뿐더러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왕실 여성들, 양반가의 여성들은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큰 기둥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한글 사용과 발전 측면에서 주요 사건을 짚어보겠습니다.
첫째는 1443년에 세종의 한글 창제와 1446년 세종의 <훈민정음> 해례본 간행을 통한 훈민정음 반포일 것입니다. 해례본은 한글이 자리잡고 끝없이 뻗어나갈 수 있는 뿌리를 만든 것이지요.
둘째는 1459년에 세종의 둘째 아들인 세조가 훈민정음 언해본이 들어 있는 한글 불경언해서 <월인석보> 간행한 것입니다. 해례본은 한문본이라 누구나 볼 수 있는 책은 아니었으므로 한글은 해례본 가운에 세종이 직접 지은 정음편을 언문으로 번역하고 풀이한 언해본과 이를 적용한 한글불경서인 월인석보가 사찰 등을 통해 한글이 뻗어나가게 한 줄기 역할을 한 것이지요.
셋째는 1449년 한글 반포 3년만에 지배층의 핵심 권력이었던 하연 대감 담벽락에 붙은 한글 벽서이지요. 세종의 한글 반포가 성공한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죠.
넷째는 왕실 여성들과 양반가 여성들의 한글 사용입니다. 제가 <조선시대 여성과 한글 발전>이라는 책에서 규명했듯이, 세조의 며느리였던 인수 대비(소혜 왕후, 1437~1504)의 <어제 내훈>과 같이 왕실 여성들의 한글 사용은 한글의 공적 힘을 불어넣는 구실을 햇고, 안동 장씨 (1598~1680)가 지은 요리책인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1757~1824)가 지은 백과사전인 <규합총서> 등은 남성들이 하지 못한 한글 실용서의 최고봉이 되었고, 김만중 딸인 광산 김씨 상언은 한글로 된 상소문이 제도 차원의 사용 예가 되었고 조선 후기 양반가 여성들은 한글소설이 널리 퍼지는 큰 물줄기가 되었습니다.
다섯째는 선조의 사서(논어, 맹자, 중요, 대학) 언해 완성입니다. 사대부들이 한자와 한문에 절대 권위를 부여했던 성리학 경전인 사서를 한글로 번역하고 풀이한 것은 지배층이 한글을 주요 학문 문자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18, 19세기 실학자들이 한글을 학문 문자로 거부한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였죠.
여섯째는 조선 초기 1490년 무렵 군관을 지낸 나신걸(羅臣傑)이 부인 신창 맹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로, 2011년 대전 유성구 부인 묘에서 발견되었는데 함경도에서 보낸 편지인데 이는 한글이 50년도 안 돼 남성들의 보조 문자로 자리잡은 것을 의미합니다. 멀리 타향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소소한 가정사를 챙긴 사연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한문 편지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편지 쓴 이의 섬세한 감정과 우리말의 다정다감한 표현이 살아 있어 더욱 감동을 줍니다.
일곱째는 17-19세기에 한글소설(홍길동전, 춘향전),과 한글가사, 한글시조 등이 퍼져나간 것입니다.
여덟째는 1889년 미국인 헐버트가 23살에 한국에 와서 26살에 한글 우수성과 과학성을 미국 <뉴욕트리뷴지>(현 뉴욕타임즈)에 발표하고, 1891년에는 최초 한글전용 교과서 <사민필지> 간행한 것입니다.
아홉 번째는 1894년 고종이 한글(국문)을 주류 문자로 선언하고(내각 지시), 1895년에는 온나라에 반포한 것입니다. 비로서 지배층이 한글을 한자보다 더 중요한 주류 문자로 선언한 것이죠.
열 번째는 1896년 서재필과 주시경, 한글전용 신문 <독립신문>을 간행한 것입니다. 우리 손으로 펴낸 본격적인 한글전용 신문인 셈이죠. 이것이 1985년 스포츠서울 한글전용, 1998년 한겨레신문 한글전용으로 이어진 것이죠.
열한 번째는 1933년 10월 29일 한글날에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 발표한 것입니다. 말과 글의 주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우리말글의 근대적 표준 체계를 세운것입니다.
열두 번째는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이용준)과 소장(전형필), 그리고 이 책을 해설한 최현배의 한글갈(1942) 간행입니다. 한글의 온전한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열세 번째는 2005년 국어기본법 제정과 한글전용 실현입니다. 이때부터 완전한 공문서 한글전용 시대, 누구나가 평등하게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민주적 한글 사용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북한은 1947년부터 한글전용을 실시했지만 근대적 민주 문자로 전환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죠.
<훈민정음> 우리가 해례본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훈민정음> 해례본은 인류 최고의 고전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문자해설서가 아닙니다. 최고의 학문과 사상을 배경으로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나누라는 사람다움의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해례본에서 무엇을 알 수 있나요?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한글을 만든 목적과 근본 뜻, 창제 원리, 운용 방법 해설, 역사적 의미를 비롯해 새 문자의 다양한 예들이 실려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직접 쓴 서문에는 한자로는 우리말을 제대로 적을 수 없어서 우리말에 적합한 새 문자를 만든다는 자주정신,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도 쉬운 문자로 마음껏 소통할 수 있게 하려는 애민 정신,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우리 글자를 쉽게 익혀 편안하게 살게 하려는 실용 정신 등이 담겨 있습니다.
이를 자세하게 풀어 쓴 정음해례편에는 훈민정음에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수학적 보편성, 과학적 보편성, 철학적 보편성, 음악적 보편성, 민주적 보편성을 자세하게 풀어 놓았습니다. 훈민정음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똑같은 하늘의 백성이라는 놀라운 사상이 쓰여 있는 책이 해례본입니다.
한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점,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첫째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종이 왜 만들었는지, 그 이유와 맥락이 훈민정음 해례본, 언해본에 쓰여 있는데도 이를 부정하고 한자음 발음기호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둘째는 기본 용어조차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한글과 순우리말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고, 입말과 글말을 구별하지 않고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글은 좁은 뜻으로는 1910년대 이후 명칭이지만 넓게 보면 15세기 훈민정음도 가리킬 수 있는데(15세기 한글), “세종이 창제한 한글”이라고 하면 훈민정음과 한글을 구별할 줄 모른다고 시비 거는 이들도 꽤 있습니다.
셋째는 한글에 담긴 소중한 사람다움의 가치를 망각하거나 모르고, 끊임없이 문자 사대주의에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한글은 우리말을 담는 그릇인데, 우리말의 섬세한 발달 덕에 세종이 뛰어난 한글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이를테면, 우리말에는 음양의 기운이 담겨 있는 세종이 모음의 수직선 수평선 원리를 이용해 다음과 같은 놀라운 문자를 만들어내지요.
이런 저런 이유로 ㄱ부터 ㅎ까지 14가지 항목으로 ‘한글교양’을 정리해 <한글교양>(2019)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한글>에 대해 소개해 주신다면?
지역별로 보면 30여 곳 정도의 한글 관련 유적지를 직접 답사해 쓴 글입니다. 그야말로 발로 뛰어 쓴 한글이야기죠. 각 지역에 녹아 있는 한글 역사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짚어본 한글문화유산답사기입니다.
첫째 마당에서는 한글 체험길의 시작인 ‘한글가온길, 세움길을 걷다’에서는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되어 현대 한글로 정착되기까지의 역사를 짚어봤습니다. <훈민정음> 서문에 새겨진 세종의 꿈은 담은 한글 새김돌을 시작으로 가장 오래된 한글학회를 이어온 사람들, 두 한글의 중시조 주시경과 헐버트가 있는 주시경마당, 1만 1,172인의 한글에 대한 꿈을 담은 한글글자마당,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광화문광장까지를 함께 걸어보았습니다.
둘째 마당 ‘훈민정음의 발자취를 찾아서’에서는 훈민정음 창제 공간들과 탄생 과정, 그리고 함께한 이들을 담았습니다. 당시 비밀 과업이었던 한글 창제의 공간이었던 경복궁과 창덕궁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훈민정음 반포의 산실인 집현전에 담긴 세종의 발자취와 뜻을 찾았죠.
셋째 마당 ‘오직 하나의 글, 한글 유적지’에서는 세종대왕이 고이 잠든 한글의 도시 여주에서 미완성 한글의 유적지까지를 고루고루 담았습니다.
넷째 마당은 주로 한글 박물관이나 기념관 등을 답사했습니다. 천년 문자 계획을 품은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최초 한글박물관인 우리한글박물과 최초로 한글을 주류 나랏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김만중 남해유배문학관까지 한글 탄생에서 지금까지의 천 년, 또 다시 천 년이 지난 미래 한글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한글>
‘한글의 흔적들을 찾아 기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그 흔적들을 찾으셨나요?
2009년에 한글학회에서 <한글문화지도>를 기획해 보고서로 만든 바가 있습니다. 이때는 기획은 제가 했지만, 직접 답사는 못 다녔는데, 그 뒤로 틈만 나면 한글 유적지를 직접 답사해 짬짬이 글을 썼고, 이번 6개월간 집중해서 종합 정리를 한 것입니다. 서울 광화문의 한글가온길은 최근 5년간 60여 차례 해설까지 했습니다.
첫째 마당 한글가온길, 한글세움길을 걷다
-한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길 _서울시 종로구 신문로1가 한글가온길
-한글의 두 거인, 주시경과 헐버트 _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주시경마당
-겨레의 말과 글을 지킨 가장 오래된 학회 _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한글학회
-한글글자마당, 1만 1,172자의 과학 _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세종로공원
-훈민정음 28자와 12척의 뜻을 아로새기다 _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둘째 마당 훈민정음의 발자취를 찾아서
-비밀 과업이었던 한글 창제의 공간들 _서울시 종로구 경복궁과 창덕궁
-훈민정음 반포의 산실, 집현전 _서울시 종로구 경복궁 수정전의 집현전
-훈민정음 인재 양성소, 사가독서 전당 _서울시 은평구 진관사 한글길
-훈민정음 창제 마무리와 보급을 위한 야외 연구소 _충청북도 보은군 초정행궁
-훈민정음 희방사본을 찾아서 _경상북도 영주시 희방사
-훈민정음을 만든 8인의 공로자들 _《훈민정음》 해례본 탄생부터 보존까지
-훈민정음 정신을 드높인 《동국정운》 대표 집필자 _경기도 의정부시 신숙주 묘
-훈민정음을 지킨 사람들 _해례본 발견자 이용준과 해례본 지킴이 전형필
셋째 마당 오직 하나의 글, 한글 유적지
-한글의 아버지가 잠든 곳 _경기도 여주시 세종 영릉
-세종대왕의 모든 것을 간직한 곳 _서울시 동대문구 세종대왕기녑사업회와 세종대왕기념관
-훈민정음 보급의 일등공신 신미대사 _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 복천암, 정이품송공원
-한글 탄압의 주인공 연산군과 한글 지킴이 정의공주 _서울시 도봉구 연산군과 정의공주 묘
-우리말 사전 탄생의 주인공 이극로 _경상남도 의령군 두곡마을
-한글이 외면받던 시기에 세워진 한글 비석 유적지 _서울시 노원구, 경기도 포천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새재
-미완성 한글 유적지 _서울시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근처 세종 생가, 전라남도 나주시 금안 한글마을, 세종시
넷째 마당 천 년의 문자, 한글 기념관과 한글마당
-훈민정음 천 년의 문자 계획 _서울시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한글이 목숨 _울산시 중구 외솔기념관
-오랜 세월 한글 유물을 모으고 간직한 개인 한글박물관 _충청북도 충주시 우리한글박물관
-이윤재, 허웅 두 한글 거인이 자란 곳 _경상남도 김해시 김해한글박물관
-큰사전 완성의 대들보 _전라북도 무주군 정인승기념관
-최초 한글 소설의 주인공 홍길동 생가 _전라남도 장성군 아치실마을, 홍길동 테마파크
-한글을 나랏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양반 한글 문학가 _경상남도 남해읍 김만중 남해유배문학관 간단히 보기
한글이 세계의 중심이 되려면 어떤 작업들이 필요할까요?
한글이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한글의 세계적 가치, 곧 보편적 가치, 독창성 등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예술이나 산업으로 꽃피우게 하는 것입니다. 한글대학교나 훈민정음 대학원 대학교 등을 세워 그야말로 한글 영재를 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글은 학문으로 보나 관련 분야로 보나 일종의 융합 결과물이므로 국어국문과나 국어교육과에서만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한글혁명>
한글,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할까요?
이제 한글산업을 일으켜야 합니다. 한글에 담긴 숭고한 정신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생활 속의 한글을 빛내는 한글산업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저는 <한글혁명>이라는 책에서 세종은 인공지능 시대를 예견하여 한글을 발명한 것 같다고 하면서 한글이 인공지능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밝힌 바 있습니다.
이제 한글산업을 통해 한글에 담긴 보편적, 과학적, 예술적 가치도 빛낼 수 있습니다. 한글 디자이너와 같은 전문가들 노력도 소중하고 한글은 누구나 빛낼 수 있는 쉬움의 가치도 있으니 누구나 참여해서 빛낼 수 있습니다. 2022년에 한문화재단 후원으로 세계 한글한국어 동영상 공모전을 했습니다. 45개 나라에서 306편이 응모되었는데 한글에 대한 세계인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수상작 보기)
왼쪽부터 김슬옹 박사,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 조현수 프로방스 출판사 대표. 책은 2015년에 간행한 복간본_ 간송미술관 옆 사무실에서(2023.3.14)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올해 900여쪽 정도의 <한글학>(경진출판)을 펴내 한글에 관한 이론을 총정리할 것입니다. 지인들과 ‘한글닷컴’을 세워 한글에 관한 모든 문화와 산업을 네트워크로 묶어 명실상부한 한글융합 누리집(포털)을 만들 생각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28개 언어로 번역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훈민정음 해례본의 모든 글꼴을 그대로 살려 내용을 완전하게 소개한 영문 번역은 제가 캐나다의 조던 드웨거(Jordan Deweger) 선생님과 번역하여 펴낸 책밖에 없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는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를 마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한글창제 580주년으로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인 간송본을 다시 복간하여 펴내기로 간송미술관과 3월 14일 협약을 맺었습니다. 간송본 원본은 2015년에 필자의 해제로 교보문고와 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 최초로 복간됐는데, 3천 질이 1년만에 다 나가 절판됐다가 이번에 프로방스 출판사에서 다시 복간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언해본 복간본과 함께 펴내기로 했습니다.
이번 2차 복간본에는 제가 해례본을 366문장 체제로 번역한 최초 번역이 실릴 예정입니다. 누구든지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장과 짜임새라고 자부합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김슬옹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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