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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예술은 남는 시간에 태어난다 <잉여의 시간 展>

2007-04-03


잉여의 시간, 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뭔가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막상 그 의미는 참으로 소박하다. 풀이하자면, ‘남는 시간’.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있어 '남는 시간'은 가장 소중한 개인시간인 동시에 곤혹스러운 시간이기도 하다. 직장, 사회, 이런 조직에서 떨어져 나와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 꽉 짜인 생활에 자신을 맡기고 있던 이들에게 이 시간은 가장 지루하고 심심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케이블TV란 것이 있는 거다. 밀린 TV시청에 열중하기!
직장인들과는 다른 일상을 보내는 작가들이지만 그들이라고 남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을 리는 없다. 주된 작업 시간 외에 남는 시간 동안 과연 작가들은 뭘 할까.

새롭게 개관한 더갤러리의 개관전시회 <잉여의 시간 展> 은 작가들을 상시로 방문하던 아트디렉터의 발상에서 시작되었다고. 그들의 작업실을 장식하고 있는 뭔가 예사롭지 않은 작품들의 정체를 물었을 때, '아, 남는 시간에 만든 거에요.'라는 대답으로 돌아온 잉여시간의 산물들이 그 자체로도 하나의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 <잉여의 시간 展> 은 그러므로 작가 개인의 작품세계에 더욱 살갑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취재| 남궁경 기자 ( knamkung@jungle.co.kr)


‘대안공간의 메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홍대 인근 지역은 다양한 대안문화공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곳에 얼마 전 새롭게 문을 연 더 갤러리the gallery는 정통 갤러리라는 역차별성을 지닌다. 대안공간에 신진작가들의 발랄한 작품 세계가 주로 펼쳐진다면 더 갤러리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위주로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이 지역 특유의 발랄한 상상력을 외면할 수는 없을 터. 이들의 개관기념전인 <잉여의 시간> 은 그 정통성과 대안성의 절충 지점을 보여준다. 작가들의 ‘놀이의 산물’와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잉여의 시간 展> 은 앞으로 더 갤러리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잉여의 시간 展> 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작가들의 상상력이 비롯되는 지점이다. 예술이 ‘잉여의 시간’을 담보로 한다는 데서 이 전시는 근본적이다. 이들이 뭐 하고 노는지를 살펴 보는 것은 이들의 작품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들여다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술은 ‘어렵고’ ‘높은 곳’에 있는 것이라는 편견이 ‘재밌고’ ‘일상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잉여 작품’ 중에는 작가가 20년 동안 지니고 있던 종이컵도 있지만 원래 갖고 있던 것에 전시를 위해 수량을 추가한 것도 만날 수 있다. 종이에서 나무, 수건, 뭔지 모를 껍질 등 재질도 다양하다. 정 볼일이 없어도 화장실은 빼놓지 말고 들러봐야 한다. 여기에서도 잉여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잉여의 작품들은 유희의 미학을 한껏 뽐낸다. 분분한 해석과 분석에서 벗어나 ‘아무 이유 없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잉여 작품들은 만드는 이들에게, 그리고 보는 이들에게도 여유로움을 주는 것 같다. 잉여, 그건 남아도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창조의 시간으로 불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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