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리뷰

<서양식 공간예절:Western Style Courtesy of Space>展

2007-01-23

서양식 공간예절?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특별한 이름의 전시가 있다.
오는 2월 2일부터 4월 1일까지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양식 공간예절 : western style courtesy of space> 전. 5명의 한국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그 주제를 ‘공간’으로 채택하여 한국의 현대사진의 단면을 제시하고 한국의 젊은 사진작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양식 공간예절에 대한 자조적 패러디, 오브제와 인물, 풍경 등의 전통 소재에서 탈피한 ‘공간’에 대한 주목 등 흥미로움이 가득한 서양식 공간예절을 정글에서 미리 만나보자.

취재 | 박현영 기자 ( hypark@jungle.co.kr)
자료제공 ㅣ 대림미술관 (720-0667)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초보자들도 전문 포토그래퍼 못지 않게 사진을 찍고 이를 온라인 포토앨범이나 개인 홈페이지, 미니홈피, 블로그 등을 통해 쉽게 공유함으로써 사진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그런 만큼 재능있는 작가들의 사진전에 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2000년을 전후로 사진은 한국 현대미술 시장 속에서 전례없는 예술적 지위와 사회적 대우를 누리고 있으며, 사진 전시 역시 급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진이 하나의 구체적이고 분명한 주제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적전시를 선보여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양식 공간예절> 은 전문적이고 심도있는 사진 전시의 구성을 위해 계원예술대학 사진예술과 이영준 교수가 기획을 맡았으며, 그 주제를 “공간”으로 채택,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5명의 젊은 사진작가들이 발견한 “공간”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한다.

한국의 생활습관이나 문화적 취향은 급격히 서구화되지만 줄서기나 새치기 안 하기 등 공공공간에서의 예의는 아직도 원시적인 수준이다. 서양식 공간예절은 우리에게 들어와 있으나 영원히 실현되지 못할 어떤 이상 같은 것이다.
그래서 ‘서양식 공간예절’이란 우리가 추구하지만 문화적, 관습적, 체질적 한계로 말미암아 실현하지 못하고 멀리서 흉내만 내는 그런 공간적 구성습관에 대한 전시이다.
물론 서양식 공간예절이라고 딱 못 박을 수 있는 그런 예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제목이 지칭하는 것은 오히려 패러디의 의미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예절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서양의 패러다임을 많이 따르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그 정체성을 자조적으로 들여다 보자.

이번 전시는 한마디로 그 간의 사진의 대상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오브제, 인물, 풍경 등의 전통 소재에서 탈피, 사진의 대상을 변화시킨다. 즉, 사물의 관계들이 얽히는 장소로서의 ‘공간’에 대한 주목으로 시작한다. 그 동안 사진이 물질위주로 특정한 대상에 집중했었다면, 최근의 사진가들은 점차 ‘공간’에 집중하고 있는 것.

이처럼 ‘공간’에 대한 다양한 모색을 보여주는 5명의 젊은 사진작가들, 김상길, 구성수, 김도균, 이윤진, 고현주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 <서양식 공간 예절> 은 각기 ‘공간’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최근 국내외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이들 5명의 사진작가들은 한국의 권력기관을 촬영한 유형화된 작업, 한국의 문화적 공간, 건축 공간, 사물이 사라진 텅 빈 공간, 실내 공간과 같은 한국 사회와 우리의 일상에 현존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한다.

다양하고 실험적인 접근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공간’을 사진적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을 만들어 줄 것이다. 동시에 서양의 패러다임을 닮아가고 있는 오늘날 한국의 공간들은 어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베른트 베혀(Bernd Becher, 1931~)의 제자로 독일 즉물사진의 전통을 계승한 이윤진은 정확한 세부묘사와 탄탄한 화면 구성으로 객관성과 조형성을 동시에 획득한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시선의 밀도가 가득 찬 실내 공간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내어 우리의 눈과 두뇌 그리고 카메라를 숨쉬게 해준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취하지 않는 시선의 높이와 위치에서 바라보면서, 의식하지 못했던 공간으로 카메라를 가지고 개입하여 공간을 재발견하고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일상에서 눈 여겨 보지 않는 사적인 공간과 그 속에 있는 사물과의 연계성을 직시한다.
또한 공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공간감과 거리감에 집중하면서,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책상과 의자의 거리, 의자와 의자 사이의 미묘한 공간감을 포획하였다.


고현주의 작품은 최대한 권위적으로 느껴지게 하기 위해 웅장하고 넓어 보이도록 촬영된 사진들로 대형 사이즈로 인화되어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공간을 폭로, 격하하려는 의도가 아닌 냉정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카메라의 눈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현실과 일상에 내재하고 있는 권력의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지 그리고 그 구조적 문제와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차분히 들여다보게 한다.

또한 동시대 한국의 유형화된 공간에 관심을 갖고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기관들을 카메라에 담아, 법무부장관 집무실, 국회의장실, 대법원 대법정실, 헌법재판소 대회의실, 국방부 로비와 같은 일반인의 출입이 힘든 정치적 장소의 내부를 촬영한 사진들은 하나의 점으로 질서있게 집중된 배치로 권력기관의 권위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양적 성장과 외형적 결과물을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던 근대화의 일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인적이 없는 한 임대 사무실, 미술관의 계단 통로 등 김상길의 사진에 담긴 공간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설다. 이러한 사람들, 사물들이 모두 삭제된 채 텅 비어버린 공간에서 오는 기이함과 낯설음을 김상길의 카메라는 발견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그의 작품 ‘Office for rent 02’에서 보듯이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공간감으로 인해 바닥은 더욱 평평해 보이며, 흰색의 빛은 공간을 탈맥락화하고, 중립적이며, 고요하게 만들고 사물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공간 위에서 빛나고 있는 규칙적인 인공조명은 환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인적이 없는 공간은 적막하기 보다는 오히려 텅 빈 공간이 집중적으로 조명받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알맹이가 빠져버리고 그 틀만 남은 듯한 공간은 그 내부에서 수없이 오갔을 사람과 사물들의 흔적, 메시지와 소통 등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를 통해 그는사물이 사라진 텅 빈 낯선 풍경을 포착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적 환경과 그것을 이루는 물질적 바탕에 대해 되묻고 있다.


한식당의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국적 불명의 현란한 벽화와 그 위에 붙어있는 화재경보장치의 투박함을 보여주는 구성수는 현대화∙국제화라는 이름 하에 초고속 성장을 거치면서 생산된 한국 대중문화의 현실을 꿰뚫어 보는 작가의 시선으로, 밀도있게 구성된다.

현대의 한국사회의 문화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적 공간을 관찰∙성찰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며, 카메라 앵글에 담긴 소재는 한식당, 비정규 노동자, 사우나 내부, 표본 갤러리 등 다양하고 방대하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현대사회에서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문화와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김도균은 Science Fiction 혹은 Space Fiction 을 뜻하는 SF 라는 작품제목으로 그가 상상하는 세계를 현실로, 실상의 공간을 가상의 것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는 작가다.
그의 사진 속 건축 풍경은 세련된 듯 혹은 어색한 듯 생경하다. 그는 일련의 사진적 과정을 통해 실제의 건축물을 자의적으로 가공함으로써 가상의 대상으로 변모시킨다. 사진 속에 담겨지는 순간 거대한 스케일의 공간이 모형으로, 한국의 어느 고층 아파트 옥상에 세워진 특별한 기능없는 건축물이 마치 라스베거스의 화려한 건축물로 보이는 등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해지며, 존재 이유와 기능을 파악하기 어려운 건축물과의 흥미로운 대면이라 하겠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