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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디자인정글_특별초대석] 국내 CI/BI 분야의 산증인, 안정언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말하는 디자인 사고

2021-06-28

한국 디자인사는 여러 인물들과 그들이 이루어온 다양한 사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세대 디자이너들의 변화를 위한 시도와 새로움을 향한 노력은 디자인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했고, 우리의 일상을 다르게 했으며, 우리 삶을 변화시켰다.

 

현역 디자이너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 디자인 역사를 직접 일구어온 디자이너들은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발자취로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누구보다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들은 그들이 경험한 과거뿐 아니라 디자이너들의 현재와 한국 디자인 산업의 미래를 내다보며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 

 

디자인정글은 한국 디자인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디자인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며 한 획을 그어온 디자인 원로들을 만나 디자인의 현주소와 앞으로 한국의 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듣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국내 시각디자인 1세대이자 CI/BI 분야의 산증인 숙명여대 안정언 명예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정언 숙명여대 명예교수

 

 

“디자이너란 시대정신의 패러다임에 밀접하게 관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한 책임의식을 깊이 다지며, 건강한 삶을 이끄는 디자인이 진정한 디자인이며 좋은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화두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곧 디자인 정신이다”

 

안정언 명예교수의 말이다. 시대정신과 문화, 패러다임 그리고 건강한 삶을 이끄는 디자인을 강조하는 그는 평생에 걸쳐 ‘인간을 위한 디자인, 공존이라고 하는 목적성에 근거하는 디자인 사고’를 통해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해 온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정사업부, 예술의전당, 제일은행, 부엌가구 전문회사 에넥스, 서울대학병원, 인천국제공항, 명동성당 등 수많은 업종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개발해 오면서 디자인을 통해 디자인의 순기능을 몸소 실천하고 증명한 그는 브랜드 디자인이 기업경영 이미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직접 확인시켜준 산증인이자 역사 그 자체다.

 

안정언 교수가 디자인한 CI / BI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대전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등 국가적인 규모의 행사에서 디자인 전문위원 등 수많은 디자인 지원사업 등에 임하면서 한국디자인 발전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한국산업디자인전 국회의장상, 한국 어린이 도서상, 동탑산업훈장, 보관문화훈장 등 다채로운 수상실적은 물론 ‘한국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1인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디자인 정신을 기리며 디자인 관련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최근 나무 기러기를 소재로 한 그의 작품 활동은 그가 부모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자녀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 있는 삶의 메시지이자 귀한 선물이다. 단순한 그림이 아닌 나무 기러기가 뜻하는 바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젊은 세대를 향한 삶의 멘토가 되겠다는 의미로써,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소중한 경험을 전하고자 그가 선택한 최소한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의 이와 같은 작업은 뚜렷한 목적성을 지닌 그림일 뿐 아니라, 그 그림에 담긴 의도와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디자인적 발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안정언 명예교수의 나무기러기를 소재로 한 최근 일러스트 작품 <아름다운 하나 Beautiful One> 첫 번째 작품부터 백 번째 작품 중 일부(사진출처: 안정언 교수 페이스북)

 

 

최근 기러기 작품을 선보이고 계신데요, 기러기를 소재로 작품을 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겐 ‘멘토’라는 존재가 아쉬웠어요. 자녀 결혼 준비를 하다가 문득 나 자신이 ‘멘토’가 되어 자녀에게 삶의 지혜를 전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게 됐지요. 그때 신랑 측의 함에 들어가는 나무 기러기를 착안하게 됐죠. 

 

원래 기러기는 한 번 짝이 되면 영원히 함께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혼례에서 나무 기러기를 통해 부부애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지요. 기러기는 협동심도 매우 강하고 공동체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기러기 삶의 형태는 부부애, 동료애의 대표적인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부부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가 등 평생을 살아오며 느꼈던 여러 가지 경험이나 삶의 지혜들을 나무 기러기 그림으로 담아 전하자고 한 것이지요.

 

나무 기러기 그림을 얼마나 그리셨나요?

 

당초의 계획은 1년이 52주라 52개까지만 하기로 했는데, 그리다 보니 지금까지 약 80점 정도롤 그리게 됐어요. 아직도 쏟아내지 못한 이야깃거리는 많지요.

 

 

 

 

안정언 명예교수의 나무기러기를 소재로 한 최근 일러스트 작품 <아름다운 하나 Beautiful One> 첫 번째 작품부터 백 번째 작품 중 일부(사진출처: 안정언 교수 페이스북)

 

 

그림 재료로는 어떤 재료를 주로 사용하시나요?

 

아크릴 물감이나 수채화 물감 등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다 그린 후 그림을 프린트해요. 그런데 간혹 “그림은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하는데 왜 프린트(복제)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시다시피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같은 작가도 복제형 작업을 하지요. 제 작업은 어디까지나 이야기 그림, 즉 일러스트레이션이기 때문에 자연히 복제를 전제로 한 작품이 됩니다. 

 

순수회화라는 것과는 본질을 달리하는 것이지요. 순수회화 분야의 오리지널리티 개념에만 갇혀있는 의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지요.

 

 

 

 

안정언 교수는 그림을 통해 메시지를 담아 전달한다.

 

 

작품 소재는 주로 어떻게 정하시나요?

 

작품의 소재라기보다는 다음 시작하고 싶은 방향으로는 닭과 삶의 이야기로 전개시켜 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작품의 소재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수탉, 암탉, 병아리 등이 떠올랐어요. 닭도 전통적으로 한국 민화에 등장하는 매우 의미 있는 동물인데 그 의미 중 하나가 부부애예요. 자료를 모으고 여러 가지로 궁리 중에 있어요. 나무 기러기가 1차 작업이라면, 닭은 앞으로 전개할 2차 작업이라 할 수 있지요.

 

그림에 이야기를 담으시려고 하는 의도가 많이 보이는데요.

 

의미를 담아 그림을 그리고, 그림의 모티프가 의도하는 뜻을 새기는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나는 디자이너이니 만큼, 디자이너는 그림을 객관적인 소통의 도구로 적용시키는 것이 당연한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한마디로 메시지의 공유라고 하는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그림들이 모아지면 책으로 만들어 볼까 생각 중입니다. 부모가 하는 여러 마디 잔소리보다는 그림책 하나로 자녀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또한 색다른 의미가 될 것 같아서요.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 이것은 디자인 작업의 본질과도 같은 맥락인데요.

 

당연하지요. 디자인 작업의 비율 중 80% 정도는 설득을 위한 준비 과정과 설득 그 자체에 소요된다고 생각해요. 디자인 안의 의도를 명쾌하게 이해하고 수용토록 이끌어 가는 수단이며 과정인 것이지요. 

 

다양한 피드백 방식을 동원하여 디자인 안과 수용자의 생각의 간극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이지요. 그런데 이 작업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지요. 크리에이티브 작업 외에도 설득과 관계되는 다양한 변수를 염두에 두고 보다 많은 시간을 투여하여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방향 설정을 위한 환경분석, 사례조사, 각종 자료의 분류와 적용 등이 요구되는가 하면, 최종적으로 도출된 제안의 생명력에 대한 이미지 평가 등 실로 잡다한 작업들이 수반되는 것이니까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디자인의 의미이며 재미였습니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왜 그런 디자인이 요구되는지,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인지, 누굴 위한 것인지, 그것을 모르고서 디자인한다면 디자인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디자이너로서 인문학적인 학습이 크게 요구되고 디자인에 대한 의식과 철학이 깊이 박혀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지요. 그러고 보면 디자인이란 정말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분야라 생각돼요. 나는 끝까지 디자이너이며 지금껏 디자이너로 살아온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껴요.

 

그런 모습을 몸소 보여주시면서 후배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배가 앞장서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질문에 대한 답은 못됩니다만, 모든 사람들이 디자인을 통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이 디자이너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로서 그런 사명의식이 없다면 생명이 없는 거예요. 디자이너가 아닌 것이죠. 도자기를 굽든, 그림을 그리든 표면적으론 그 모습은 다양할 수 있지만 디자인 의식과 디자인 철학을 갖고 그것을 행한다면 디자이너로서의 사명을 이어가는 것이 됩니다. ‘디자인 활동은 접고 이제부턴 예술작품 활동을 한다’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서의 긍지를 갖고 디자인 행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안정언 명예교수의 나무기러기를 소재로 한 최근 일러스트 작품 <아름다운 하나 Beautiful One> 첫 번째 작품부터 백 번째 작품 중 일부(사진출처: 안정언 교수 페이스북)

 

 

지금까지 개인전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그림을 그리면 ‘당신은 디자이너가 아니냐, 그런데 왜 화가처럼 순수미술을 흉내 내느냐’ 하기도 해요. 그런데 나는 디자인 의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 아트를 하는 것이죠. 순수미술과는 목적성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지금까지 개인전을 하지 않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자신의 작품을 단순히 감상용으로만 벽에 걸어놓는다는 건 의미 없다고 봐요. 콘텐츠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면적인 전시는 의미가 없다고 보는 셈이지요. 삶 속에 녹아들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관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콘텐츠 사업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극히 단순한 예로 그림은 그림이면서 동시에 조명기구, 즉 생활용품의 형태로 제작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그림은 이미 그림일 수는 없는 모양이지요. 그림의 이야기가 있는 동시에 제품으로서의 기능까지 갖추었으니 이것도 하나의 콘텐츠가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이제 디자이너가 수주산업에만 의존하는 디자인 활동보다는 생산산업에 주력하는 기회를 극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봐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디자이너의 길이 아닌가 생각돼요.

 

일반적인 질문입니다만, ‘디자인’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디자인을 하면서 디자인의 세계를 넓히려면 엔지니어도 필요하고 폭넓은 분야의 기능인도 필요하고 제조업자도 필요해요. 이렇게 모여서 목적을 해결하기 위해 상호 협력한다면 이것이 진정한 디자인 행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영역을 전공했느냐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전공을 따지고 그 안에만 머무는 것은 본질적으로 디자인적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은 문화의 융합이며 문명과 기술의 융합인 거죠. 미래 디자인은 당연히 그렇다고 봅니다. 디자이너는 많은 경험과 부딪히고, 그것을 체질화시키고 소통할 수 있는 잠재력과 능력을 키우는 것, 그것이 디자인의 본질이에요. 디자이너가 주인공으로 나서기만 하면 안 돼요. 

 

여러 사람의 능력을 함께 하고 조율할 줄 알아야 빛이 난다는 말이군요. 즉 협업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데...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가 오케스트라와 같아요. 내가 어떤 디자인을 전공했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존재가 돼서 전체를 조화롭게 이끌어나가는 것, 그게 디자이너예요. 프로젝트의 책임자라는 의식을 갖고 접근해야 해요. 본질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것을 넓히고 키워나가는 사람이 진정한 디자이너예요. 협업을 모르는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니지요.

 

교수 시절 학생들을 가르치실 땐 어떤 내용을 강조하셨나요?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시절만 해도 디자인이 뭔지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았어요. 당시 충무로 골목의 외국서적 취급점에 틈틈이 갔었는데, 일본의 소니(SONY)가 2차 대전 이후 다시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 배경이 보고서처럼 소개된 책이 있었어요. 소니의 디자인 개발 방식의 소개 부분에서 눈이 번쩍 뜨였고, 흥분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관련 서적들을 찾아가며 학업에 심취하게 되었지요. 

 

그 당시 부산에서 함께 상경한, 전공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자취생활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 친구들과의 인연 때문에 부분적이나마 마케팅 등 경영학 분야를 접하게 됐고, 결국 디자인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게 됐어요. 훗날 내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는 학생들에게 바로 그런 시각을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80년대였나요? 선생님께서 디자인하셨던 연하장 카드가 큰 이슈였는 데요. 최초로 등장한 디자이너 카드였죠?

 

당시,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에서 협회전을 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1등으로 회원상을 받았어요. 그러나 집안 잔치식 디자인 그룹전을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회의가 생겼고, 디자인의 본령인 대중 소통이라고 하는 기회를 트기 위해 그 작품을 들고 바른손이라는 연하장 카드회사를 찾게 되었지요. 당시는 주로 화가의 그림을 빌려서 연하장을 만드는 상황이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게 곧 디자이너가 할 일인 것 같았죠. 그래서 바른손 회장을 직접 만나 담판을 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이너 참여 카드가 등장하게 된 거죠. 다행히 내가 디자인한 학 그림이 히트를 쳐서, 그 이후 다른 연하장 카드회사들이 디자이너스 카드를 따라 만들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지요.

 

안정언 교수의 스토리가 담긴 디자인 

 

 

그 당시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CI에 대한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은행이 주도적으로 CI 도입이 활발할 때였을 땐데, 제일은행의 CI 도입이 엄청난 이슈가 됐었지요?

 

바른손 카드 작업이 나의 유일한 포트폴리오가 된 셈이었어요. 제일은행 임원 한 분의 적극적인 주선 덕분에 프로젝트를 맡게 됐지요. 당시의 제일은행 심벌마크는 매우 올드하고 보수적이었을 뿐 아니라 은행의 실적마저도 시중 은행 중 최하위여서 타행에 비해 이직률도 높았다고 했어요. 

 

CI를 통해 은행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디자인을 주문받은 셈이지요. 당시에는 은행이 관료적이고 문턱도 무척 높은 환경이었어요. 서민들은 감히 혜택을 크게 누릴 수 없는 그런 곳이었죠. 그래서 은행의 낡은 관행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높은 문턱을 없애고, 고객 위에서 군림하는 은행이 아닌, 고객을 위해 몸소 뛰는 은행으로 변화하도록 해야겠다, 모든 사람들이 친구같이 느끼는 은행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를 조형적으로 풀기가 상당히 어려웠어요. 그래서 은행명 그대로의 '퍼스트 뱅크, 최고, 넘버원'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적 이미지 접근도 중요했지만 조형 언어로써의 이미지 기능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건강한 은행, 신뢰가 넘치는 은행으로써의 시각 이지를 굳힐 수 있을까가 최대의 관건이었어요. 

 

때문에 굳건하면서도 믿음직스러운 느낌을 주는 심벌마크 디자인을 위한 고심의 연속이었어요. 연약하지 않은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타원 하나만 해도 수십 번을 그렸고, 어느 순간 묵직한 대륙적인 이미지를 갖추게 되었지요. 4~5개월 동안 그 작업으로만 씨름을 한 셈이었는데, 그 기간 동안 몸무게 3kg가 빠질 정도로 열정적으로 작업했어요.

 

그런데 그 디자인이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어요. 그 시대의 심벌마크 경향과는 너무도 다른 이미지였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행원들에게 ‘당신이 최고다, 당신이 있어 우리 은행이 사는거다’라는 메시지를 주었고, 외부적으로는 고객들에게 ‘당신을 으뜸으로 모시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캠페인을 펼치도록 했지요. 고객들에게 심벌마크에 대한 배경 설명을 일일이 편지로 보내기도 했고, 이에 대한 이미지 비교 조사도 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선호도가 대단히 높게 나왔어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또 있는데, 한 번은 대강당에 당행의 행원들이 가득 모인 자리에서 CI에 대한 설명회를 하면서 기존의 제일은행 심벌마크와 비슷한 여타 기업 심벌마크들을 섞어놓고 자기 은행 심벌마크 찾기를 했더니 제대로 맞춘 사람이 10프로에도 미치지 못하더군요. 자신들이 근무하는 은행의 심벌마크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따져보면 행원 스스로가 자기 직장에 대한 긍지나 신념조차 빈약했던 것이지요.

 

연구 보고서는 이미지 정착을 위한 캠페인 계획도 포함하여 경영진의 조건부 승인도 받게 되었지요. 그 시점에 제일은행 행장님이 유럽에서 열린 세계 은행장회의에 참석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명함을 만들어 그곳에 세계적인 은행장들의 반응이 어떨지 상황을 살펴보겠다는 것이었죠. 통신환경조차 열악했던 시절, 은행장께서 유럽에 가신 지 일주일도 안돼서 CI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대로 속행시키라는 통신을 전갈 받게 되었고 이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죠.

 

새로운 CI 도입 후부터는 이 은행의 모든 본 지점이 업무 시작과 함께 행원들이 문 앞에 두줄로 서서 ‘일등으로 모시겠습니다’ 라는 어깨 띠를 두르고 출입 고객을 향해 아침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내 어디서든 눈에 띄는 오렌지색 간판 컬러로 인해 사람들은 제일은행이 왜 이렇게 갑자기 많이 생겼냐고 수군대기 시작했고, 그 당시 버스 안내원들조차도 한 달 남짓밖에 안되었음에도 은행원들의 배지를 보고 제일은행을 알아봤어요. 순식간에 유명해진 것이죠. 제일은행 CI는 국내의 모든 은행, 모든 금융기관이 CI에 관심을 쏟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올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름의 CI 연구소도 설립하셨죠?

 

관공서나 공공기관 관련 일을 하게 되니 개인 명의의 계약이 까다로웠습니다.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게 되어 부득이 연구소라는 법인 형식을 취하게 되었어요. 이후 대충 3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는데, 건강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경영에 손을 떼게 되었지요.

 

숙명여대에서 교수로 재직하실 때 특별히 기억되는 에피소드는 없었던가요?

 

학교 당국에 몇몇 제안을 한 적은 있어요. 기존의 학교 경영방식이 전근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죠. 하드웨어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보는 소프트웨어적 접근도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되고 구축 강화시켜 나가야 되지 않느냐는 소견이었습니다. 우선 생각나는 것으로 학교 시설이 높은 공실률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적 소모가 크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공간 낭비가 심하다는 거죠. 강의실의 사용 유무에 관계없이 전체 냉난방은 무조건 해야 했으니까요.

 

강의실 이용 특성을 크게 나눠보면 대체로 3가지 유형으로 구분 지을 수 있습니다. 특정 전공분야의 경우는 실험연구실이나 제작실 같은 붙박이형 전용 장소가 요구되고 실기 중심형 강의실, 그리고 순전히 강의만 이루어지는 곳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강의 중심형은 전용공간이 요구되지 않죠. 때문에 강의실의 경우는 100% 활용을 목적한 치밀한 계획으로 낭비를 극소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단과 대학별 구분을 해체시키면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대신에 강의 구조 성격에 따로 수강료를 차등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했었지요.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도 단과대학 제도는 무의미해지고 있어, 학생들이 어느 강의든 자유롭게 선택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해서 새로운 학문의 패러다임을 열어주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자신의 출신 대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부해 본 경험이 중요해지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직 어느 대학에서도 관심을 두는 곳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지금도 이런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봐요. 장소나 도구 개념으로써의 하드웨어는 언제든지 빌려 쓸 수 있다는 개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중요한 점은 소프트웨어 기반 중심형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학교라는 것이 한번 학생은 생을 다할 때까지 고객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말하자면 평생 A/S제도를 학교가 마련하고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한 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라는 생각이 교육기관에도 적용되는 겁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에는 졸업생의 자녀는 물론 가족 모두가 또 새로운 교육 서비스의 대상이 되는 거지요. 예컨대 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위탁하고 부모가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확보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고, 학교는 자녀의 안전 케어는 물론 성장교육 서비스에 임하는 조건이 되는 것이고요.

 

부모는 학교의 운영시설에서 미용이나 피트니스, 식사 쇼핑까지도 즐길 수 있게 하는 그런 환경이 필요하다고 봐요. 학교가 자리하는 지역 문화적 특성이나 당해 학교의 전문성을 연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지요.

 

우리 미래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교육기관부터가 고정관념을 과감히 버려야 하는 시대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대학에서도 이런 획기적인 경영 환경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디자이너의 본질, 디자이너로서의 자세는 무엇인가요?

 

영원히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 그것이 디자이너의 본질이라 봐요. 저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디자인을 생각하며 살 거에요.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집안에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무언가 끊임없이 쓰고 보고 찾아요. 그것이 습관화되어 있어요. 몸은 늙고 쇠잔해지더라도 마음은 영원히 청춘이고, 항상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희망이라는 것이 반드시 가정경제와 관련 지을 이유는 없습니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나는 끝까지 그렇게 살아갈 작정입니다.

 

디자이너로서의 자세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수 있도록 하는 것, 주어진 지구환경에서 아름답게 생명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의식을 여러 사람들에게 부여해 주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곧 디자이너의 책무이자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에 유의하시면서 국내 몇 안 되는 디자인계 원로로서 후배들에게 계속해서 좋은 말씀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안정언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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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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